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제 깨달아요… 청년의 소망과 집념을[주철환의 음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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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엔 모임이 많다.
사람들은 왜 모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곳엔 가고 싶지만 자랑하는 사람이 많은 곳은 가기 망설여진다.
'저 이런 사람입니다' 명함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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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엔 모임이 많다. 사람들은 왜 모일까.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유재하의 노래 제목) 거기 갈까.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곳엔 가고 싶지만 자랑하는 사람이 많은 곳은 가기 망설여진다. 일부는 화려한 옷을 입고 자신의 부와 지위를 자랑한다. ‘저 이런 사람입니다’ 명함도 돌린다. 모르는 사람처럼 반응하면 알 만한 사람 이름을 댄다. ‘누구 아시죠’ ‘저 그 사람이랑 가까운데’ 친분도 과시한다. 묻지도 않았는데 가족 근황까지 보고한다. ‘요즘 아들 보기 힘들어요, 무슨 해외 출장이 그리 잦은 지’ 이때 마음의 소리를 냈다간 분위기 망친다. 그 소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그래서요(So what)’ 솔직히 자랑하는 사람들도 사랑하는 사람인 건 맞는데 그들이 사랑하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마치 나는 예외인 것처럼 둘러대지만 CCTV에 찍힌 영상을 돌려보면 나도 장담은 못하겠다).
어릴 때부터 나는 시상식 놀이를 즐겼다. KBS에선 주 단위로 가요톱텐을 발표하고 MBC에선 연말에 10대 가수를 선정했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오로지 나만의 순위를 작성하며 잘 놀았다. 지금도 무료할 때(사실 돈 안 드는 일이라서 무료) 오늘의 노래, 이달의 노래, 올해의 노래, 내 인생의 노래 등을 내키는 대로 뽑는다. 공표를 안 하니 공격받을 일도 없다. 수상 소감 대신 시상 소감을 적어보는 일도 적잖이 도움된다.
11월의 노래로 유재하(1962∼1987)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선정했다. 믿거나 말거나 방송사에 그의 음반이 처음 선보였을 때 음정 불안 등 가수로서 자질을 의심받았다는 소문도 있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노래를 잘 부른다는 건 도대체 뭘까. 기본적으로 노래는 부르는 것이지 부르짖는 건 아니다. 잘 부른다는 건 노래가 품은 정서나 사상(?)을 잘 불러내는 거다. 부르는 노래만큼 부르짖는 노래도 많은 건 세상살이가 간단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는 한 청년의 마음속 풍경을 담고 있다. 만남과 이별, 후회와 각성, 소망과 다짐이 층위를 이룬다. ‘처음 느낀 그대 눈빛은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해맑은 미소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요즘 같으면 금사빠(금세 사랑에 빠짐)라 부를 유형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바보라면 바보로 넘치는 세상도 유해하지 않을 성싶다. ‘내 곁을 떠나가던 날 가슴에 품었던 분홍빛의 수많은 추억들이 푸르게 바래졌소’ 사랑은 워낙 잘 깨지기도 하고 식기도 한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보다 정작 더 무서운 말은 ‘어떻게 사람이 변하니’다. ‘어제는 떠난 그대를 잊지 못하는 내가 미웠죠’ 미움으로 멈췄다면 노래가 어수선해질 텐데 이 청년은 깨달음의 바위로 나아간다. ‘하지만 이제 깨달아요 그대만의 나였음을’ 중요한 건 나만의 그대가 아니고 그대만의 나라는 사실이다. 나만의 그대는 소유(집착)지만 그대만의 나는 소망(집념)이다. 그런 깨달음이 소아(小我)를 극복하게 만든다. ‘커다란 그대를 향해 작아져만 가는 나이기에 그 무슨 뜻이라 해도 조용히 따르리오’ 먼 나라로 떠난 창작자에게 확인할 길은 없어도 그가 지향한 ‘커다란 그대’가 대범 대의를 뜻한다고 나는 폭넓게 해석한다.
빙산의 일각만 보고 그게 빙산이란 걸 알아차린다면 안목 있는 사람이다. 그냥 수면에 둥둥 떠 있는(떠다니는) 건지 아니면 낭떠러지인지 어떻게 구별할까. 빙산인지 빙벽인지 구별하려면 수련과 경험이 필요하다. 이 사람 가까이 할까 멀리 할까. 빗나간 의도를 가진 사람일수록 속은 감추고 겉은 꾸미기 마련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겉만 아니라 곁도 본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인지 그냥 자랑하는 사람인지도 한 번쯤 눈여겨볼 일이다.
작가·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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