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컬 입열면 극락? 대학가요제 장악한 ‘더러운 신발’ 더티슈
경희대 동아리 출신 비전공자들의 반란
선거철에 가장 많이 나오는 ‘클리셰’ 중 하나는 낡은 운동화입니다. 찢어진 운동화, 구멍난 신발, 떨어진 구두굽…. 정치인들이 누구보다도 민생을 위해 발 빠르게 더 뛰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이지요. 국내뿐 아니라 해외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셜 미디어에 더러워진 신발 사진을 떡 하니 올려놓고는 ‘열심히 뛰겠다’ 혹은 ‘이만큼 다녔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금세 알아챕니다. 고급스러운 차림 아래 ‘나 홀로’ 더러워진 신발이 얼마나 장식적인 눈속임거리인지 말입니다. 그럴싸한 겉포장으로 잠시 혹하게 만들진 몰라도, 진정성 없는 ‘보여주기’ 식으로는 대중의 마음을 제대로 얻을 수 없게 마련이지요.
그런데 요즘 이 ‘더러운 신발’을 내걸고 박수받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매주 목요일 밤 10시에 방송되는 TV조선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경희대 ‘더티슈’ 팀입니다. 이종후 (보컬) 김태혁(베이스) 이재복(기타) 김하성(드럼)으로 이뤄진 락 밴드인데요. ‘더 티슈’로 읽는 이들도 있어서인지 이들은 자신들을 소개하면서 휴지(티슈) 아니고 ‘더티 슈(dirty shoe)’라고 설명합니다. ‘늘 신발이 더럽도록, 어디에서든 언제든 힘들게 열심히 하자’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하네요.
◇더러운 신발로 포착한 청춘의 고민...마성의 중독을 부르다
더티슈는 지난 7일 방송된 3라운드 1대1 데스매치에서 김현철의 ‘왜그래’를 자신만의 색깔로 편곡해 대학가요제 팬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습니다.
TV조선 대학가요제를 보지 않던 이들도 이 무대 하나로 더티슈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게 됐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특히 프론트맨으로 나선 보컬 이종후의 능수능란한 음색과 음악과 하나 된 듯한 표정, 끼 넘치는 제스처를 비롯해 다른 멤버들의 고른 실력이 눈을 사로잡았죠.
흔히 말하는 못 본, 혹은 안 본 사람은 많아도 한번 보면 계속 본다는 ‘마성의 중독’을 부르는 밴드입니다. 특히 TV조선 공식 계정 유튜브 영상 댓글에도 있듯 2분 55초부터 이종후의 ‘액션’(?)이 ‘킬포’(킬링 포인트)이기도 합니다. 배우 조승우와 윤계상을 연상케 한다는 반응도 있군요.
이날 심사위원들은 “무서운 성장세”라는 칭찬을 잊지 않았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더티슈’는 지금까지 TV조선 대학가요제 3라운드까지 살아남은 이들 중에서 드물게 비전공자들입니다. 비전공자들이지만 음악을 향한 열의는 전공자 못지않습니다. 자신들만의 음악을 하기 위해 뭉쳤고, 학업을 병행하면서 식당 서빙부터 과외 알바까지 그야말로 ‘더러운 신발’로 여기저기를 누비며 음악 할 비용도 마련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엔 DIRTY SHOE(더티슈)라는 팀명과 동명의 싱글을 발표하기도 했고요.
이들의 공식 유튜브 채널을 보다보니 여러 미발표곡이 데모 버전으로 있었는데요. 다양한 청춘의 모습을 그린 노래들로 주로 채워있는 것 같습니다. 그 중 ‘난장’이라는 곡을 보니 ‘아쉽지 않다’ ‘아, 쉽지 않다’는 식으로 가사를 쓴 것이 눈에 띕니다.
해 저문 나이가 됐을 때 우린 더 슬퍼지려나
일부러 모른 척 하렸는데 그리 쉽지는 않았던가
아쉽지는 않구나 아, 쉽지 않았네
멤버들의 어린 시절로 추정(?)되는 사진이 삽입된 ‘삼층집’의 가사를 한 번 보실까요. 청춘들이 느끼는 방황과 고민, 두려움, 그 속에서 또 자라나는 자신과 되찾고 싶은 내일의 희망 같은 것들이 느껴집니다.
모래 위에다 들뜬 맘으로 성을 짓고 글을 썼어
기다려지는 내일을 살아 무슨 색으로 날 칠할까
어른이 되면 참 멋질거야 라했던 나의 어림은 눈을 떴네 눈을 떴네
하나 또 하나 떠나보낸게 돌아왔어 세월이 돼서
기다려지는 내일은 없고 흐릿해져버린지는 오래야
시간의 파도가 모래 위 그것들을 흔적도 없이 지울까 겁이났네 겁이났네
어디에 갔을까 그때의 난
어디에 갔을까 그때의 우린 하루
또 하루 큰다지만 어제보다 작은 나를 봐
하루는 더 어른이 된다지만 그게 난 짐이 되어 와
숨죽인 아빠의 울음을 보고 엄마가 작아보이고 또 자랐네, 자라버렸네
어디에 갔을까 그때의 난 어디에 갔을까 그때의 우린
◇무서운 성장세, 비전공자 돌풍의 주역 ‘더티슈’
6회까지 방송된 TV조선 대학가요제 1대1 데스매치를 통과한 이들 역시 대부분 전공자로, 상당수가 비전공자를 누르고 올라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전통의 실력파 대학밴드 연세대 ‘소나기’에 완승한 ‘국보급 보컬’ 서경대 ‘펜타클’, 외교관에 도전하는 ‘목소리도 미남’ 중앙대 상필주를 꺾은 서경대 이민우, 동아방송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제2의 꿈을 찾아 서영대 안경광학과에 진학한 ‘안경선배’ 이문규를 제치고 다음 라운드에 선착한 동덕여대 대학원생 ‘성북동 락스타’ 이동현 등이 대표적입니다.
