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슈퍼 선거의 해'…고물가가 심판했다

장규호 2024. 11. 18.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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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그래픽=이정희 한국경제신문 기자


미국 대선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당선으로 끝났습니다. 이로써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70여 개국, 총 42억 명의 유권자가 참여한 ‘슈퍼 선거의 해’가 사실상 막을 내렸습니다.

작년 이맘때 ‘슈퍼 선거의 해’를 앞두고 세계 유권자들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지 큰 관심이 쏠렸습니다. 각국이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날로 높아지는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불안정성은 전 세계 공통적 현상이기 때문이죠. 극한 대결로 치닫는 좌·우 정치세력, 인종주의와 자국 우선주의의 강력한 대두, 대중 인기 영합 정책을 뜻하는 포퓰리즘 확산으로 인해 대부분의 나라가 바람 잘 날 없습니다. 경제도 고금리와 고물가 여파로 팍팍한 민생이 크게 개선되고 있지 않죠.

결론부터 말하면 올해 세계의 주요 선거는 경제 문제, 그중에서도 고물가가 판을 갈랐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은 각국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도 미국 대선에 대해 “유권자들은 폭발적 인플레이션에 대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용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죠. 30년간 단독 집권해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의회 과반 확보에 실패한 것도 고물가와 높은 실업률이 빌미가 됐습니다.

그런데 트럼프의 귀환은 더 큰 태풍을 몰고 올 전망입니다. 집권 1기보다 더 센 ‘미국 우선주의’를 내걸고 관세장벽을 쌓아 올릴 태세입니다. 물가가 심판한 주요국 선거, 트럼프 당선 이후 세계경제와 정치·안보의 변화를 4·5면에서 조망해보겠습니다.

'슈퍼 선거의 해'에 나타난 각국의 민심
경제·민생 먼저 챙기라는 강력한 요구죠

지난 7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영국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 대표(현 총리)가 지지자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구촌 ‘슈퍼 선거의 해’에 대한 관심은 크게 두 가지로 모아졌습니다. 하나는 유권자의 선택을 좌우할 최대 변수가 무엇이 될지, 또 다른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 다시 입성할지였습니다. 세계 각국의 정치·경제 흐름은 긴밀하게 연결돼 있습니다. 주요국 선거의 결과와 특징은 다른 나라 선거에도 영향을 미치지요. 첫 번째 주제는 1년 내내 관심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언론도 상반기가 지나자 ‘반환점을 돈 슈퍼 선거’와 같은 제목으로 주요국 선거 결과를 분석했어요.

선거 최대 변수는 경제문제

생글생글은 지난해 12월 18일 자(제829호)에서 “핑크 타이드(Pink Tide)가 왜 꺾였을까”란 제목의 표지 기사를 실었습니다. 핑크 타이드란 중남미 좌파 정치세력이 각국 선거에서 연쇄적으로 집권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최근엔 이런 경향이 퇴조하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좌파 정부의 잇따른 경제정책 실패로 민생의 어려움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국민 입장에선 먹고사는 문제가 최우선인데, 포퓰리즘 정치만 앞세우고 시장 기능을 무시하는 정책 개입으로 경제 성적표가 크게 나빠진 게 지지율을 떨어뜨렸죠. 반면 유럽 정치권에서 인종·종교·민족·젠더(성) 등 유권자의 정체성에 호소하는 ‘정체성 정치’가 유행이라고 봤습니다. 이민자가 일자리를 뺏어가는 문제, 기독교 문화의 유럽 국가에 무슬림 이민자를 수용하는 문제 등에서 유권자의 지지 정당이 갈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막상 ‘슈퍼 선거의 해’ 뚜껑을 열어보니 중남미 등 개발도상국과 유럽 지역 선진국 정치가 크게 다른 양상을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 물가 등 경제 상황이 핵심적 선택 기준이 됐습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 때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문구로 유권자의 관심을 모았듯 경제문제는 선거 승패를 가르는 중요 변수입니다. 그러나 잇따른 세계 주요국 선거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은 주목할 부분입니다. 대부분의 나라가 2017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저성장·고물가·고금리 등 경제적 어려움을 공통으로 겪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물가에 화난 미국 백인 노동자

영국과 프랑스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영국 집권 보수당은 지난 7월 총선에서 창당 이후 190년 만에 최악의 참패를 당했습니다. 의석수가 372석에서 121석으로 쪼그라들었죠. 고물가, 경기침체, 공공부문 개혁 실패 등 실정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야당인 노동당은 오히려 친기업 정책 등을 펴며 표를 끌어올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8월 총선에서는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이 1차 투표에서 좌파 연합과 범여권을 누르고 1위를 차지하는 이변을 일으켰습니다. 국민연금 지급 시기를 2년 늦추는 정책과 고물가 여파로 범여권의 득표율이 20%에 그쳤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가 지난 5월 총선에서 처음으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한 것이나, 일본의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10월 총선에서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 것 역시 고물가에 따른 유권자의 불만이 고조되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일본은 특히 저물가가 수십 년 지속된 나라인데요, 작년 3.3%의 물가상승률로도 사람들은 불안해했습니다. 사재기가 일었고, 쌀은 품귀현상까지 빚을 정도였지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의 귀환’이 가능했던 것도 고물가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고물가에 화난 백인 노동자’를 트럼프 당선 일등 공신이라고 평가합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집권 4년간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연평균 5.5%에 달했습니다. 미국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던 러스트벨트(미국 북동부의 낙후된 공업지역)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것도 이러한 영향이 큽니다. 미국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5월 사설에서 “미국은 카터 이후 6명의 대통령을 거치며 낮은 인플레이션에 익숙해 있었다. 그런데 바이든 대통령 아래에서 물가 급등한 게 선거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는데, 이게 그대로 맞아떨어졌지요.

