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최고 ‘재무통’ 주우정도 풀기 힘든 엔지니어링 IPO, 이유는
차그룹 편입 후 첫 ‘재무통’ 수장
IPO·원가율 개선 등이 과제
증시·업황 악화로 당장 IPO는 쉽지 않을 듯
15일 선임된 주우정 현대엔지니어링 신임 대표이사 사장은 현대차그룹 내 최고 재무 전문가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 사장은 정 회장이 수석부회장에 올라 그룹 경영을 총괄하기 시작했던 2018년 말 기아 재경본부장(전무)으로 선임돼 기아의 실적 개선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현대차그룹은 “주우정 사장은 그룹 내 대표적 재무 전문가로 기아 창사 이래 최고 실적 달성에 기여한 핵심 인물”이라며 “현대엔지니어링 실적 부진 타개와 함께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직 전반의 체질 개선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선임 배경을 밝혔다.
건설업계에서 꼽는 주 사장의 과제는 한번 좌초됐었던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공개(IPO) 추진과 원가율(매출액에서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 개선을 통한 이익 창출 능력 향상이다. 다만 건설업황 악화와 증시 부진이 동시에 겹친 상황이라 녹록지 않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증시 불안정성이 커진 상황에서 구주매출(기업이 상장할 때 기존 주주가 갖고 있던 주식을 공모주 투자자들에게 파는 것)을 대거 포함한 현대엔지니어링의 IPO가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라는 분석이 많다. 공모가격을 확 낮추지 않고 다시 IPO를 추진하다가는 2022년 실패의 전철(前轍)을 다시 밟을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주 사장은 당장 IPO를 다시 시작하기보다 원가율 개선 등을 통한 이익 창출 능력을 높이는 데 주력할 가능성도 있다.
◇ 현대차그룹 편입 후 첫 재무통 CEO, IPO 추진 재개할 듯
1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이 현대차그룹에 편입된 2011년 이후 재무 전문가가 현대엔지니어링의 수장(首長)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통적으로 현대엔지니어링 CEO는 모두 토목 또는 화공플랜트 전문가였다. 그룹사 편입 전인 2009년 선임된 김동욱 사장은 인프라·환경사업본부 부사장을 지낸 토목 전문가다. 그룹사 편입 이후인 2011년 6월 선임된 김위철 사장은 화공플랜트사업본부장 출신이었다. 이후 성상록, 김창학, 홍현성 사장도 모두 (화공)플랜트사업본부장을 지낸 화공플랜트 전문가들이다.
반면 주 사장은 그룹 내 최고 재무통으로 꼽힌다. 기아유럽판매법인(KME) 재무실장, 현대제철 재무관리실장을 거쳐 2018년 기아 재경 본부장에 선임됐고 2020년과 지난해 두 번 재선임됐다. 엔지니어 출신에서 재무 전문가가 경영의 바통을 이어받은 첫 사례인 셈이다. 업계에서 “현대차그룹이 다시 엔지니어링 IPO 도전을 벼르고 있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현대엔지니어링은 2021년과 2022년 IPO를 추진했지만,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 참패하며 스스로 접었다. 당시 수요예측의 실패 원인은 구주(舊株)매출 비중이 높았기 때문이다. 구주 매출은 기업이 상장할 때 기존 주주가 갖고 있던 주식(구주)을 공모주 투자자들에게 파는 것이다. 이 비중이 높으면 공모자금이 회사로 유입되지 않고 기존 주주의 개인 자금으로 들어가기에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현대엔지니어링은 신주 모집 25%(400만주), 구주 매출 75%(1200만주)로 IPO를 구성했고 구주 매출 중에선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보유한 534만주와 정몽구 명예회장이 보유한 142만주도 포함됐다.
재무 전문가의 CEO 취임으로 현대엔지니어링의 IPO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졌지만 시장 상황은 더욱 불확실성이 커졌다. 현대엔지니어링이 IPO를 접은 2022년 1월 28일 코스피지수 종가는 2663.34로 2600을 훨씬 웃돌았다. 그러나 현재는 2400선(15일 종가 2416.86)까지 내렸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시가 지난번 IPO 추진 당시보다도 더 악화했기에 엔지니어링이 기업공개를 하기에는 밸류에이션(기업가치 대비 주가) 부담이 큰 상황”이라며 “특히 지금처럼 시장이 안 좋을 때는 투자자들이 구주매출 비중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현대엔지니어링으로서는 더욱 IPO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건규 르네상스자산운용 대표도 “증권시장 상황이 많이 안 좋은 상황이고 현대엔지니어링은 과거 IPO 추진 당시에도 밸류에이션 논란이 있었던 곳이라 다시 IPO를 추진하는 것은 상당히 힘들 것”이라면서 “건설이나 플랜트 업황 부진까지 겹쳐 지금 IPO를 추진하려면 밸류에이션을 크게 낮춰야 할 것”이라고 했다.
◇ 95% 넘는 원가율 해결, 플랜트 등 주택 외 사업에 집중할 듯
원자잿값 상승에 따른 원가율 개선도 주 사장이 풀어야 할 과제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원가율은 이미 95%를 넘었다. 1조원짜리 공사에서 매출원가가 9500억원 넘게 든다는 의미로 원가율이 높으면 인건비 등을 제외한 영업이익은 더 낮아진다. 주 사장이 이끄는 현대엔지니어링은 주택 정비사업 등 착공 이후 원자잿값 상승을 반영하기 힘든 사업을 줄이고 기존에 수주했던 해외 플랜트에 대해선 원자잿값 상승을 반영할 수 있도록 재협상하는 등 원가율 개선에 힘쓸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현대엔지니어링의 원가율은 95.8%다. 전년 같은 기간(95.4%)에 비해 소폭 상승하며 1년 넘게 95%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원가율의 고공행진은 이익 감소와도 직결됐다.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은 522억2300만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21.2%(141억2900만원) 줄었다.
박철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주택사업은 착공 후 이미 분양가가 정해져 원자잿값이 올라도 건설사가 이를 발주처에 반영해달라고 할 수 없는 구조지만 플랜트 사업은 원자잿값 인상에 따른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면서 “현대엔지니어링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플랜트 사업 부문 중심의 재협상 노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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