[팩트체크] 사전에도 없는 단어로 처벌?…이재명 옭아맨 ‘교유’의 정체
‘교유’는 사전에 등재된 단어…사법부도 그간 재판 근거로 수차례 인용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재판에서는 생소한 개념이 등장한다. '서로 사귀어 놀거나 왕래하다'란 뜻의 '교유(交遊)'다. 이는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할 때 대장동 개발사업 실무자였던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처장과 이 대표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민주당에선 "검찰이 사전에도 없는 개념을 갖고 와 무리하게 기소했다"고 비판했다. 이후 15일 1심 재판부가 '업무적 교유행위' 등을 인정하며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에 민주당은 사법부도 적으로 돌렸다.
교유의 출처는 뭘까. 우선 사전에 없는 말은 아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해당 단어가 올라와 있다. 국립국어원이 사용 빈도가 높은 단어를 추린 '한국어 학습용 어휘'에 들어갈 만큼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니다. 하지만 검찰이 없는 단어를 지어낸 건 아니다.
표준국어대사전 등재…'사귀어 놀거나 왕래하다'
민주당은 구체적으로 '교유'에 '행위'가 더해진 '교유행위'에 초점을 맞춰 검찰을 비판했다. 이건태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월 국회에서 "(검찰이) 교유행위라는 국어사전에서도 없는 개념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의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사건을 변호했던 그는 "관념 위에 관념을 쌓아서 구성요건에 해당성이 있는 것처럼 (검찰이) 주장을 했다"고 비판했다.
전현희 민주당 최고위원도 11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검찰이) 교유행위란 단어를 창조해 공소장을 변경했다"고 주장했다. 역시 이 대표의 변호인을 맡았던 박균택 민주당 의원은 7일 같은 방송에서 "교유도 있고 행위도 있는데 교유행위라는 단어는 없다"고 주장했다.
교유행위 자체가 주요 혐의로 적시된 적이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사법부가 '교유'를 판단의 근거로 사용한 경우는 수차례 확인된다.
2012년 울산지방법원은 원자력 발전회사 임원이던 A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A씨가 회사와 관계된 외부 업체로부터 부정한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했다는 혐의(배임수재)를 인정하면서다. 이때 외부 업체들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교유'란 단어를 썼다. 재판부는 "(A씨가) 관련 업체 관계자들과 밀접한 인적 관계를 맺고 수시로 교유했다"며 "회사 직원들과 관련 업체들 사이의 결탁과 부패의 연결고리서 역할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교유한 사실을 갖고 유죄로 판단할 수 없다고 본 판례도 있다. 2014년 부산지방법원의 한 판결문에 따르면, B씨는 지역 교육계 인사들로 구성된 C단체의 회장이자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던 모임의 대표였다. 그는 C단체의 창립 행사 때 교육감 선거 예비후보자들을 회원들에게 소개하고 340여만 원어치의 식사를 제공했다. 검찰은 이를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한 기부행위로 보고 B씨를 교육자치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B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C단체의 행사가) 사람들이 서로 교유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정도의 통상적인 사적 모임의 한계를 벗어나 특정 후보자를 위한 선거운동 또는 그에 준하는 행태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교유가 주된 단체에서 이뤄진 식사 제공을 불법 선거 운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다.
'부패의 연결고리'도, '통상적 사적관계'도 되는 교유
이 대표의 경우 교유행위의 여부가 혐의를 밝히기 위한 핵심 관문이었다. 지난 7월 검찰은 공소장을 변경하면서 이 대표와 김문기 전 처장의 관계에 대해 "두 사람은 2021년 김 전 처장 사망 직전까지 객관적으로 확인된 것만 무려 12년에 걸쳐 특별한 교유행위를 한 사이"라고 썼다. 해당 교유행위는 '성남시장 재직 시 김문기를 몰랐다'는 취지의 이 대표 발언이 허위사실 공표라는 검찰의 기소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논거로 작용했다.
이에 1심 법원은 '몰랐다'는 발언을 두고 "김 전 처장과의 개인적·업무적 교유행위 일체 또는 공소사실에 구체적으로 적시된 각 교유행위를 부인하는 것을 표명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 대표가 김 전 처장을) 하위 직원 등으로 지칭하는 것은 대장동 사업과 관련해 성남시장인 피고인과 하위 실무자인 김문기와의 업무적 교유행위를 인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고 봤다. 적어도 업무 관계에서는 김 전 처장을 알았을 것이라는 취지다. 같은 맥락에서 '해외출장 중 김문기와 골프를 치지 않았다'는 이 대표의 발언은 허위사실 공표로 판단됐다.
민주당은 즉각 불복하며 법원을 직격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18일 "누가 봐도 명백한 사법살인"이라며 "사법부 역사에 두고두고 오점으로 남을 최악의 판결"이라고 맹비난했다. 같은 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1심 재판 결과에 대해 "다 예상됐던 통상의 결과"라며 "재판이 정상적으로 신속하게 진행되는 것을 모니터링하는 TF를 당 법률위원회에서 꾸리고 재판 결정이 왜곡되는 것을 막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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