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경로’가 시장 헤집는다…불법 유통에 멍드는 K콘텐츠

조유빈 기자 2024. 11. 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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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전반으로 확산…K드라마‧웹툰부터 한강 소설까지 버젓이 유통
저작권 침해 넘어 산업까지 타격…불법 사이트 리스크도 주의해야

(시사저널=조유빈 기자)

어디에서나 자라나고, 잘라내도 다시 자라난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은밀하게 생겨나 빠르게 확산하고, 심각한 피해를 끼치면서 생태계를 파괴한다. 불법으로 유통되는 콘텐츠들을 '독버섯'이라 부르는 이유다. 운영자가 검거되고 불법 사이트가 폐쇄돼도 유사 사이트는 계속 등장하고, 도메인을 바꿔가며 이용자들을 지속적으로 끌어들인다.

적발도 처벌도 쉽지 않은 사이, 유통되는 콘텐츠 영역은 웹툰과 웹소설, 영화, 방송 등 장르를 불문하고 넓어지고 있다.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드라마 《정년이》와 원작 웹툰, 시즌2가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지옥》, K문학을 세계에 알린 한강 작가의 소설까지 불법 사이트에서 소비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어둠의 경로로 유통되는 불법 콘텐츠들이 시장을 헤집으면서 정당한 수익원을 잃은 K콘텐츠 생태계가 흔들리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OpenAI DALL·E 사용)

누누TV 저작권 피해만 5조원 육박 추산

11월9일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누누TV'의 운영자가 검거됐다. 그가 붙잡히면서 누누TV 폐쇄 이후 운영하던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티비위키'와 웹툰 불법 사이트 '오케이툰'도 문을 닫았다. 문제는 '검거'와 '폐쇄'에도 불법적인 콘텐츠 흐름이 멈추지 않는다는 데 있다. 티비위키는 곧바로 인터넷 주소(URL)를 바꿔 서비스를 재개했다. 11월13일 현재도 접속과 스트리밍이 가능하다.

콘텐츠 산업이 성장하면서 등장한 음지 시장은 무료 콘텐츠를 찾는 트래픽과 불법 광고 수익을 양분으로 삼아 몸집을 키웠다. 누누TV(영상)와 '밤토끼(웹툰)'로 대표되던 불법 콘텐츠 사이트의 질긴 생명력과 끊임없이 생겨나는 아류 사이트의 존재가 한국 콘텐츠 산업을 흔들고 있다. 2016년부터 3년간 웹툰을 불법으로 퍼나른 밤토끼의 한 달 방문자 수는 3500만 명에 달했다. 운영자가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검거되면서 사이트는 멈췄지만, 웹툰 플랫폼과 작가들은 밤토끼로 인해 7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누누TV는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티빙, 웨이브 등 OTT 플랫폼에서 스트리밍되는 드라마와 시리즈, 영화, 예능 콘텐츠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이용자들을 빠르게 끌어모았다. 구독을 하지 않아도 최신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음지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그 여파는 OTT 플랫폼에까지 미쳤다. 업계는 누누TV로 인한 저작권 피해가 4조9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콘텐츠 부가 판권, 해외 수출 등을 고려하면 피해액은 더 커진다.

사이트가 셔터를 내린 후에도 유사 영업은 이어지고 있다. 아류 사이트의 트래픽은 합법적 플랫폼의 트래픽을 위협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강유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8월 한 달간 불법 웹툰 사이트 5곳과 웹소설 사이트 1곳의 트래픽을 분석한 결과, 총 방문 횟수는 2억6000만 회, 페이지 뷰는 22억5000만 뷰에 달했다. 특히 현재 대표적인 불법 웹툰 사이트로 군림하고 있는 뉴토끼가 63%의 트래픽을 점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사이트는 대부분 해외 서버를 이용하기 때문에 단속이 어렵고, 운영자를 특정하기도 쉽지 않다. 이에 대한 방심위의 접속 차단 건수가 2021년 3517건에서 2023년 7176건까지 증가하는 등 제재 건수도 늘어나고 있지만, 불법 사이트가 다른 곳에서 자라나는 시간은 더 빨랐다. 차단 조치가 이뤄지면 서비스를 중단했다가 도메인을 일부 변경해 다시 등장하는 방식이다. 누누TV는 지난해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URL 차단에 나서자 서비스를 종료했고, 사흘 후 도메인을 바꿔 '시즌2'를 재개했다. 티비위키도 'tv51'을 사용하는 도메인이 차단되자 'tv52' 'tv53'으로 이름을 바꿔 대체 사이트를 가동한 바 있다.

