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의 글] 이시윤 선생을 기리며
법률가와 학자로서 큰 역할을 한 이시윤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고인은 필자와 함께 1958년에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후 서울대 법대에서 6년간 강의하고, 법관으로 돌아와 서울지법, 서울고법의 부장판사, 춘천과 수원지방법원의 법원장을 지낸 후 1988년부터는 초대 헌법재판관으로, 1993년부터는 감사원장으로 봉직하였다.
고인은 평소 ‘연구하는 법관’, ‘실무를 아는 학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강했다. 일찍이 방순원대법관이 주도한 민사실무연구회의 창설멤버가 되었고, 법률가와 학자가 함께 하는 학회가 필요하다고 느껴 한국민사소송법학회와 한국민사집행법학회의 창립을 주도하여 학회의 기초를 닦았다. 한국민사법학회의 회장과 민법개정위원장을 맡아 민법전면개정안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고인은 우리의 민사재판이론을 선진국에 뒤지지 않게 정립하는데 노력하여 불후의 명저인 민사소송법과 민사집행법을 집필하였는데 필자를 만난 후배법조인들은 1982년에 출간된 고인의 책으로 시험공부를 하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할 정도이다.
필자가 기억하는 고인은 책과 친하고 공부만 하는 사람이다. 고시합격 직후 혜화동 집을 방문하였는데 방에 책만 가득한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 서울고등법원에서 함께 근무할 때도 고인은 저녁약속도 운동도 하지 않고 재판기록과 책만 가까이 하였다. 동료법관들이 이론적인 문제를 상의하면 열심히 연구하여 의견을 주고 토론하곤 하던 연구파였다. 고인과 필자는 공직에서 퇴임한 후 법무법인(유한)대륙아주에서 2009년부터 같이 활동하면서 법조계에 일화로 남을 재판과 야사에 대한 소회를 나누고 추억하였는데 이제 그 동료도 없으니 필자도 허전하기 그지없다.
고인은 평소 독일 헌법재판소의 판례와 이론을 연구하여 우리 헌법재판의 기초를 닦는데 노력한 것이 큰 보람이라고 말하곤 하였다. 헌법소원제도, 한정합헌결정의 확립은 물론 헌법재판에서도 가처분이 가능함을 동료재판관들에게 설득하여 이를 실현한 경위도 소상히 듣게 되었다. 헌법재판에서도 가처분이 가능한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는 재판관들을 설득하여 성과를 거둔 일화를 소개하는 모습에서 그 열정은 물론 헌법재판에서도 가처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는 요즘 고인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군사정권이 내린 국제그룹해체사건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하는가 하면, 검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기소처분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조규광소장과 동료재판관들에게 적극 설명하여 1호 결정을 한 것을 보면 선생은 법조인으로서의 용기도 발휘한 사람이다. 검사의 불기소처분이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는 결정은 당시 조선일보에 크게 보도되었는데, 이를 취재한 기자가 곤경에 처하면서도 이론구성을 한 취재원에 대하여 끝까지 밝히지 않은 사실에 대하여 고마움을 느낀다는 말을 수차 하였다. 감사원장 시절 성수대교 붕괴사고를 목도하고 공공시설의 부실공사예방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는 소회와 법률가로서 행정기관의 직무에 대한 합법성 감사도 정착시키려고 노력하였다는 말을 한 기억이 난다.
그러나 필자가 기억하는 고인은 책벌레의 모습만은 아니었다. 법조인으로서 정의와 정도를 걸었고, 의리도 있는 따뜻한 사람이기도 하였다. 고인이 춘천법원장 시절에 필자가 법원행정처 차장이었는데, 고인은 소속 판사의 영장기각과 즉결재판에 강한 불만을 나타내는 외부기관으로부터 해당 판사를 보호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고, 인사이동시 그를 서울 인근으로 전근될 수 있도록 필자에게 수차 당부한 기억이 난다. 고인은 박근혜대통령 탄핵소추가 부당하다고 생각하였고, 그 대리인으로 부탁받았으나 하필 같은 로펌의 변호사가 특검보로 활동한 탓에 대리인 선임이 불가능하자 일시 퇴직한 후 자택으로 변호사등록하고 대리인으로 활동하였다. 당시 헌재법정에 매번 출석하면서 법률가로서 한없이 안타까워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부인을 앞서 보낸 후에는 필자에게 MRI검사 한번 해보지 못하고 보낸 것을 못내 아쉬워하며 후회하는 말을 자주 하였는데 부인에 대한 미안함과 외로움이 컸던지 한동안 우울증을 앓기도 하였다. 고인은 바쁜 중에도 지인의 애경사를 빠지지 않고 챙기는 따뜻함과 의리의 사람이기도 하였다. 3년전 식당 계단을 오르다 넘어져 고관절이 골절된 후 휠체어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그 상태에서도 윤관, 김덕주 대법원장의 장례식에 문상하는 모습을 보고 고인의 속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필생의 역저인 민사소송법과 민사집행법의 전면개정판을 애제자와 함께 공저로 준비하여 원고를 완성하였는데 그 출간을 보지 못하고 간 것이 아쉽기도 하나 이제 고인이 바라고 헌신하였던 법조계와 법학계의 발전은 후배들에게 맡기고 평안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한다.
김석수(전 국무총리, 현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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