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노란빛 대신 초록빛 감귤이 데굴데굴… 온난화 역풍 맞은 제주 감귤거점 가보니
농진청, 변한 기상 조건에 적응하는 韓 품종 개발에 박차
“역대급 열대야로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줄어들면서 노랗게 익어야 할 감귤들이 초록빛을 띠고 있습니다. 그래도 당도는 깐깐하게 따져 출하하고 있습니다.”
지난 14일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남원농협 감귤거점APC. 선별장 안에서는 노란빛을 띤 감귤들과 푸르스름한 감귤들이 기계 위를 빠르게 굴러가고 있었다. 두 명의 직원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터지거나 상한 감귤을 골라냈다. 선별기에 올라탄 감귤들은 크기와 당도 측정 절차를 거쳐 각기 다른 컨베이어벨트로 흘러갔다. 당도가 낮거나 손상된 감귤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고, 선별을 마친 감귤들은 크기와 품질에 따라 상자에 차곡차곡 담겨 출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올해 여름, 유례없는 폭염과 열대야는 감귤 착색에 영향을 줬다. 제주 북부 지역에서는 75일간 열대야가 기록됐고, 서귀포와 성산 지역에서도 각각 68일, 59일의 열대야가 이어졌다. 낮과 밤의 온도 차가 줄어들고 밤에도 높은 온도를 유지하면서 감귤이 노랗게 익지 못하고 초록빛을 띤 채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초록빛을 띠는 감귤은 덜 익었다고 여겨지기 쉽고, 시큼하거나 단맛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올해 초록빛 감귤은 착색이 부족할 뿐 당도는 기존 기준을 충족하거나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제주도는 감귤 생산 및 유통에 관한 조례를 개정해 착색률과 상관없이 당도가 높으면 판매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는 감귤 열매 착색률이 50% 미만이면 시장에 유통할 수 없었다. 현재는 감귤 착색률과 상관없이 당도만 8.5 브릭스 이상이면 시장에 판매할 수 있다.
그럼에도 올해 극조생 감귤 출하량은 4.8톤(t)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시기 19.8톤과 비교하면 75% 이상 감소한 수준이다. 출하된 감귤은 착색률은 낮았지만, 당도는 8.5~9.9브릭스로 품질이 우수한 편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색만 덜 변했을 뿐, 품질이 뛰어난 감귤도 많다”며 “소비자가 맛과 품질에 실망하지 않도록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극조생 감귤이 폭염과 열대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후 출하될 조생과 중만생 품종은 공급에 큰 차질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 감귤유통과에 따르면, 올해 노지감귤의 생산량은 전년과 비슷하거나 소폭 감소할 전망이다. 제주도의 착색률 기준 완화 조례 개정으로 출하량은 전년보다 소폭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지감귤 출하량은 40만8000톤으로, 지난해(39만8000톤)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한편 정부는 폭염과 열대야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제주도에 위치한 농촌진흥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감귤연구센터는 국내 감귤 품종의 다양화와 자급화를 목표로 품종 개발과 보급을 추진 중이다. 감귤연구센터는 변해가는 기상 조건에 맞춰 적응력 높은 품종을 육성하고, 이를 농업 현장에 신속히 확산시키기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지난 10여 년간 센터는 국내 육성 품종인 하례조생, 윈터프린스, 미니향 등의 보급률을 크게 향상시켰다. 2014년 1.0%에 불과했던 국내 육성 품종 보급률은 2023년 4.1%로 높아졌고, 국내 육성 묘목의 점유율은 2019년 8.6%에서 2023년 22.2%로 급증했다.
이는 기존 수입 품종에 의존하던 구조를 개선하고, 국내 품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 외에도 농진청 온난화대응농업연구센터는 감귤 및 아열대 작물의 품종 개발과 재배 기술 연구를 통해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김명수 농진청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은 “노지 감귤의 품종 다양화, 건강 기능성 강화 등이 미래 감귤 산업이 나아갈 방향”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특성을 가진 품종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보급해 농가의 소득을 높이고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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