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한 원칙주의자 진성준… 성실한 실용주의자 김상훈 [Leadership]

나윤석 기자 2024. 11. 18.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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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dership - 입법 총괄 ‘정책위의장’
김상훈(오른쪽)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지난 8월 7일 국회 더불어민주당 회의실을 찾아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예방하며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여야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김건희 여사 특별검사법’ 등을 놓고 극한 대립을 지속하는 와중에도 민생법안은 가급적 합의해 일부를 처리하는 성과도 냈다. 그 중심에는 지난달 28일 출범한 ‘민생공통공약추진협의회’를 통해 물밑 논의를 이어오고 있는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과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있다. 두 사람은 “싸울 때는 싸워도 민생을 뒷전으로 미루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의기투합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성실한 실용주의를, 진 정책위의장은 유연한 원칙주의를 바탕으로 당 의원들을 설득하고 여야 간 쟁점을 해소하며 입법에 매진하고 있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70여 건의 법안을 처리하기로 한 양당 ‘정책 사령탑’의 리더십을 살펴봤다.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보좌관 출신으로 ‘기획통’ 유명
민생법안 1호로 전세 사기 지원
금투세 이견에도 지도부 뜻 수용
동료 의원 “권위의식 없는 사람”

좌우명은 ‘불꽃처럼, 바람처럼’
“헌신하다 미련없이 정계떠날것”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장영달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해 ‘기획통’으로서의 역량을 쌓아왔다. 당 전략기획위원장만 총 네 번을 지냈고 문재인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과 서울시 정무부시장 등을 차례로 역임했다.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를 겨냥한 대여 투쟁을 지속하면서도 수권을 노리는 ‘민생 정당’의 이미지를 구축한 배경에는 정책 역량 강화에 대한 진 정책위의장의 기여가 자리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 정책위의장은 지난 4월 말 취임 후 그동안 2∼3개 상임위원회를 하나로 묶어 총 7개로 운영되던 정책조정위원회를 17개로 확대 개편했다. 개별 상임위원회와 1대1로 조응하는 정책조정위원회가 정책을 발굴하면, 원내 지도부와 정책위원회 논의를 거쳐 당론 법안을 추려 의원총회에서 최종 확정되는 구조다. 각 정책조정위원회가 최소 주 1회씩 회의를 이어오면서 22대 국회 출범 이후 5개월여 만에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법안은 50개를 넘어섰다.

진 정책위의장이 주도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정책 토론회’는 민주당이 ‘이념 정당’에서 ‘실용 정당’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다. 각각 ‘시행’과 ‘유예’를 주장하는 개별 의원들은 치열한 토론을 펼친 뒤 결정을 지도부에 위임했고, 이재명 대표는 당 의원들의 의견과 민심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폐지를 공식 발표했다. 금융 세제 선진화를 위해 금투세를 예정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진 정책위의장은 “당인으로서 지도부 결정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며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상법 개정을 통해 소액 투자자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표가 8·18 전당대회에서 연임한 이후에도 금투세와 관련해 이견을 보인 진 정책위의장을 유임한 것은 정책 노선의 차이를 뛰어넘는 신뢰가 있기에 가능했다. 이 대표는 진 정책위의장에게 “정책 사령탑이 원칙을 견지하는 모습은 매우 보기 좋은 것”이라며 눈치 보지 말고 마음껏 ‘소신 발언’을 하라고 독려했다고 한다.

진 정책위의장을 ‘586 운동권’ 출신의 강경파로 규정하는 시각도 있으나 그가 열띤 논쟁을 하되 당론이 결정되면 깨끗이 수용한 장면은 ‘유연한 원칙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혁’만큼 ‘민생’을 중시하는 진 정책위의장의 자세는 당직자가 아닌 개별 정치인으로서의 의정 활동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가 22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한 법안은 ‘장기 공공 임대주택 입주자 삶의 질 향상 지원법’ 개정안으로 사업자가 입주자의 수요조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해 복리 시설을 정비·설치하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올해 8월 22대 국회가 1호 민생법안으로 통과시킨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법’ 역시 진 정책위의장이 각별하게 챙긴 법안이다.

카메라 앞에서 좀처럼 웃지 않는 진중한 인상에 다소 고지식하고 꼿꼿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동료 의원들은 진 정책위의장을 소박하고 소탈한 정치인이라고 말한다. 한 초선 의원은 “한마디로 권위 의식이 없는 사람”이라며 “한참 어린 초선이나 당직자들이 과하다 싶은 얘기를 해도 다 받아준다”고 귀띔했다. 소탈하면서도 뚝심 있고, 유연하면서도 꼿꼿한 진 정책위의장의 좌우명은 ‘불꽃처럼, 바람처럼’이다. 그는 “국민 삶이 나아지도록 한 몸을 불태워 헌신하되,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면 바람처럼 미련 없이 정계를 떠날 것”이라고 했다.

