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심장한 '쌍탑전설'로 마무리 된 '정년이', 김태리도 신예은도 빛났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2024. 11. 1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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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이’, 여성국극의 맛 알려준 김태리와 신예은의 아름다운 경쟁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tvN 토일드라마 <정년이>가 종영했다. 국극의 별이었던 문옥경(정은채)이 영화계로 떠나고 매란국극단은 빚에 허덕이다 건물을 넘겨야 하는 처지에 이르렀지만, 강소복(라미란) 단장은 그렇게 해서라도 마지막 공연이 될 수 있는 '쌍탑전설'을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그 무대 위에서 윤정년(김태리)은 아사달 역할을 맡아 매란국극단의 새로운 왕자로 등극했다.

완벽한 해피엔딩도 또 그렇다고 새드엔딩도 아닌 종영에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방대한 원작 웹툰의 서사를 그것도 단 12회에 채워넣는다는 건 <정년이>라는 드라마로서도 어떤 선택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여겨진다. 모든 걸 살릴 수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원작이 가진 퀴어 코드가 상당부분 빠졌고, 국극 이외에 당대 여성들의 생활상(이 부분은 여성국극이 가진 젠더적 의미와 맞닿는 부분이기도 하다)도 생략됐다. 또한 윤정년이라는 인물의 성장서사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인물들의 서사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정년이>가 대신 지금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여성국극'의 맛에 천착한 부분은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맞춰 <정년이>를 되돌아보면 여기서 소개된 국극들이 어떻게 작품 속 인물들의 서사와 어우러졌는가가 새삼 느껴진다. 즉 이들이 무대에 올리는 국극의 이야기와 <정년이>의 인물들의 성장이 서로 연결됨으로써 국극의 묘미를 더욱 깊이 있게 전해줬다는 것이다.

그 시작은 윤정년이 방자로 허영서(신예은)가 이몽룡으로 무대에 올랐던 '춘향전'으로 시작한다. 이제 처음 국극을 접하는 윤정년은 사람들을 웃기는 방자 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저잣거리의 광대들을 찾아가 그 방도를 찾아낸다. 자신을 온전히 내려놓고 관객들의 '광대뼈'를 올리는 광대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내는 윤정년의 모습은 '춘향전'의 방자라는 인물이 얼마나 매력적인가를 새삼 드러냈다.

'자명고'에서는 호동왕자로 등장한 문옥경(정은채)이 하는 "정녕 태평성대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이 인물이 잘 나가고 있는 매란국극단에서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다는 걸 드러낸다. 상대역인 목련공주 역할의 서혜랑(김윤혜)과 달달한 사랑이야기가 펼쳐지고 그것은 문옥경과 서혜랑의 친밀한 관계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 역시 향후 비극으로 치달을 거라는 걸 암시한다.

<정년이>가 소개한 '자명고'에서는 고미걸이라는 가다끼(악역)를 연기하는 허영서와 호동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는 구슬아기 역할의 홍주란(우다비)이 이 작품의 맛을 풍부하게 전해줬다. 이 작품에서는 윤정년이 군졸 역할을 수행하지만 극 전체가 아닌 자신만 돋보이는 모습으로 폭주함으로써 역할의 조화가 왜 필요한가를 보여줬고, 윤정년과 대결구도를 보이는 허영서의 모습와 윤정년에게 애정을 갖는 홍주란의 모습이 각각 극중의 가다끼 역할과 연인 역할과 어우러졌다.

국극단들의 합동공연으로 펼쳐진 '바보와 공주'에서 아역 온달과 공주 역할로 배역 대결을 벌인 윤정년-박초록(승희)과 허영서-홍주란의 이야기도 그들의 관계변화를 통해 '바보와 공주'가 가진 온달과 공주 사이의 심리변화에 몰입감을 부여했다. 윤정년에게 연기 그 이상의 감정을 갖게 된 홍주란이 그를 피해 허영서를 상대로 선택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우정이 흔들리는 이야기가 펼쳐졌고, 허영서의 이 복잡한 심사가 '바보와 공주'라는 작품 속 어린 공주의 역할을 더 절절하게 전해주었다.

특히 '바보와 공주'에서는 성인 역할의 온달과 공주 장면에서 전쟁에서의 승리만을 바라게 된 공주에게 점점 마음이 식어가는 온달의 모습이 무대에 펼쳐졌는데, 그것은 그 역할을 수행하는 문옥경이 이제 서혜랑을 떠날 거라는 걸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실제로 이 극을 초연하고 문옥경은 영화계로 떠남으로써 서혜랑은 파탄 지경에 이르고 매란국극단은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드라마가 소개한 마지막 무대로 '쌍탑전설'을 선택했다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석가탑을 둘러싼 애틋한 사랑이야기지만 이 작품에는 아사달과 달비의 경쟁과 대결구도가 등장한다. 그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전설적인 탑이 완성된다는 서사가 들어있는 것. 이것은 <정년이>가 끝내 선택한 것이 윤정년과 허영서라는 두 인물의 아름다운 경쟁을 통한 성장과 예술의 완성이라는 걸 보여준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이 작품이 보여줬던 여성국극들의 장면들은 긴 여운으로 남았다. 그건 어쩌면 이 작품이 많은 걸 포기하더라도 궁극적으로 담아내려 했던 것이 바로 여성국극의 매력이라는 걸 에둘러 말해주는 듯 하다. 그 맛을 아름다운 대결을 통해 보여준 김태리도 신예은도 빛났다. 이들의 혼신의 연기가 있어 <정년이>의 긴 여운이 가능할 수 있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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