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하이니켈 전구체 ‘국가핵심기술’ 인정… 분쟁 새 국면(종합)

해외 매각 시 정부 승인 받아야

고려아연이 보유한 전구체 관련 기술이 정부로부터 ‘국가핵심기술’ 판정을 받으면서, MBK파트너스-영풍과 벌이고 있는 경영권 분쟁이 새 국면을 맞았다. 전구체는 이차전지 양극재의 핵심 원료 중 하나다. 국가핵심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경제안보상 이유에 따라 정부 승인이 있어야만 외국 기업에 인수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고려아연과 자회사 켐코(KEMCO)가 개발한 ‘니켈 함량 80% 초과 양극 활물질 전구체 제조·공정 기술’을 국가핵심기술과 국가첨단전략기술로 지정했다고 18일 밝혔다. 국가핵심기술은 ‘해외 유출될 경우 국가 안전보장 및 국민 경제 발전에 중대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기술’로 정부가 특별 관리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철강, 조선, 원자력 등 전략 산업 분야 기술이 주로 지정돼 있다.

앞서 고려아연은 MBK 연합과의 경영권 분쟁이 심화하면서 지난 9월 24일 산업부에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 특허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인정해달라고 신청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1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정부 결정으로 고려아연은 관련 법령에 따라 전구체 기술에 대한 해외 유출 보호 조치를 본격적으로 실시하고, 전구체 국내 자급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구축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특히 고려아연은 국가핵심기술 지정을 MBK연합의 경영권 인수 시도에 맞서 제시해 온 ‘국가기간 기업 보호’ 명분을 강화하는 논거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인 고려아연은 전자, 반도체, 자동차, 이차전지 등 국내 첨단산업에 다양한 기초소재를 공급하는 핵심역할을 담당해 온 기업으로 평가받아 왔다.

중장기적으로 고려아연을 재매각해야 하는 MBK연합 입장에서도 부담이 될 전망이다. 국내에서 마땅한 매수자를 찾지 못해, 해외로 눈을 돌릴 경우 정부의 인수합병 승인을 받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최근 국가핵심기술 보유 기업은 모두 국내 기업에 매각됐다. 대한전선과 두산공작기계는 각각 ‘500kV급 이상 전력 케이블 시스템 설계·제조 기술’, ‘고정밀 5축 머시닝센터의 설계·제조 기술’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해외 매각이 무산된 바 있다.

더욱이 고려아연이 보유한 하이니켈 전구체 가공 특허 기술은 국내 이차전지 소재뿐 아니라 전기차 산업에서 해외 의존도를 낮추고, 자체 경쟁력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하다는 점에서 해외 매각이 어렵다는 관측이다.

MBK연합은 고려아연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해외 매각 가능성에 재차 선을 그었다. MBK연합 측은 입장문을 통해 “고려아연이 국가기간산업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며 “최대주주로서 핵심 기술이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MBK연합은 고려아연의 해외 우량 자산을 먼저 구조조정해 수익화를 도모하고, 분할 매각 등을 활용하는 등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다른 중요 기술의 해외 공유, 수출 등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금 회수에 나설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