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제주산 빠진 감귤주스… 기후변화에 국내 먹거리 비상
출하량 1년새 절반 가량 감소
코코아·커피도 수급불안 지속
제주에서 레드향 농사를 A씨는 요즘 웃을 일이 없다. 오래 지속된 고온 탓에 열매가 터져 나무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나무에는 남은 건 몇개 없다. 나무에 달려 있는 열매도 상품성이 없는 경우가 많아 A씨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망친 농사에 작물을 아예 바꾸는 방안까지 고심하고 있다.
올 여름 기록적인 이상고온으로 제주감귤의 작황이 반토막 나면서, 일부 감귤주스에 '제주'라 단어가 빠지고 원산지가 수입산으로 바뀌었다. 시장에는 크기도 작고 퍼렇게 멍이 든 것처럼 보이는 감귤이 예년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본격적인 겨울 초입에 진입하면서 귤 성수기가 도래했지만, 제주도산 귤의 대부분은 시중에 팔기도 어려울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다. 최근 제주도 감귤 농장에 다녀왔다는 박재중 연세대 신소재공학과 박사후연구원은 "실제로 농장에 가보니 레드향 열매가 바닥에 다 떨어지고 나무에는 남은 게 몇개 없었다"면서 "나무에 달려 있는 열매도 상품성이 없는 경우가 많아 농민들이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다른 작물을 기르려고 해도 수확까지 하려면 최소 4~5년이 걸리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물가 상승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식료품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는 치명적이다. 1970년대에 80%에 육박했던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2022년 기준 32% 수준까지 내려갔고, 곡물만 따질 경우 쌀을 제외한 다른 품종의 경우 수입 의존도가 90%에 이른다. 이는 먹거리 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1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올해산 노지감귤 수확철이 다가온 가운데, 제주감귤을 쓰던 일부 감귤주스가 감귤 원산지 변경으로 인해 라벨을 '제주감귤'에서 '감귤'로 바꾼다. 오는 15일부로 신세계그룹 계열 편의점 이마트24의 자체브랜드(PB)인 아임이의 '신선함을그대로제주감귤' 500㎖, 1.5ℓ 제품이 각각 '신선함을그대로감귤 500㎖·1.5ℓ로 상품명 자체가 바뀐다.
이에 따라 패키지 라벨에서도 '제주'가 빠진다. 농축액 원산지와 함량이 변경된 데에 따른 것이다. 감귤농축액 원산지는 제주산 100%에서 제주산 19%, 호주산 81%로 바뀐다.
이마트24 측은 이에 대해 "기후 변화에 따른 작황이슈와 제조사 요청으로 이 같이 변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 여파가 동네 편의점 먹거리에 까지 침투한 것이다. 제주농산물수급관리센터가 집계한 전국 9대 도매시장 노지감귤 평균 경락 가격은 18일 기준 5㎏당 1만2132원으로, 7734원대인 평년 가격보다 약57% 높았다.
이상고온으로 인한 기록적인 불볕더위와 가문 날씨, 해거리로 인해 생육이 부진하고 열과 피해 등이 발생하면서 상품 출하량이 크게 감소했고, 이로 인해 가격이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달 출하량은 2만3351.54톤으로, 작년 같은 달 5만3120.62톤의 절반 수준이다.
제주에서는 여름 이상고온으로 인해 감귤류 중 가장 고급인 레드향이 75~80% 폐기된 상태다. 고온이 너무 오래 이어지다 보니 열매가 터져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다. 제주도 감귤 농장에서는 비닐하우스에 온도를 낮추는 여러 장치를 만들기도 하는 등 이상고온을 막기 위해 갖은 애를 썼지만, 역부족이었다.
현장 관계자는 "감귤이 성장·비대하는 시기에 열대야로 일교차가 벌어지지 않아서 충분히 착색되지 못하고 녹색을 유지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면서 "기상이변으로 색깔 발현이 늦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 여파는 제주감귤뿐 아니라 코코아를 수입해 만드는 핫초코 가격에도 나타나고 있다. 이달 둘째·셋째주에 걸쳐 '허쉬 오리지널 핫초코 ' 가격(편의점 판매가 기준)이 11% 이상 오른 상태다. 코코아는 수십 년간 1톤 당 2000달러 수준을 유지해 오다 작년부터 급등해 현재 1만 달러를 기록 중인 상황이다. 기상이변으로 전 세계 코코아 생산량 70%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 국가에서의 코코아 생산량이 급감한 여파다. 앞서 국내 초콜릿 업계 1위인 롯데웰푸드는 지난 5월부터 초콜릿 제품을 평균 12% 인상한 상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커피 원산지의 수급 불안이 이어지면서 커피 가격 역시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장분석업체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커피(선물 계약 기준) 가격은 지난 16일 기준 파운드 당 283.3달러를 기록하며 올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커피 주력 생산국인 동남아시아와 남미 등에서 올해 내내 극심한 가뭄이 지속된 여파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시장은 식량자급률이 떨어지고 수입 의존도가 높은 만큼 기후변화 여파가 더욱 크게 나타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김수연·이상현기자 newsnew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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