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전문가 이헌주 교수가 말하는 타인과 멀어질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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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괴로운
즉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는 의미다. 그래서인지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데 크고 작은 스트레스가 따른다. 나와 다른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과 어울리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탓이다. EBS1 <자이언트 펭TV> <특집다큐 게임의 법칙>, SBS <좋은 아침> 등 방송은 물론 유튜브 채널 <놀면서 배우는 심리학> <지식인사이드> <교육대기자TV>를 통해 통쾌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상담 전문가 이헌주 연세대학교 연구교수는 관계를 논하기에 앞서 자신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교수에게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괴로운 관계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들었다.
인간관계는 평생의 숙제라고 합니다.
보통 일, 돈, 건강,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고민이 관계예요. 저를 찾아오는 분들의 고민을 들어보면 고통을 겪는 이유는 각기 다르지만, 파헤쳐보면 정서 이면의 인간관계가 문제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경제적인 고민은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에서 비롯되고, 커리어 고민 또한 타인과의 비교에서 시작돼요. 결국 본질적으로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사람 때문에 속앓이를 할 때가 많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과 어울리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살펴보면 곁에 두면 힘든 사람과 얽혀 고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자가 짙은 유형이 있어요. 자기애가 강한 나르시시스트, 반사회적 성격장애를 포함해 각종 유형의 성격장애를 앓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예죠. 그림자가 짙은 사람은 타인에게 고통을 안겨줘요. 자신의 행동에서 잘못된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타인을 괴롭혀요. 이기적으로 행동하면서 자신이 솔직하다고 포장하곤 하죠. 궁합 자체가 맞지 않는 관계도 있어요. 따로 보면 괜찮은 사람인데 서로를 만나면 그림자가 짙어지는 것이죠. 그런 두 사람이 부부로 만나면 굉장히 힘들어져요. 둘이 만나서 끝을 보게 되는 거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회에서 관계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1인 가구가 7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인간관계를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는 사람이 늘고 있어요. 특히 코로나19를 겪은 세대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죠.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관계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여전해요. 반려 식물이나 동물을 키우면서 사람을 대체하려고 하죠. 인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행위라고 볼 수 있어요.
전문가로서 이 같은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해요.
매슬로의 욕구 5단계로 설명하면, 과거엔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하는 생존과 안전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어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기조도 생존을 위한 것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상위 단계인 사랑과 소속감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했고, 젊은 세대일수록 가장 높은 단계에 있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강해요. 집단적인 문화에서 개인적인 문화로 흐름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마땅히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해요. 수직적인 집단주의에서 수평적인 개인주의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죠.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는 핵심 요소를 꼽으면요?
사랑받고 싶으면 사랑받을 행동을 해야 해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도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어려워요. 인간은 노력해야 사랑받을 수 있어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에요. 그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 관계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 얻게 된 믿음이 있어요. 누구나 세상에서 중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해요.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웃음) 그래서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고,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죠.
손해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역으로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요구해보세요.
그때 상대방이 요구를 듣지 않고, 자신의 이득만 챙기려고 하면
내 인생에서 그 사람을 강등시켜야 합니다.
“사람 때문에 지쳤다면, 잠시 멈춤이 필요합니다”
우울한 얘기일 수 있지만, 어린 시절 안정적으로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 사람은 관계를 맺는 게 서툴러요. 3살까지 부모와 애착 관계 형성이 중요한 이유죠.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으로 나뉘는데, 불안정 애착은 회피형, 혼란, 저항, 경계선 등 다양한 유형이 있어요. 유형에 따라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면 멀어지려고 하거나, 아예 사람과의 교류를 차단하곤 해요. 자신의 주변에 사람이 없으면 찾는데 막상 다가가면 멀어지려고 하는 경우도 있어요. 내가 관계를 망치진 않을까, 거절당하면 상처가 되진 않을까 등 두려움 때문에 사람과 만나기를 기피하게 됩니다. 자존감의 영역도 관계에 영향을 미쳐요. 성인으로 성장하면서 외모, 운동 능력, 공부, 또래 관계가 구축되는데 그 과정에서 자존감을 잘 형성해야 관계에 자신감이 생겨요.
가족 간에 갈등이 크게 번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는 뭘까요?
