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신 훼손 ‘양광준의 두 얼굴’, 과학수사가 풀어냈다···“완전범죄 없다”
지난 2일 오후 2시36분쯤. 강원 화천군 화천체육관 앞을 지나던 한 시민의 시선에 이상한 물체가 들어왔다. 사람 다리 같은 것이 북한강 물에 떠 있었다. 그는 112에 신고했다. “마네킹은 아닌 것 같아요.” 강원경찰청은 신고를 ‘코드1’으로 접수했으나 목격담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해 ‘코드0’으로 상향했다. 즉시 총력 대응이 필요한 긴급상황을 뜻한다.
범인은 하루 만에 붙잡혔다. 다음 날 밤 7시12분쯤 서울 강남구 일원역 지하도에서 현역 육군 장교 양광준(38)이 살인 및 사체손괴 등 혐의로 체포됐다. 강에서 발견된 피해자는 30대 여성 군무원으로 밝혀졌다. 양광준은 지난달 25일 내연 관계의 피해자를 살해해 훼손하고 이튿날 북한강에 유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완전범죄를 꿈꿨던 양광준의 범행이 밝혀진 데는 과학수사의 힘이 컸다. 시신 발견부터 계획범죄 입증까지 단계마다 과학수사가 총동원됐다.
https://www.khan.co.kr/national/incident/article/202411030916001
https://www.khan.co.kr/politics/defense-diplomacy/article/202411131002011
경찰은 사건 접수 직후 훼손된 시신을 추가로 발견하기 위해 수중과학수사관 7명을 투입했다. 중급 이상의 스쿠버다이빙 자격을 가진 전국의 경찰관 중에서 선발된 이들이다. 이들은 평상시 과학수사 부서뿐만 아니라 경찰서·지구대 등에 근무하다가 상황이 발생하면 투입된다. 체취견 6마리도 투입됐다. 사람의 냄새를 찾는 과학수사견이다.
피해자 신원은 금세 파악됐다. 문제는 피의자였다. 현장 감식에 나선 과학수사관들은 물속에서 시신과 함께 건져낸 비닐봉지와 테이프 등의 증거물에 주목했다. 이 증거물들은 모두 젖어서 지문 채취가 어려웠다. 그런데 한 과학수사관이 젖은 증거물에서 지문을 채취한 연구 사례를 알고 있었다. 이 방법을 토대로 증거물에서 피해자의 것이 아닌 지문 채취에 성공했다. 이 방법을 연구가 아닌 실제 사건에서 적용한 건 처음이었다.
채취한 지문을 곧바로 경찰청에 긴급 감정 의뢰했다. 경찰청 지문감정관들은 우선 인공지능(AI) 기술 등이 탑재된 지문자동검색시스템(AFIS)을 통해 유사한 지문을 추려냈다. 베테랑 지문감정관은 이 지문들을 직접 비교 분석해 정확한 피의자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시신이 발견되고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아 지문의 주인은 양광준으로 확인됐다.
신원을 알아낸 형사들은 체포 작전에 나섰다. 경찰에 불잡힌 양광준은 “우발적인 범행”이었다고 주장했다. 범행 동기와 계획성을 파악하기 위해 프로파일러(범죄분석관)가 투입됐다. 내년이면 근무 20년을 맞는 경력공채 1기와 임상심리사 출신 등 전문 프로파일러 3명이 나섰다. 양광준의 성격과 심리를 과학적인 분석 도구로 들여다보는 일은 범죄의 계획성과 재범 위험성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이 쓴 범죄분석보고서에는 양광준이 지능적이고 계획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인들로부터 “순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범인 양광준의 두 얼굴은 이렇게 드러났다. 현장을 뛴 형사들과 증거를 수집·분석한 과학수사관들이 힘을 합쳐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혀냈고 양광준의 완전범죄 시도는 실패로 막을 내렸다. 경찰은 지난 12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사건 초기부터 과학수사를 통해 객관적 단서를 제공해 불필요한 수사력 낭비를 피할 수 있었다”며 “짧은 시간 안에 국민들이 불안해 하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과학수사가 제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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