△1967년 4월 전주 △전북대 법학과 △19대·21대·22대 국회의원 △2018~2019년 서울시 정무부시장 △2020년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 △2022년 민주당 원내운영수석부대표 △2024년 4월~민주당 정책위의장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국민의힘 김상훈
행시출신으로 의전·관행 탈피
저녁식사 건너 뛰고 국감 진행
소상공인 피해 언급하다 울먹
상대당 보좌관마저 “우아하다”

가장 많이 하는 말 ‘내탓이오’
친윤-친한 계파갈등 해소 노력

여야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김건희 여사 특별검사법’ 등을 놓고 극한 대립을 지속하는 와중에도 민생법안은 가급적 합의해 일부를 처리하는 성과도 냈다. 그 중심에는 지난달 28일 출범한 ‘민생공통공약추진협의회’를 통해 물밑 논의를 이어오고 있는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과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이 있다. 두 사람은 “싸울 때는 싸워도 민생을 뒷전으로 미루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라는 마음으로 의기투합했다. 김 정책위의장은 성실한 실용주의를, 진 정책위의장은 유연한 원칙주의를 바탕으로 당 의원들을 설득하고 여야 간 쟁점을 해소하며 입법에 매진하고 있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70여 건의 법안을 처리하기로 한 양당 ‘정책 사령탑’의 리더십을 살펴봤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의 좌우명은 ‘내 탓이오’다. 그가 보좌진 등 주변에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도 “내 탓이오”라고 한다. 남에게 돌을 던진들 결국 그 돌로 인한 물결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가톨릭 신자인 김 정책위의장이 이따금 오래된 사찰의 법당에 가서 앉아만 있다 생각을 정리하고 오기도 하는 이유다.

사실 당내에선 지난 7월 전당대회 이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김 정책위의장을 발탁하기 전 그를 비주류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았다. 당시 한 당직자는 “비교적 존재감이 없었던 김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내정한 사실에 놀랐고, 그가 ‘4선’이라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고 말했다.

비주류로 꼽혔던 것은 초심과 약속을 중시하는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33회 행정고시 합격 후 대구시 경제통상국장 등을 역임하는 등 20여 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국회의원에 도전하기로 한 후 그는 “당선 후에도 가족들과 지역구에 살겠다”고 약속했다. 대구 서구를 지역구로 다선을 지낸 한 정치인이 타 지역으로 옮겨 출마하면서 “○○(옮긴 지역구) 토박이”라고 선거 운동을 한 것에 대해 서구 주민들이 실망한 것을 직접 봤기 때문이다. 초선 때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내와 늦둥이 막내아들을 두고, 홀로 서울 전셋집과 대구 집을 수시로 오간다. 그는 본인이 비주류로 불린 것과 관련, “지역 현안을 챙기는 데 몰두하다 보니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데 부족함이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사무실에 ‘석전경우(石田耕牛, 자갈밭을 가는 소)’라는 사자성어를 붙여둔 것도 지역 주민에게 한 약속을 되새기기 위함이라고 한다.

공무원 출신임에도 의전이나 관행보다 실용을 중시하는 성격 역시 주변에서 그를 따르는 이유다. 유명한 이야기도 있다. 지난 21대 국회 기획재정위원장 시절, 그는 국정감사를 진행하며 저녁 식사 시간을 건너뛰고 국감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장차관 등을 수행하러 온 공무원들이 환호했다고 한다. 저녁 식사 후 국감을 이어가면 자정 가까이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실무형 정치인’이 되기를 늘 지향한다. 올해 2월 발표 기준 대구·경북 국회의원 중 법안 통과율 1위에 김 정책위의장의 이름이 오른 것도 이 같은 실무형 정치 지향과 무관하지 않다.

그에겐 화려함보다 진솔함이 우선이다. 지난 19대 국회 국정감사에서 그가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대신해 전하던 중 몇 초간 말을 이어가지 못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질의 도중 갑작스러운 정적에 모두의 관심이 집중됐다. 짧은 정적 이후 그는 다시 소상공인의 호소를 전했다. 결과적으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자신의 발언에 주목도를 높인 셈이 됐다. 지난달 마무리된 국정감사에서 김 정책위의장의 질의 모습을 본 정무위원회 소속 민주당 한 의원 보좌진은 김 정책위의장 보좌진에게 “우아하다”는 속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정책위의장을 맡은 이후 그의 리더십도 새로운 도전을 맞이했다.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친한(친한동훈)계와 친윤(친윤석열)계로 크게 구분되는 계파 간 갈등을 중재하는 것이다. 한 대표의 제3자 추천 방식의 채 상병 특별검사법 필요성 등을 놓고 당내 이견이 불거졌을 때도 그는 한 대표 생각과 다른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관되게 “이견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게 갈등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고 밝히면서 계파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힘썼다는 평가다.

△1963년 1월 대구 △영남대 법학과 △행정고시 합격(33회) △19·20·21·22대 국회의원 △2009~2011년 대구광역시 경제통상국장 △2022~2023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 △2023~2024년 국민의힘 공정선거제도개선특위 위원장 △2024년 8월~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윤정선 기자 wowjot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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