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배달앱이 가야 할 '상생의 길'
배달앱이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바꿨다.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라는 배달의민족의 광고 카피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일어나면 배달앱부터 켠다는 말에 공감대를 이루고 SNS에서는 배달음식 끊는 법이 공유되곤 한다. 전통적 배달 음식인 치킨과 피자는 물론, 소고기와 참치회, 순대국까지 배달되는 시대가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배달 음식을 의미하는 '온라인쇼핑몰 음식서비스'의 거래액은 26조 4326억 원을 기록했다. 배달시장은 2010년 최초의 배달앱이 출시된 후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다가 코로나19로 외출이 제한되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 때 배달앱에 대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의존도도 함께 높아졌다. 배달앱의 성장은 출혈경쟁으로 이어졌다.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요기요 등 배달앱 3사는 무료 배달, 멤버십 서비스 등을 도입하며 고객 확보를 위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배달앱과 입점업체 간 수수료 갈등이 심화되고 정부와 국회에 수수료 상한제 등의 내용을 담은 규제 입법이 요구됐다.
자율규제를 고집하던 윤석열 정부도 우리나라 경제에서 배달 시장이 차지하는 영향력이 커지자 상생안 마련에 나섰다. 정부 주도하에 배달앱과 입점업체 간 상생협의체를 출범한 지 100일이 훌쩍 넘은 지난 14일, 배달앱 플랫폼과 입점업체가 상생안을 극적으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12차례 회의 끝에 도출된 상생안은 과연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숨통을 틔울까.
상생안의 핵심은 배달앱의 중개수수료를 현행 9.8% 보다 낮추고 거래액에 따라 2.0~7.8% 요율을 차등 적용하겠다는 내용이다. 수수료 인하는 그동안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가장 큰 불만을 제기해온 부분인 만큼, 일견 환영할 만한 조치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중개수수료는 입점업체가 배달앱 플랫폼에 납부하는 총비용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배달앱 이용 시 발생하는 다양한 부가비용, 예를 들어 배달료, 광고비, 각종 '플러스 서비스' 비용이 추가되면 실제로 입점업체가 부담해야 하는 총비용은 여전히 높을 수 있다. 즉, 중개수수료 인하만으로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부담을 충분히 경감할 수 없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전국가맹점주협의회 등은 이번 상생안이 시행될 경우, 배달 자영업자 절반의 부담이 늘어나고 나머지 30%는 변화가 없으며, 하위 20%만 부담이 줄어든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달 매출 상위 35%의 자영업자는 건당 배달료가 500원씩 늘어나면서 전체 부담은 오히려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배달앱이 최근 중개수수료율을 6.8%에서 9.8%로 대폭 인상한 상황에서 상생안(최대 7.8% 적용)을 마련한 것이 수수료를 낮췄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게다가 상생협의체에 참여한 4개의 입점업체 단체 중 두 곳이 상생안에 반대하며 퇴장한 가운데 합의가 이뤄진 사실이 알려지며 '온라인플랫폼법' 입법을 피하기 위해 합의를 강행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코로나19 시절 소상공인·자영업자는 물론, 집밥에 물린 많은 이들의 구원투수와도 같았던 배달앱이 어쩌다 미운오리새끼 신세로 전락했을까. 상생협의체에서 합의한 상생안이 일부 소상공인·자영업자들에게 일시적인 도움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상생안의 한계는 분명하다. 수수료나 배달료 인하 외에 배달앱의 독과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
배달앱들이 '상생'을 이야기하는 한편, 그들의 시장 지배력과 정책이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한다면, 진정한 상생은 이루어질 수 없다. 독과점사업자의 권한 남용을 막고 입점업체의 협상력을 강화하는 등 배달앱 시장의 균형 잡힌 구조를 위한 입법이 절실하다. 배달앱과 입점업체, 소비자 모두가 행복하지 않은 시장으로 변질되기 전에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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