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기 꽃이 피었습니다”… 몸을 말하는 몸짓
안무가 시모지마 레이사의 작품
‘자궁’없는 자기 몸의 감각 표현
‘세상서 사라질 DNA’ 자유 느껴
한국식 나이 계산법서 ‘영감’도
3년전 30분 초연… 시간 2배로
“거시기 꽃이 피었습니다.”
누구에게나 익숙한 골목 놀이(‘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구호에서 단어 하나를 바꿨다. 술래를 맡은 무용수가 말실수한 건가 싶어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는데, 술래의 시선을 받으며 미동도 않는 다른 두 무용수가 분위기를 잡는다. 몇 분 동안 정지 상태로 버티다 못해 몸이 단단히 굳은 채 넘어지기까지 한다. 이들의 시간은 멈춘 것 같았다.
◇“어머니 배 속에 자궁을 놓고 왔다” = ‘닥쳐 자궁’의 안무가 시모지마 레이사(下島禮紗)는 자궁 없이 태어났다. 인간이 인간을 낳는 것을 멈추면 세상의 부조리도 멈추지 않을까. 레이사는 자신의 몸을 “역사를 정지시키기 위한 시도”라고 표현했다. 정지하는 안무를 고민하던 그에게 ‘사람 눈앞에서는 움직일 수 없다’는 전통 놀이는 적절한 창작 소재였다. 생식기 어감의 구호를 고민하던 중 ‘거시기’가 낙점됐다. 그는 “‘생식기가 피고, 생식기가 진다’는 제 이야기를 이 놀이와 연결하면서 관객들이 저의 신체감각을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13년 전 레이사는 자신에게 자궁이 없고, 고환이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의사에게서 들었다. 있다고 생각한 것이 없는데 없다고 생각한 것은 있을 수도 있다. 그 혼란을 실감하며, 고환은 없다는 정확한 검사 결과를 3개월간 기다려야 했다. 그는 자신의 DNA가 세상에 남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서 오히려 ‘자유’를 느꼈다고 한다. 이 세상과 관계를 맺는 다른 방법을 안무가로서 찾으며 ‘닥쳐 자궁’을 만들었다.
◇“여성 9명이 ‘불알팀’ 출연진으로” = 공연에 앞서 연습실을 찾아가 보니, 출연진 13명 중 10명을 ‘불알팀’이라고 묶어 부르고 있었다. 레이사를 포함한 ‘불알팀’은 북을 붙인 복대를 차고 있었다. “제게 자궁이 없지만, 빈 북과 같다고 생각했죠.” 비어 있기 때문에 낼 수 있는 소리가 자신의 삶의 소리로 느껴졌다고 한다. 그리고 주먹보다 조금 더 작은 구슬 2개가 북의 양옆에 매달렸다. 불알팀이 모두 허리를 흔들면, ‘불알’을 상징하는 구슬들이 경쾌한 북소리를 냈다. 그중 1명이 연습실에서 너무 잘 흔든 나머지 북이 찢어진 적도 있다.
레이사가 이들을 선발하려고 마련한 오디션에는 185명이 몰렸다. 여성을 뽑는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자격 요건이 없는 오디션이었다. 합격자 중에는 대학 무용과 학생뿐 아니라 연기 등 다른 전공 학생과 일반 주부도 있다. 출연진 개개인의 몸에 스며 있는 ‘버릇’이 무대에서 튀어나오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레이사는 “그 버릇이야말로 바로 논리로는 파악할 수 없는 인간과 세상의 복잡한 모습 그 자체라고 느낀다”고 했다.
◇“춤으로 국경을 넘을 수 있다는 희망” = 레이사는 한국 문화에서 이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 태어나는 순간 한 살로 치던 한국식 나이 계산법을 접한 것이 계기였다. 일본에서는 출생한 이후에 0세라는 나이가 생긴다. 태아를 0세로 보는 한국 문화는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전율로 다가왔다. 0세 시절 자궁을 스스로 떼놓고 왔다는 상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30분 분량 초연을 치렀던 3년 전 춤을 통해 국경까지 넘어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60분 분량과 ‘불알팀’ 구성 등 이번 공연은 초연과 전혀 다른 작품이 됐다. 밴드 ‘이날치’ 베이시스트 등으로 활동하는 음악가 장영규가 음악감독으로 합류하기도 했다. 장영규는 지난해 만난 레이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곡 작업을 시작했다. 일본에서 마을 주민들이 모여 노는 ‘마쓰리’(축제)를 참고했다는 장영규의 설명대로 경쾌하고 흥겨운 음악으로 구성됐다.
국립현대무용단과 일본 가나가와예술극장이 공동 제작한 이 작품은, 지난 17일 한국 공연을 마쳤고 다음 달 13일부터 사흘간 가나가와예술극장에서 공연을 이어간다.
서종민 기자 rashom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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