NIE 포인트

1. ‘슈퍼 선거의 해’를 치른 나라들의 선거 결과를 살펴보자.

2. 올해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등을 국가별로 비교해보자.

3. 인플레이션과 선거는 어떤 관계를 보이는지 역사 속에서 찾아보자.

트럼프 귀환으로 각자도생 하게 된 세계
대공황 증폭시킨 보호주의 망령은 위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유세 기간 중 손가락을 가리키며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1년 전 새해 전망 보고서에서 “미국의 트럼프는 2024년 세계가 마주할 가장 큰 위험”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가 재선에 성공하며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에 취임하게 됐으니 이제 세계의 안녕과 질서, 번영은 기대하기 어려운 걸까요?

저성장·고물가·전쟁 위험 고조

트럼프의 귀환은 20세기식 세계화에 대한 종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자유경쟁, 시장개방, 근로자 등 약자 보호와 같은 공통 규범을 만들고, 그 틀 안에서 함께 번영하는 길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국(이익) 우선주의를 중심으로 각자도생하는 시대가 되고 있어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트럼프 태풍’이 휘몰아칠 것으로 보입니다.

먼저 경제적 측면입니다. 트럼프 경제정책의 양대 축은 ‘감세’와 ‘관세’입니다. 경제 활력을 자극하기 위해 세금을 깎아주는 감세정책을 펴면 국가재정이 악화할 수 있습니다. 수입품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이를 벌충하려는 수단이죠. 모든 수입품에 10~20% 관세, 중국산 수입품엔 60% 징벌적 관세를 매긴다는 게 트럼프의 선거 공약이었습니다. 미국 제조업 부활과 중국 견제를 위한 공급망 재구축에도 가속을 낼 계획입니다. 그러면 생산원가는 높아지고 저렴한 중국산 수입품은 시장에서 사라지면서 미국 내 물가상승 압력이 엄청나게 커지게 됩니다. 경제학자들은 20%대의 고율 관세는 미국 내 소비자 물가를 3%포인트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인하에 제동이 걸릴 수도 있어요. 이는 당장은 달러 강세를 가져오지만, 인위적 달러 약세를 유도하면서 환율전쟁이 벌어질 개연성도 없지 않습니다.

관세장벽은 국제 교역량을 줄여 세계경제에 저성장을 고착시킬 위험이 큽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이 20% 관세를 매길 경우 대미 수출액을 포함한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은 연간 448억 달러(약 63조원, 총수출액의 8% 규모) 감소할 전망입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도 최대 0.67%포인트 낮아질 수 있다고 합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방파제가 될 수 있다고 하지만, 세계 모든 나라에 같은 세율로 매기는 보편 관세를 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합니다.

다음으로 세계를 분열과 갈등으로 몰아넣을 위험성입니다. 미국 내 불법 이민자 추방이 본격화하면 세계 곳곳에서 반(反)이민 정서가 확산될 수 있어요. 또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전의 ‘고립주의’로 돌아가고 세계질서의 수호자 역할을 포기하면 세계 곳곳에서 갈등과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질 겁니다. 유럽은 ‘안보 우산’ 약화, 우리나라는 주한미군 전력 감소와 안보 위험을 걱정할 수밖에 없어요.

1930년대 데자뷰의 경고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는 미국 공화당 전통으로 회귀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전통이 얼마나 큰 역사적 고통을 불렀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대호황의 1920년대를 지나던 세계경제는 1929년 10월 갑작스러운 뉴욕 증시 폭락을 시작으로 대공황에 빠져듭니다. 당시 허버트 후버 미국 대통령은 수많은 경제학자의 반대에도 미국 내 농업 보호를 위한 스무트·홀리관세법에 1930년 6월 서명합니다. 관세 품목이 2만여 개로 늘어났고, 직전 25%대이던 수입 공산품 평균 관세율은 59%대로 치솟습니다. 유럽 국가들도 관세, 환율, 수입제한 등으로 보복 조치를 취했죠. 이게 걷잡을 수 없는 대공황을 불러오고, 첨예해진 국제적 갈등은 결국 제2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되고 맙니다. 이후 세계 각국은 보호주의의 무서움을 알고, 이를 배격하고 자유무역질서를 확립하려고 노력합니다. 그 결실이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과 세계화 가속, 세계경제 성장으로 이어졌습니다.

트럼프는 2018년 대통령 시절, 미국 무역확장법 제232조를 동원해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와 10%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이 법률은 과거 스무트·홀리관세법을 연상시킵니다. 트럼프 2기에 1930년대가 데자뷰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되풀이돼선 안 될 1930년대입니다.

NIE 포인트

1. 세계무역기구(WTO) 설립 전과 후의 세계경제 변화를 살펴보자.

2. 1920~1930년대 세계경제의 흐름이 어땠는지 공부해보자.

3. 관세율을 높이는 경쟁이 경제에 해악을 미치는 경로에 대해 상세히 알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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