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몽촌과 웅진, 곰말과 곰나루[이기봉의 우리땅이야기]

2024. 11. 18. 11:3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475년 9월, 고구려군 3만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포위해 북쪽 성을 공격한 지 7일 만에 함락시키고 남쪽 성으로 옮겨 공격해오자 개로왕이 성문을 나가 도망하다가 고구려군에 잡혀서 처형됐다.

아들 문주가 두 신하와 함께 남쪽 신라로 가서 구원병 1만을 데리고 돌아왔지만, 수도 한성은 이미 파괴되고 아버지도 살해됐기에 백제의 22대 임금에 오른 후 그해 10월에 곰나루(熊津)로 수도를 옮겼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475년 9월, 고구려군 3만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포위해 북쪽 성을 공격한 지 7일 만에 함락시키고 남쪽 성으로 옮겨 공격해오자 개로왕이 성문을 나가 도망하다가 고구려군에 잡혀서 처형됐다. 아들 문주가 두 신하와 함께 남쪽 신라로 가서 구원병 1만을 데리고 돌아왔지만, 수도 한성은 이미 파괴되고 아버지도 살해됐기에 백제의 22대 임금에 오른 후 그해 10월에 곰나루(熊津)로 수도를 옮겼다.

고구려군이 한성을 공격할 때 개로왕이 들어가 지키고 있던 남쪽 성은 지금의 몽촌토성이다. 백제가 곰나루로 수도를 옮긴 후 성은 완전히 폐허가 됐고, 얼마 후 사람들이 그곳에 들어가 살면서 마을을 이뤘다. 그러고는 마을의 이름을 곰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는데, 한자로는 夢(꿈 몽)과 村(마을 촌)의 뜻을 빌려 夢村(몽촌)이라 표기했다. 1970년대 강남 개발과 88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대대적인 정비가 이뤄지면서 그곳을 곰말이라 부르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떠났다. 이제 그곳이 곰말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게 됐다.

지금까지의 이야기 속에 뭔가 깊은 상관관계가 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 두 개의 이름이 있다. 곰나루와 곰말이다. 곰나루에서의 ‘곰’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몸집이 거대한 동물이 아니다. 몽골-만주-한반도에서 어느 지역, 어느 국가, 어느 민족, 어느 부족의 우두머리를 지칭했던 칸·한·간·금과 같은 뜻의 약간 다른 소리다. 곰나루는 백제가 수도를 건설해 임금이 사는 나루, 즉 항구도시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곰말의 의미도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백제의 임금이 살던 왕성에 들어선 마을’이란 뜻이다.

夢村(몽촌)과 熊津(웅진)이란 한자 지명에서는 뜻과 소리 어느 측면에서도 연관성을 찾기가 어렵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1500년 넘게 불러왔던 곰말과 곰나루란 우리말 지명에서는 역사적 연관성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부르던 이름을 잃어버린 우리, 아쉽지 않은가?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관

Copyright © 문화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