웹툰 작가 40%가 불법 공유 피해 입어

특히 불법 유통의 중심에 있는 콘텐츠는 웹툰이다. 캡처 등을 통해 손쉽게 복제할 수 있고, 용량이 작아 사이트에 업로드하기도 용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합법적 플랫폼의 유료 회차 웹툰을 무료로 읽으려는 이용자들의 수요가 꾸준히 존재한다. 이렇게 커진 '불법 시장'의 규모도 상당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웹툰 불법 시장 규모는 7215억원에 달한다. 합법적인 웹툰 시장 규모(1조8290억원)의 40%에 가까운 비중이다. 웹툰 작가 중 39.5%가 자신의 작품이 불법 공유 사이트에 게재된 경험이 있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저작권보호원)이 2023년 8월25일~10월18일까지 해외 불법 유통 사이트에서 유통된 한류 콘텐츠 실태를 조사한 결과 웹툰이 2억3900만 개, 영화·방송 등 영상 콘텐츠가 1억1100만 개 유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불법 유통량 중 2023년 방영·개봉·연재된 콘텐츠가 30% 이상이었다. 최신 콘텐츠의 불법 유통은 K콘텐츠 산업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콘텐츠 매출뿐 아니라 수출로도 이어지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산업은 부흥하고 있지만, 2023년 연간 콘텐츠 산업 매출은 151조585억원으로 전년 대비 0.01% 감소했다. 콘텐츠 산업 수출액 역시 129억6295만 달러로 전년보다 2.1% 줄어들었다.

《지옥》 《D.P.》 등을 제작한 클라이맥스 스튜디오의 변승민 대표는 "특히 웹툰과 영화는 불법으로 유통됐을 때 창작자들의 수익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분야이기도 하다. OTT의 경우 플랫폼 구독자 감소 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일부 바이럴이 되면서 정식 플랫폼으로 이용자가 유입되는 경우도 있지만, 불법으로 다양한 작품이 유통되면서 콘텐츠 산업에 타격을 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콘텐츠 제작사나 유통사가 불법 유통을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웹툰 전문 프로덕션 콘텐츠랩블루의 임민혁 이사는 "불법 유통에 대한 우려는 제작·유통사에 상존한다. 밤토끼 등을 잡아도 유사 사이트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제작 부담이 상당하지만 불법으로 작품이 번역돼 유통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여력이 있는 회사들은 작품을 여러 언어로 동시 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콘텐츠랩블루는 웹툰 《네크로맨서 학교의 소환 천재》를 한국어, 영어, 일본어, 태국어 등으로 동시 출시해 연재 중이다.

저작권 보호 릴레이 한컷 웹툰 1화 김인정 작가, 8화 은민 작가 ⓒ저작권보호원

전 연령대에서 불법 콘텐츠 소비…리스크는?

불법 콘텐츠를 이용하는 이유는 단연 '돈'이다. 저작권보호원의 '2024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를 보면 이에 대한 이용자들의 인식이 드러난다. 18.4%가 불법 영화 콘텐츠를, 15.4%가 불법 웹툰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무료이거나 저렴해서' '원하는 최신 콘텐츠를 구할 수 있어서'가 주된 이유였고, '이미 많은 사람이 이용하고 있어서'란 이유도 그 뒤를 이었다.

