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기금사업 ‘예산부족’ 내년에도 반복된다
2025년 예산 증액 불구 착시 효과…“고용부 예산편성권 심각하게 침해”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고용노동부가 집행하는 기금사업들이 예산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당장 올 들어 구직급여 지급액이 10조원을 웃돌면서 고용보험기금 내 실업급여 기금 잔액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임금체불이 올 들어 역대 최고치를 새로 쓰면서 대지급금 예산 역시 이미 한 차례 증액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 임금채권기금 사업인 체불청산지원 사업주 융자와 체불근로자 생계비 융자도 예산 부족으로 접수가 중단되기도 했다. 문제는 보여주기식 ‘건전재정’으로 이같은 예산 부족 상황이 내년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18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정부가 구직급여로 편성한 예산총액은 10조9144억원으로 이미 10월까지 전체 예산의 92.3%를 소진했다. 현재 남은 예산은 약 8400억원 가량으로 만약 11~12월 두 달 동안 신청액이 이를 웃돈다면 기금운용변경 없이는 남은 두 달 동안의 실업급여 지급이 어려워진다. 건설업 경기 침체로 구직급여 신청자 수가 크게 늘어난 탓으로 분석된다. 지난 10월에도 건설업 경기 침체로 구직급여 신청자 수가 3360명 증가하며 10월 총 지급액만 전년 대비 903억원(9.9%) 많은 1조6억원을 기록했다. 구직급여 월 지급 총액은 4월 1조546억원, 5월 1조786억원, 7월1조767억원, 8월 1조255억원에도 1조원을 상회한 바 있다. 올 들어 9월까지 지급액은 9조775억원이며, 10월까지 이미 10조원을 넘겼다.
정부는 기금운용계획 변경을 통해 실업급여 기금 부족분을 메웠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기금운용계획 변경이다. 근로자 실업급여 뿐 아니라 자영업자 실업급여 예산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올해 175억4100만원으로 편성한 자영업자 실업급여 신청이 예상을 웃돌아 조기소진할 것으로 보이자, 지난달 기금운용계획 변경을 통해 26억5500만원을 증액했다. 국가재정법 제70조에 따르면 ‘기금운용계획의 변경’을 위해선 기금운용계획 중 주요항목 지출금액을 변경하고자 하는 때엔 기획재정부 장관과 협의·조정해 마련한 기금운용계획변경안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얻은 후 국회에 제출해야 하지만, 주요항목 지출금액의 변경범위가 10분의 2 이하인 경우에는 변경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도 변경 가능하다.
실업급여 뿐 아니라 임금체불에 따른 대지급금도 이미 한 차례 기금운용계획 변경을 통해 예산을 한 차례 늘렸다. 올 상반기 정부가 임금체불 사업주를 대신해 밀린 임금을 대신 지급한 대지급금 지급액은 모두 3842억원이다. 올해 대지급금 예산 4747억원의 80.1%가 6개월 만에 소진된 셈이다. 대지급금은 임금채권보장법 7조에 따라 근로자의 미지급 임금을 국가가 대신 지급하는 것을 말한다. 대지급금 역시 법에 의해 지급해야 하는 ‘의무 지출’인 만큼 기재부는 지난 6월 ‘임금채권보장기금 및 근로복지진흥기금 기금운용계획’을 변경해 총 2216억원의 예산을 추가 확보했다. 추가 확보한 예산까지 모두 합치면 올해 대지급금 예산 총액은 6963억원이다. 이는 정부가 실업급여나 대지급금 예산을 ‘과소 편성’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체불임금 청산을 위해 사업주에게 융자를 지원하는 ‘체불임금 청산 사업주융자사업’ 예산과 임금체불로 어려움을 겪는 근로자를 위한 ‘체불근로자 생계비 융자사업’의 예산이 조기 소진돼 융자가 급한 많은 이들이 접수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해당 사업에 대한 예산으로 402억원을 편성했고, 1차 증액을 통해 252억원을 증액했지만 이마저 조기 소진된 것이다. 이에 고용부는 2차 증액을 통해 118억을 충당했다. 두 차례 증액을 통해 올해 해당 사업에 들어간 예산은 모두 772억원으로 당초 편성한 예산 402억원의 약 92.0%에 달하는 370억원을 늘렸다. 각종 기금사업들이 예산 조기소진으로 차질을 빚으면서 정부의 ‘보여주기식’ 건전재정이 초래한 예고된 어설픈 행정이란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이런 상황은 내년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2025년 고용노동부 예산안 주요 내용’에 따르면 대다수 사업 예산이 ‘증액’된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상 ‘착시’에 불과하다. 실제 내년 자영업자 실업급여 예산은 올해보다 5.1%(9억300만원) 많은 184억4000만원이지만, 지난달 증액분을 감안한 올해 예산(201억9600만원)보다 적다. 대지급급 예산도 대지급금 예산을 올해(4747억원)보다 11.5%(546억원) 많은 5293억원으로 증액했다고 했지만, 증액분(2216억원)을 감안하면 오히려 올해보다 1670억원 적다. 조기 소진으로 한 차례 접수가 중단됐던 ‘체불근로자 생계비 융자사업’ 등도 올해보다 75.1%(302억원) 많은 704억원을 내년 예산으로 편성했지만, 이 역시 두 차례 증액을 감안하면 8.8%(68억원) 적다.
이처럼 고용부 기금 사업이 예산 부족에 차질을 발생하자 일각에선 기재부 출신 담당자가 고용부 예산 편성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면서 발생한 일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부 국정감사에서 박홍배 민주당 의원은 “예산을 총괄하는 정책기획관 자리에 기재부 파견 국장이 앉아 기재부 시각에서 노동부 예산을 재단하기에 예산편성권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며 고용부 예산이 기재부 입맛에 맞게 휘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김민석 고용부 차관은 “그 논리라면 전 부처가 기재부 통제하에서 각 부처 장관의 역할 없이 기재부가 하라는 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기재부 통제하에 있다, 감시에 있단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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