‘더티슈’는 이름 자체가 명함처럼 된 경희대 ‘상현’ 팀과 1대1 경연을 벌여 동반 진출을 이끌었는데요. 심사위원들의 심사 ‘보이콧’ 신경전 끝에 결국 예정에도 없던 동반 합격을 기록하게 되었지요.
경희대 재즈 밴드인 상현은 리더 김상현(포스트모던학)을 비롯한 멤버들의 현란한 연주에 힘입어 “상현이 떨어진다면 너무 아쉽고 억울해서 방송국에 밤새 전화하려고 했다”는 열성팬이 속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전공자들의 강세가 두드러진 것인데요. 바로 이 지점이 1980~1990년대 대학가요제 전성기 시절과 차별됩니다. 과거 대학가요제에서 실용음악과 출신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는데요.
대중음악을 비롯해 장르를 가리지 않는 각종 음악을 가르치는 실용음악과는 지난 1988년 서울예대를 시작으로 2000년대에 들어 전국 각 대학으로 포진하게 됩니다. K팝의 흥행과 함께 대중음악을 전공 삼아 K팝 등 다장르 교육을 받는 실용음악과의 인기도 함께 높아진 것이지요.
◇놀면 뭐하니?! 늘 신발이 더럽도록, 열심히 노래한다.
비전공자의 ‘돌풍’은 서울예대 동아리 ‘예음회’ 밴드 ‘네이비치킨스튜’와 경희대 ‘더티슈’ 정도인데요. 그만큼 현장 무대에서 높아진 ‘전공의 벽’을 비전공자가 허물긴 쉽지 않다는 방증으로 보입니다.
전공자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더티슈에 대해 찾아보다 보니 이들도 동아리 밴드 출신이더군요. 바로 경희대 중앙 락밴드 동아리인 ‘네이키드(Naked)’에서 호흡을 맞춰온 이들입니다.
네이버 카페 커뮤니티에 있는 ‘네이키드’에 대해 설명하는 문구 중 일부입니다.
<네이키드(NAKED)는 경희대학교를 대표하는 중앙 락 밴드 동아리입니다. 네이키드는 1992년 설립 이후 매우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네이키드는 락 밴드인 만큼 크게 보컬,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메탈, 락앤롤, 펑크 장르 불문, 정통락부터 최근에 이르는 인디음악까지 시대 불문으로 하여 관객 여러분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더티슈’ 멤버들의 정체(?) 일부를 엿볼 수 있는 과거 영상을 찾게 되었는데요. 2022년 방송된 ‘놀면 뭐하니’에서 사람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놀뭐인력’ 코너 배우 박진주 편이었습니다. 박진주가 대학 밴드 공연에 보컬 대타로 출연한 것인데요.
여기에 의뢰인으로 등장한 이가 바로 지금 더티슈의 메인 보컬이자 기타를 맡은 이종후입니다. 방송에 지리학과 21학번이라고 명기가 돼 있더군요.
이종후를 비롯한 네이키드 밴드는 방송에서 박진주와 만나 2시간 만에 완벽한 하모니를 이뤄냅니다. 예능 ‘복면가왕’을 통해 뛰어난 노래실력을 인정받은 배우 박진주의 목소리가 무대를 단번에 장악했지만, 그와 함께 호흡을 맞춘 보컬 이종후를 비롯한 멤버들의 합도 훌륭했던 무대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7일 공연에서 심사위원 김형석은 상현과 더티슈 모두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두 팀의 장점은 음악에 유머가 살아있다는 것이다. 그 유머를 제스처로 보여주고 음악으로 보여주고 텐션으로 보여줬다”라고요. 대학생들이기에 더 실험적으로 더 도전적으로 펼쳐볼 수 있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가 경연을 통해 점점 더 성장하고 다져지고, 또 이렇게 드러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1라운드에서 “재미있고 보컬이 끼가 넘친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소 학습된 느낌도 난다”는 평을 받으며 심사위원 전체 8인 중 6인의 선택을 받았었는데요. 2라운드 ‘연합미션’에선 전남대 유하은과 호흡을 맞춰 걸의 아스피린을 선보여 만점을 받은 바 있지요. 유하은의 풍부한 소울과 더티슈의 리듬감과 전달력, 대중 흡수력이 조화를 이루며 솔로와 밴드가 이루는 ‘연합 미션’의 뜻을 가장 잘 표현한 팀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3라운드에선 심사위원들이 심사 포기를 선언할 정도로 끼와 재능, 실력 넘치는 무대를 이뤘지요. 더티슈의 무대에는 “이렇게 깔끔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듣는 내내 소름이 끼쳤다”, “보컬 입 열자마자 극락 갔다”, “이 곡이 좋았다는 걸 다시 알게 해줬다. 무한 반복 중이다”, “상큼하다. 노래 잘 만나면 포텐 터진다는 게 이런 거구나” 등 감탄의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늘 신발이 더럽도록, 언제 어디서든 힘들게 열심히 노래하겠다”는 이들의 활약을 계속 지켜볼 수 있겠지요?
[대·가찾기]는 ‘TV조선 대학가요제’에 출전한 지원자 중 눈에 띄는 실력파 대학생들의 각종 이력 등을 찾아 파헤쳐 보는 코너입니다. 실력파 대학생 출전자 중 방송을 통해 알려지긴 했지만, 방송에서 잘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나 덜 담긴 장면 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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