영화의 경우 20대와 40대에서 20% 이상의 이용 경험을 보였지만, 50대(17.5%)와 60대(10.7%)가 불법 사이트를 이용해 콘텐츠를 본 경험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법 유통 콘텐츠가 소비되는 현상이 전 연령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불법 콘텐츠는 '시청'에서 그치지 않고, '공유'까지 이어진다. 대부분은 작품명이나 '무료 웹툰'을 검색해 불법 사이트에 들어오지만, 친구나 동료 등의 소개로 발을 들이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10명 중 3명은 불법 콘텐츠 사이트 링크나 웹툰 이미지를 공유했다. SNS나 인터넷 블로그 댓글을 통해 링크 공유를 하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USB 등을 이용해 콘텐츠 자체를 오프라인으로 공유하는 경우도 20% 이상이었다.

이미 일부 이용자는 불법 사이트를 무료 콘텐츠 사이트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요소도 많다. 정당한 콘텐츠의 대가를 아끼는 대신, 검은돈을 보태줄 수도 있다. 불법 콘텐츠 사이트의 '돈줄'은 도박·성인물 사이트다. 도박·성인물 광고를 수십 개 게재하고, 무료 웹툰으로 트래픽을 유도하면서 돈을 버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불법 사이트에 게시되는 배너 광고 비용은 건당 100만~300만원이다. 밤토끼의 경우, 성인물 사이트와 도박 사이트 등을 광고하면서 10억원에 달하는 부당 수익을 챙긴 바 있다.

저작권 보호 릴레이 한컷 웹툰 11화 이언 작가, 15화 슥수 작가 ⓒ저작권보호원

콘텐츠를 찾아온 사람들을 '어둠의 경로'로 연결하는 역할도 하고 있기에, 청소년 보호 차원에서도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로 불법 웹툰 사이트 이용자 중 32.3%는 유해 사이트에 접속한 경험이 있다. 접속 사이트는 사설 스포츠 토토나 불법 온라인 도박 사이트가 67.3%였고, 성인물 사이트가 58.3%, 성인용품 쇼핑몰이 44.7%였다(중복 응답). 유해 사이트에 접속한 사람 중 24.1%는 성인물을 다운로드하거나 스트리밍했고, 15.1%는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도박에 직접 참여했다. 불법 콘텐츠 사이트와 배너를 통해 연결되는 도박·성인물 사이트는 보안이 취약한 경우가 많다. 랜섬웨어 감염과 그로 인한 개인정보 유출 등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용자의 인식이다. 대중이 이용하지 않으면 트래픽으로 인한 광고 수익도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의 '합법적' 콘텐츠 이용을 장려하기 위해, 저작권보호원과 한국만화가협회 소속 작가들이 손을 잡았다. 네이버웹툰 《최고의 뿔소라》의 김인정 작가, 《박제하는 시간》의 이언 작가, 카카오웹툰 《여주의 첫사랑을 빼앗아 버렸다》의 은민 작가, 《웃음》의 슥수 작가 등이 릴레이 웹툰에 참여해 콘텐츠 저작권 보호 메시지를 전했다.

저작권보호원은 불법 콘텐츠 사이트에 대응하기 위해 콘텐츠 플랫폼 등과 실무협의체를 꾸리고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밤토끼 등으로 인한 피해가 확산됐을 때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협력을 강화하면서 사이트 폐쇄에 큰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네이버와 구글 등 검색 포털의 협조를 통해 불법 사이트 검색을 차단하고, 방심위에도 모니터링 정보를 제공한다.

저작권보호원 관계자는 "대부분의 불법 사이트가 광고 수익을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다. 운영자 수익을 감소시키는 것이 저작권 침해 근절에 유효하다고 보고 광고 차단 조치를 진행 중"이라며 "디지털광고협회와의 협력을 통해 2023년 약 4000건의 광고를 중단했다"고 말했다. 또 "콘텐츠 보호 기술을 도입하고 싶지만 비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 영세 콘텐츠 제작사 등을 위해 보호 기술 지원 사업을 통해 파일 유출이 불가하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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