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약자에만 돈 더 받고 이자는 덜 줬다

정호원 2024. 11. 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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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절감’ 은행들 비대면 전환
비대면 고객 ‘우대조건’ 차별 혜택
영업점 이용 줄어들며 점포 폐쇄
취약계층 온라인 우대책 소외 증가
은행대안도 실효성 부족 보완 필요
서울 한 시중은행 영업점에서 고객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정호원 기자

“은행 영업점에 직접 와 가입하면 수수료가 더 부과됩니다”

최근 연금저축 등 투자 상담을 위해 은행 영업점을 찾은 정모(28) 씨는 창구에 앉아 상품을 소개받고 싶다는 의사를 표하자마자 “앱은 설치하셨냐”는 질문을 받았다. 앱을 설치했다고 답하자 직원은 영업점에 방문하지 않아도 앱을 통해 간편하게 상품에 가입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에 정씨가 “영업점에서 가입하는 게 더 안전하다고 생각해 방문했다”고 설명하자 직원은 “비대면으로 가입해야 수수료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비대면 가입을 권유했다.

디지털 전환에 촉각을 곤두세운 은행들이 모바일 고객 유치를 위해 금리 혜택과 수수료 면제 등 우대조건을 내세우면서 사실상 ‘대면 고객 페널티’를 적용하고 있다. 이에 대면 업무를 선호하는 노인 등 취약계층은 디지털 혜택에서 소외돼 사실상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영업점이 줄어들며 금융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은 덤이다.

이같은 비판에 은행권은 시니어 대상 특화점포를 만드는 등 사회공헌 활동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점포 수 또한 소수에 그치며 실질적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소외’를 겪는 금융취약계층을 위해 은행이 실질적인 금융 교육자 역할을 맡고, 대면 업무를 대신할 책임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요 시중은행들이 올해 상반기 판매한 대다수 금융상품의 비대면 신규 판매 비중이 대면 판매 비중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은행은 예·적금, 신용대출, 펀드 부문에서 모두 80% 이상 비대면 판매되며 디지털 전환이 가장 두드러졌다. 하나은행은 신용대출 중 95%가 온라인에서 이뤄지면서 여신 부문에서 사실상 완전한 디지털화를 기록했다. 비교적 까다로운 담보대출에서도 비대면 비중이 68.7%를 차지했다.

은행의 비대면 전환에는 ‘비용 절감’이 중요한 이유로 자리 잡고 있다. 신한은행은 상반기 디지털 영업으로 올해 35%가량 비용 절감 효과를 얻었다고 발표했다. 2023년엔 비용 절감 효과 10%를 기록하며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비용 절감 효과가 더욱 커지는 추세다.

문제는 은행이 비대면 고객에게만 차별적인 혜택을 적용하는 등 사실상 ‘대면 고객 페널티’를 적용해 비대면 고객을 늘리는 방식을 취한다는 데 있다. 애써 영업점을 찾는 고객에 되레 더 비싼 비용을 청구하고 있는 셈이다.

‘모바일 전용’ 예·적금 상품이 대표적이다. 국민은행 모바일 전용 ‘KB Star 정기예금’의 연 최고 금리는 3.4%로, 영업점에서 가입 가능한 ‘일반정기예금’(최고 2.5%)보다 약 1%포인트 높은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신한은행 모바일 전용 ‘신한 스마트 적금’은 연 최고 금리 3.5%로, 영업점에서 가입 가능한 ‘정기적금’(최대 2.5%)보다 1%포인트 더 높은 금리가 책정됐다.

은행들은 비교적 손실 가능성이 높은 투자 상품을 판매하면서, 비대면 가입을 우대한다며 홍보를 하기도 했다. 실제 이달 초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을 방문해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을 문의한 결과 영업점 직원은 “IRP는 만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만큼 0.3%의 수수료도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며 모바일 가입을 권했다. 이날 받은 IRP 가입안내서에는 “신규 가입 시 스마트뱅킹 신규고객 수수료 면제”라고 적혀 있었다.

비대면 이용객 수는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K대범해진 금융사고B금융그룹의 앱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올해 9월 기준 2525만명으로 2022년 9월(1785만명) 대비 41.5%(740만명) 증가했다. 동 기간 신한금융그룹 21.8%(406만명), 하나금융그룹 16.7%(233만명), 우리금융그룹 7.52%(150만명)이 확대됐다.

하지만 비대면 업무를 보는 데 어려움을 겪는 노인 등 금융취약계층은 온라인 우대책에서 소외돼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마켓70 2023’에 따르면 연령별 금융 서비스 이용 현황에서 ‘지난해에 스마트뱅킹 거래를 이용했다’고 답한 60대 이상 응답자는 49%에 그쳤다. 20·30·40·50대에서 모두 90%대 이용률을 보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박모(68) 씨는 “평소 찾는 은행까지 집에서 40분가량 걸리긴 하지만, 해야 하는 은행 업무가 있을 때마다 찾는 편”이라며 “직원들이 스마트폰 사용법 등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익숙해지지도 않을 뿐더러, 휴대폰으로 돈이 오고 가는 게 불안해 아직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렇듯 노인들은 통상 영업점 방문을 모바일 이용보다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은행이 점포 폐쇄에 속도를 내며 금융 접근성마저 훼손되고 있다. 올 상반기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국내 영업점(출장소 포함) 수는 3920개로 5년 전인 2019년 6월 말(4682개) 대비 16.3%(762개) 줄었다.

지역별로도 은행 점포 감소세에 차이를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 4개 권역(강원·경상·전라·충청도)의 은행 지점 당 인구수는 평균 1만5371명으로 서울특별시(5838명)와 비교해 3배가량 붐볐다. 서울 내에서도 노인 인구가 많은 도봉구에서는 4대 은행이 13개 지점을 운영 중이지만, 강남구에는 189개의 지점이 쏠려 14배가량 접근성 차이를 보였다.

점포 폐쇄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자 은행권은 시니어 점포 개설, 디지털 금융 교육 등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에 나서며 대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시니어 특화 점포가 수도권에 치중돼 지방에 거주하는 고령층의 접근성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는 데다, 금융 교육 등도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허다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시중은행에서 금융교육을 전담하는 은행원 A씨는 “디지털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고령자는 앱 사용법을 몇 번 배워도 이를 활용하는 데까지는 오래 걸린다”면서 “소수 인원을 대상으로 반복적으로 교육해야 해, 수혜 인원에 한계가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이 고정비용을 줄이기 위해 디지털 전환에 속도를 내는 건 사실”이라면서 “점포를 일정 수준 유지하면서, 노인의 모바일 이용률을 서서히 높여가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자봉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지방 은행 폐쇄는 지방 거주 노인의 금융 접근성을 크게 저해할 수 있다”면서 “차량에 은행의 기능을 더한 출장 점포를 해외에서 적극 활용하고 있어 국내에서도 이 같은 대안을 더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호원·김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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