아이러니하게도 가까운 관계에서 쉽게 협상하지 않으려고 해요. 예를 들어 다툼이 발생했을 때 배우자가 화가 났다고 가정하면, “내가 더 화났어”라고 응대하면서 사소한 다툼이 큰 갈등으로 번져요. “화가 날 수도 있지”, “왜 화가 났어?”라고 반응한다면, 싸움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협상의 단계로 나아갈 텐데 말이죠. 상대방의 감정을 진단, 판단하지 않고 공감할 줄 알아야 해요. 편집증이 심한 환자도 자신의 의견이 공감을 얻으면 경계심을 늦춰요. 그만큼 관계에서 공감의 역할이 크다는 의미예요. 그리고 흔히 사용하는 ‘not A but B(A가 아니라 B)’ 화법도 지양하는 게 좋아요. 나는 당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말 대신에 당신이 말하는 일정 부분에 100% 공감한다는 뜻을 먼저 내비치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싸움을 피할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소원해지는 친구관계도 고민입니다.
멀어지는 친구 붙잡지 말고, 다시 가깝게 지낼 수 있는 시기가 있으니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인생의 주기를 살펴보면 아동기에는 부모, 청소년기에는 부모와 친구, 청년기에는 친구와 연인과의 관계가 중요해요. 하지만 20대 중후반에 접어들면서 인생에 생산성이 자리 잡게 되고, 친구와의 관계가 소원해지죠. 상황의 변화는 중년의 나이까지 이어집니다. 1년에 만나는 횟수를 정해두는 친구들이 있는데, 큰 의미가 없어요. 친구와의 관계는 고정적일 수 없어요. 친구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다가 멀어질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드는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관계라는 게 그래요.(웃음) 인생에 친구가 필요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정답은 없어요. 내 인생을 주축으로 두고 상황에 따라 달리 받아들이면 됩니다.
가까운 관계에서 지켜야 할 것을 꼽으면요?
나의 내면과 외면의 감정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신뢰로 연결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척하는 연기는 전부 들통나게 돼 있어요. 오랜 기간 쌓아 올린 신뢰라고 해도 찰나에 드러난 본성으로 인해 신뢰가 무너져요. 예를 들어 직장 상사에게 늘 좋은 이야기만 하고 존경심을 표현해왔는데 진심은 그렇지 않다는 본성이 드러나면 관계가 틀어지죠. 따라서 진실한 감정으로 상대방을 대하는 게 중요해요. 인간관계는 마라톤입니다. 화려한 말솜씨와 언제 바닥날지 모르는 호의로 지속할 수 없어요.
거절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상당합니다. 특히 직장 상사와 같은 수직적인 관계에서 고통받기 십상이죠.
인간관계는 역학이라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상대가 바뀌어요. 직장 상사가 건네는 일을 떠맡으면, 계속 떠맡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아요. 상사의 부당한 업무 지시를 막고 싶다면 “죄송합니다. 못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우선 좋은 제안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로 말문을 열어보세요. 죄송하다는 표현을 반복하는 사람은 혼내거나 지적하고 싶은데, 고맙다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에겐 베풀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거든요. 덧붙여 지금 업무를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는 겁니다. 거절하는 뉘앙스를 숨기고 업무 수행을 후순위로 미뤄두는 전략을 사용하는 거예요. 언제까지 지시한 업무를 수행하겠다고 정확하게 명시하지 말고, 두루뭉술한 시기를 전달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두는 게 좋습니다. 상대가 물러나지 않는 경우에 대비해 상황을 환기시키는 것이죠.
나만 희생한다는 생각이 드는 관계가 있습니다.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누적된 희생은 보상으로 돌아오지 않아요. 따라서 지금부터 희생을 그만할 용기가 필요하죠. 그동안 만났던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타인의 일을 떠맡지 않는다는 거예요. 순수한 마음, 자발성을 바탕으로 한 호의를 베풀 줄 알지만 ‘예스맨’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한 번쯤은 역으로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요구해보세요. 그때 상대방이 들어주지 않고 자신의 이득만 챙기려고 한다면 내 인생에서 그 사람을 강등시켜야 합니다. 또 뚜렷한 의사 표현으로 줏대를 드러내고 자기 자신을 잘 챙기는 게 중요해요. 타인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허술한 부분을 만들지 않는 것이죠. 이미 타인에게 내 그릇 이상을 내주고 있다면, 주머니를 닫으세요. 밥 사던 버릇, 커피 사는 걸로 대체하면서 조금씩 줄여나가면 됩니다.
부정적인 에너지만 전하는 사람과 멀어지는 방법이 궁금해요.
10번 받던 전화는 8~9번만 받고, 장문으로 주고받던 문자는 짧게 답장하는 등 서서히 거리를 두는 방법이 있어요. 상대방이 소원해진 이유를 물으면, 있는 그대로 설명하지 말고 상황적인 핑계를 만들어 시니컬하게 넘어가는 겁니다. 요즘 사람들이 ‘손절’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는데, 생각보다 손절이 쉽지 않습니다. 쉽게 손절할 수 있는 사람이면, 애초에 큰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을 거예요. 보통 남편, 시어머니, 직장 상사 등 헤어질 수 없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마음을 앓아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멀어지기를 추천합니다.
