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다시 온다”…‘트럼프 2.0’에 빨라진 국내 재계 움직임

허인회 기자 2024. 11. 1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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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겸직에 이사회 의장직까지…전면 나선 한화·SK 총수
‘미국통’ 앞세운 현대차…불확실성엔 현지 전문가로 대응

(시사저널=허인회 기자)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재계의 대응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그룹 회장들이 사업 전면에 나서는가 하면 '미국통' 중심의 인사를 통해 전략 수립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한번 경험한 트럼프 정부지만 내년 경기 전망이 어두운 가운데 이번엔 더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지난 14일 한화그룹 72년 역사의 기반이자 핵심 생산 거점으로 자리잡은 한화·한화에어로스페이스 보은사업장을 찾아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한화그룹 제공.

물 들어온 한화, '김승연' 앞세워 노 젓는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전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지난 14일 보은사업장을 찾아 ㈜한화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경영 현황과 글로벌 시장 개척 전략을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13일 분기보고서를 통해 김 회장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회장을 겸직한다고 밝힌 이후 첫 행보라 의미가 크다. 이번 겸직을 통해 김 회장은 종전 ㈜한화·한화시스템·한화비전·한화솔루션 등 4개 회사에서 5개 회사 회장직을 겸하게 됐다.

이번 겸직과 현장 행보는 다분히 트럼프 행정부 2기를 대비한 조치라는 해석이다. 지난 7일 트럼프 당선인은 윤석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 조선업이 한국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며 한국 조선업계와의 시너지를 기대한 바 있다.

재계에선 한화오션을 보유한 한화그룹이 수혜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오션은 지난 6월 미국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를 인수하며 미 조선업계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지난 8월과 이달에는 미 해군 군수지원함인 '월리 쉬라'함과 미 해군 7함대의 급유함 '유콘'함의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을 따냈다. 연 20조원 규모의 미 해군 함정 MRO 시장 선점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 기조는 향후 한화오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번에 김 회장이 회장을 맡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그룹 방산사업을 이끄는 중간지주사다. 자회사로 한화시스템과 한화오션을 두고 있다. 한화오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셈이다.

재계에선 트럼프 행정부 2기를 대비해 한화가 김 회장을 전면에 내세워 방산 산업 영토를 확대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김 회장은 트럼프 측근으로 분류되는 에드윈 퓰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회장과 40여 년째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이런 인연으로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도 초청받았으나 건강 문제로 참석하지 못했다.

트럼프 2기 정부에서 한화가 마냥 호재인 것은 아니다. 한화큐셀은 미국 조지아주에 25억 달러(한화 약 3조5000억원)를 투자해 연간 모듈 생산 8.4기가와트(GW) 규모의 미국 최대 태양광 제조 단지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화석연료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트럼프 정부에선 사업 위축이 불가피하다.

SK그룹 역시 기회요인과 위협요인이 동시에 존재한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에 후공정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데 38억7000만 달러(약 5조2000억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반도체 세액공제 등 보조금 축소와 폐지를 저울질하고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하이닉스의 미국 낸드플래시 메모리 자회사 솔리다임의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 솔리다임은 SK하이닉스가 2021년 11조원 가량을 투자,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해 설립한 미국 자회사다. 현재 솔리다임은 AI 데이터센터용 낸드 솔루션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대선 기간 AI 규제 완화를 강하게 주장했다. 이에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AI 투자가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데 AI 데이터센터 필요성도 증가할 전망이다. 자연스레 솔리다임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재계에선 최 회장이 솔리다임 이사회 의장직을 맡은 것에 대해 그룹의 AI 반도체 사업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로 보고 있다. 레거시 반도체에선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AI 반도체 시장에선 뒤처지지 않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그룹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왼쪽)이 지난 8월2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CEO 인베스터 데이'에서 장재훈 현대자동차 사장(오른쪽)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차, '미국통' 2인 전면에 배치

한화와 SK의 그룹 총수에 전면에 나선 가운데 현대차는 '미국통'으로 트럼프 2기를 대비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15일 호세 무뇨스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 겸 북미권역본부장(사장)은 신임 대표이사에 선임했다. 호세 무뇨스 신임 사장은 2019년 현대차에 합류한 이후 딜러 경쟁력 강화와 수익성 중심 경영 활동을 통해 북미지역 최대 실적을 잇달아 경신했다. 현대차가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는 데 공헌하고 글로벌 자동차업계에서도 검증된 경영자라는 평가다.

이에 더해 그룹 싱크탱크 수장에는 성 김 현대차 고문역을 사장으로 영입했다. 김 사장은 부시·오바마·바이든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맡은 미국 외교 관료 출신이다. 트럼프 1기에선 주 인도네시아 대사를 맡기도 했다.

트럼프 당선은 현대차로선 기회가 아니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전기차 세액 공제를 폐지를 검토하고 있고, 10~20% 보편 관세 도입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친환경차 전환에 맞춰 북미 시장 점유율 판도를 바꾸고자 했던 현대차 입장에선 먹구름이 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가 미국 정가에 정통한 김 사장의 네트워킹을 통해 난관을 헤쳐 나가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우수한 성과 창출에 부합하는 성과주의 기조를 이어가면서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해 내부 핵심 역량을 결집하려는 인사"라며 "조직 내실을 강화와 함께 미래 전환 가속화를 모두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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