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파적 <62>] 남자가 여탕에 가도 처벌 못 한다? 포괄적 차별 금지의 심리학
전한길씨는 공무원 인터넷 강의 사이트에서 누적 수강생 수가 100만 명이 넘는 이른바 ‘일타 강사’다. 그가 얼마 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하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취지의 동영상 강의를 유튜브에 올렸다. 그러자 특정 일간지에서 그의 강의 내용을 두고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쏟아냈다’고 지적했다.
나는 전씨의 그 강의 영상을 여러 번 다시 돌려 봤다. 그의 주장은 간단명료했다. “인종이 다르다고 해서, 혹은 여성이나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너무 당연하다.” 요컨대 전씨는 이러한 개별적 차별(individual discrimination)은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포괄적 차별(comprehensive discrimination)이다. 포괄적 차별 금지에서는 차별 범위를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는다. 광범위하고 두루뭉술하게 규정한다.
유전자, 호르몬, 생식기, 생리학적 특성에 의하여 구별된 성별을 우리는 생물학적 성(biological sex·이하 섹스)이라 부른다. 반면 어떤 개인이 자신의 성별을 생물학적 기준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기대에 따라 남성, 여성, 혹은 그 외 성별로 인식했을 때의 성별은 사회심리학적 성(gender·이하 젠더)이라고 한다. 포괄적 차별 금지를 주장하는 사람에게 섹스와 젠더의 구별은 무척 중요하다. 가령 핀란드에는 ‘성별의 법적인 인정에 관한 법(Act on Legal Recognition of Gender)’이 있다. 개인이 법적으로 성별을 변경할 수 있는 횟수를 1년에 한 번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생물학적 남성이 자신을 여성이라고 신청하면 법적으로 여성으로 인정해 준다는 말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어떤 문제점이 생길 수 있을까. 전씨의 입장에서 보면, 핀란드처럼 섹스가 아닌 젠더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포함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야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물학적으로는 남성인 어떤 사람이, 법적으로 여성의 젠더를 획득하여 여성으로 행세할 수 있게 된다.
법적 보장을 받는 이 ‘여성 호소인’은 성전환 수술을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남성의 외형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가 (혹은 그녀가) ‘나는 이제부터 여성이므로여자 화장실, 여성 탈의실 심지어 여탕에도 맘대로 들어가겠다’고 우기면 법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게 된다. 한 발짝 더 나아가 ‘나는 여성이므로 군대에 가지 않겠다!’라고 선언해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이미 미국·영국·핀란드에서 부작용
포괄적 차별 금지가 포함하는 대상은 그야말로 포괄적이다. 거칠게 말하면 ‘누군가가 듣기 불편하고 심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모든 것’이 차별 금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동성애 문제, 낙태 문제 등 기존에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대상이 되었던 거의 모든 테마까지 문자 그대로 모두 포괄하게 되는 것이다.
전씨의 발언은 순전히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상상력의 소산일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다. 2023년 6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한 도시에서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설교를 한 데이먼 앳킨스 목사가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앳킨스 목사는 성소수자 모임이 있는 장소 근처에서 성경을 읽다가 질서 위반으로 체포됐다.
미국 경찰에 따르면, 그는 행사에 방해가 될 만큼 소란을 피웠고, 그의 설교 내용이 아니라 그의 행동이 문제의 원인이었다고 한다. 반면 앳킨스 목사는 경찰에게 ‘이곳은 공공재산’이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으나 결국 체포됐다는 것이다. 앳킨스 목사는 나중에 ‘혐의 없음’으로 석방됐지만, 한국에서도 동성애에 대한 의견 차이가 어떻게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전조가 아닐까 한다.
2022년 11월 영국에서는 한 남성이 낙태를 시행하는 클리닉 근처에서 침묵 기도를 했다는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의 기도는 ‘낙태 반대’로 간주되면서 재판에 회부됐다. 애덤 스미스 코너라는 이 남성은 향후 2년간 추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는다는 조건부 유죄였는데, 추가로 9000파운드(약 1200만원)의 소송비용도 지불하라는 판결을 받았다고 한다. 애덤은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오늘 법원은 특정한 생각, 즉 침묵 속의 생각도 불법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올바르지 않다. 내가 한 것은 오직 하나님께 기도한 것뿐이다. 이조차 범죄로 간주하는 것은 충격적이다.”
이 사건은 의사 표현의 자유, 종교 활동의 자유를 어느 선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법이 개인의 자유를 이렇게 일거수일투족까지 규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며 논란이 되고 있다.
전씨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차별금지법이제정되었을 경우에 어떤 부작용이 생길 것인지는 이와 유사한 법을 이미 제정, 시행하고 있는 미국, 영국, 핀란드 같은 선진국의 예를 봐서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앞서 말한 모 신문사는 아마도 전씨가 가진 일타 강사로서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이번 사태를 좌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기사를 쓴 기자의 시각은 일종의 ‘혐오 프레임(hate frame)’ 혹은 ‘차별 프레임(discrimi-nation frame)’에 다름없다는 혐의를 벗어나기 힘들 것 같다. 기자가 쓴 기사의 한 문단을 인용해 보자. “전씨는 이 강의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를 여과 없이 내비쳤다. 그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경우) 남자가 ‘나는 여자다’라고 선언하면 곧바로 여자 화장실에 들어가도 되는 것이 된다거나, 입대를 앞두고 남자가 여자로 성전환하겠다고 하면 군대 안 가도 된다는 식의 허위 사실을 쏟아냈다. 그는 “딸을 키우는 아버지로서 우리 딸을 보호해야 하므로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그 기자는 전씨의 강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전씨의 말이 왜 혐오를 유발하는 것인지, 혹은 어떤 부분이 왜 사실이 아닌 허위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그냥 ‘혐오를 여과 없이 내비쳤다’ ‘허위 사실을 쏟아냈다’는 등의 표현으로 싸잡아 깎아내린다. 내가 전형적인 혐오 프레임, 차별 프레임 전술을 동원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포괄적 차별 금지 반대에 대한 전씨의 주장에 대해서 기자가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감정적인 반응을 유도하고 비판적 사고를 저해한다면, 그것이 혐오 프레임이다. 사회적 대화와 건전한 소통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일방의 관점에서 갈등을 심화시키고, 대안적인 시각을 억압하게 한다면, 그것이 혐오 프레임이 아니면 무엇인가.
생각 표현하는데 심각한 위축감 느낄 수도
사회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차별금지법이나 정치적 올바름이 지나치게 강조될 때 차별에 대한 과도한 민감성을 조장한다. 사람들이 자신을 피해자로 인식하게 한다. 사람들에게 발생하는 갈등이나 불쾌한 경험을 차별로만 규정할 경우, 사람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다른 의견을 수용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을 회피하거나 이를 외부 요인으로 돌리게 된다.”
누군가가 어떤 주장이 자기 편의 주장과 같지 않거나 상반된다고 하여, 덮어놓고 혐오, 차별 등의 프레임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려는 시도는 사상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데 심각한 위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보아도 건전한 토론 문화가 정립되기는커녕 갈등만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그나저나 어떤 장소에서 소란을 피우며 폭력적인 시위를 한 것도 아니고 성경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되고, 침묵 기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판결을 받는 세상이 됐다. 이 몰상식한 사회 환경이 하루빨리 개선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가 제2의 앳킨스, 제3의 애덤스가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