곁에 두면 안 되는 유형의 사람이 있나요?
나눌 줄 모르고 지나치게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기본적으로 누군가와 함께할 줄 몰라요. 어디에 있든 자신이 돋보이길 바라고 타인을 무시하곤 하죠. 또 사악한 사람은 아니지만 만나면 기가 빨리는 사람이 있어요. 자신이 가진 불안함을 타인에게 쏟아내는 유형이죠. 감정은 전염되기 때문에 나에게 불안한 감정이 옮을 가능성이 커요. 언제부터인지 자신이 불안하고 불행하게 느껴진다면 주변을 둘러보세요. 내게 나쁜 영향을 전파하는 사람이 있는지 둘러보는 겁니다. 건강한 관계를 많이 만드는 것만큼 나를 괴롭히는 관계를 끊어내는 게 중요해요.
자연스럽게 손절하기
나이 들면서 점점 관계가 덧없다고 느끼는 거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고 해도 멀어져야 하는 시기가 옵니다. 인간관계가 덧없는 게 아니라 사람이 버거운 시기에 도달한 겁니다. 반대로 너무 멀어져 곁이 시린 시기가 오면 친구를 찾아가면 돼요.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나요?
다른 관계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즉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다른 사람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의미죠. 마이너스 1, 플러스 2 법칙이 있어요. 관계에서 상처를 받아 감정에 마이너스 1이 생겼다면, 다른 가족과 친구를 통해 2를 채워내는 겁니다. 예를 들어 그동안 잘 지내던 직장 동료가 하루아침에 냉랭한 태도를 취해요. 행동의 이유를 물어보고 싶지만, 쉽사리 말문이 열리지 않죠. 그런데 해당 직장 동료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면 쉽게 물어볼 수 있게 됩니다. 내 뒤에 안전 기지가 있어야 용기가 생겨요.
소위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선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할까요?
무엇보다 말을 아끼는 게 좋습니다.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져요. 특히 자신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원하지 않는 조언을 쏟아내곤 하죠. 가족, 친구, 동료, 부하 직원 등 관계의 유형을 막론하고 들어주는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어요. 진정한 어른은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에요. 나이가 들수록 열려야 하는 건 입이 아니라 귀예요. 언제까지나 초대받고 환영받는 사람이고 싶다면, 잘 들어주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중년에 비참해지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을 꼽으면요?
명품 100개를 가진 사람보다 1개도 없는 사람이 더 고귀하게 보일 때가 있어요. 내면이 잘 다져진 사람을 보면 그렇습니다. 고귀함과 단아함, 우아함은 내면에 존재해요. 중년의 자기 관리란 내적인 단단함이라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는 마음을 깨끗하게 정돈해 품격을 만드는 것이죠.
같이 있는 것만큼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한데, 어떻게 시간을 채워야 좋은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의미와 즐거움이 모두 충족돼야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수 있어요.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자녀를 다 키운 중년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자녀를 잘 키우기 위해 희생하지 말고, 일단 자기 자신을 먼저 돌보고 치유하라고요. 아이만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라 밖에서 보고 느끼고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배운 것들을 아이에게 심어주는 게 더 좋아요. 자기 사랑을 실천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어요. 나부터 좋은 것을 누려봐야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마지막으로 인간관계는 왜 중요할까요?
인간은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관계 속에 살아요. 태어난 직후 1년 동안은 누워서 타인의 보살핌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죽는 날에는 누군가의 손을 붙잡고 떠나죠. 무수히 많은 갈래로 연결돼 있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게 돼요. 그러니 관계가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죠. 관계가 어려울 때 전문가를 찾아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랍니다. 내 안에 있는 빛을 발견해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인생에 큰 도움을 줄 거예요.
이헌주 연세대학교 연구교수는…
연세대학교에서 상담코칭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 현재 연세대학교 미래융합연구원 인공감성지능융합연구센터에서 연구교수를 지내고 있다. 개인·부부·가족 단위의 상담을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 유수의 기업,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정서 지능, 의사소통, 인간관계, 스트레스, 매력적인 커뮤니케이션, 목표 설정, 회복 탄력성 등에 대한 강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봤을 사안들에 명쾌한 솔루션을 제공해 주목받았으며, 저서로 <무례한 사람을 다루는 법> <상담학자와 함께 읽는 이솝 우화> <너와 내가 그토록 힘들었던 이유 관계심리학에 묻다> <‘좋아하는 것’을 ‘잘하는 일’로 만드는 법칙> 등이 있다.기획 : 하은정 기자 | 취재 : 이보미(프리랜서) | 사진 : 이대원, 장소제공 유어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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