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가 나를 도둑으로 몰았다”
“CCTV 화면 교묘하게 조작해” vs “의심 정황 있어 수사 의뢰한 것”
(시사저널=이석 기자)
이마트 트레이더스 킨텍스점은 지난 1월 고객 정아무개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매장에서 판매 중이던 고가의 남성용 자켓을 훔친 혐의였다. 정씨가 쇼핑할 때 촬영한 CCTV 화면이 결정적 근거가 됐다. 이마트 측은 "CCTV 영상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정씨가 도난당한 점퍼를 카트에 담는 장면과 도난방지태그를 숨기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다"면서 "영상 확인 후 해당 장소에서 도난 점퍼의 도난방지태그가 발견된 만큼 경찰 수사 의뢰가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사건을 접수한 일산서부경찰서는 정씨를 불러 조사했고, 지난 3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에서 사건이 뒤집혔다. 검찰이 4개월여 만에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음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은 불기소 결정서에서 "이 사건 피해품의 도난방지태그는 최초 피해자(이마트)의 주장과 같이 피의자(정씨)가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장소에서 발견되지 않았고, 피해품이 진열돼 있던 장소 인근의 다른 의류주머니에서 발견됐다"면서 "패션매장에서 피의자가 카트에 담은 상품 역시 이 사건 피해품과 다르고, 그나마 다시 걸어둔 것으로 확인된다"고 밝혔다.
"반년여 동안 조사받으며 정신과 치료"
반년여 동안 진행된 수사로 정씨는 적지 않은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평소 앓고 있는 지병 때문에 군대도 면제받았다"면서 "경찰과 검찰 조사로 변호사비 등 물질적 손해는 물론이고 없는 죄를 뒤집어쓰면서 받은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마트 본사를 직접 찾아가 항의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그동안 여러 차례 이마트 본사를 찾아가거나 온라인 게시판 등을 통해 억울함을 토로했다"면서 "하지만 처음 경찰 조사가 시작된 지 10개월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이마트 측은 합당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지난 8월 이마트 트레이더스 킨텍스점 점장과 보안요원 등을 무고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이마트 측은 "절도 의심 정황이 있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회사 관계자는 "고가 상품에 대한 재고 조사 과정에서 물품이 없어진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면서 "CCTV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정씨의 행동이 의심스러워 경찰에 수사를 요청한 게 이 사건의 핵심이다"고 설명했다.
이마트 측 "경찰 요청으로 CCTV 화면 제공"
이 관계자는 이어 "정확한 수치를 밝힐 수는 없지만 상품 도난으로 인한 피해액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 경찰의 요청에 따라 CCTV 화면을 제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일부러 (정씨를) 범인으로 몰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다"면서 "늦었지만 피해자와 만나 후속 조치를 논의 중이다. 향후 진행될 예정인 경찰 조사에도 최대한 협조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씨의 설명은 달랐다. 그는 "사라진 재킷의 도난방지태그가 발견된 장소는 이마트 측이 CCTV 화면으로 지목한 범행 장소와 100m 이상 떨어져 있었다"면서 "구조 또한 창고형 매장과 패션매장으로 완전히 다르다. CCTV 영상을 확인하고 증거물을 확보하기 위해 현장을 직접 탐문했기 때문에 단순한 혼동으로 경찰에 잘못된 증거를 제출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반박했다.
실제로 이마트 측이 경찰에 제출한 CCTV 영상에는 정씨가 마트에 들어올 때부터 나가는 장면은 물론이고 쇼핑 장면(패션매장 카트상품 담음.avi)과 도난방지태그를 숨기는 장면(14, 15번택에서 은닉.avi)까지 수십 개에 걸쳐 세부적으로 나눠져 있었다. 이번 도난 신고 사건을 두고 정씨가 킨텍스점 보안팀의 단순 실수가 아니라 셋업 범죄라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은 결국 경찰에 넘어간 상태다. 경찰이 이마트의 손을 들어주게 되면 이마트는 물론이고 대형마트 업계는 그동안 골치를 앓았던 절도범죄에 대한 대응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대형마트의 절도 사건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다. 미국소매협회(NRF)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제너럴 로스'(절도나 손상, 사기 등으로 인해 분실된 상품)로 인한 손해액이 1420억 달러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현재의 원-달러 환율로 환산하면 200조원이 넘는 규모다. 1년 전 조사 때보다 제너럴 로스 비용은 26.7%나 증가했다.
이 때문에 일부 매장은 문을 닫기도 했다. 미국의 대형 소매유통 브랜드인 '타깃'은 지난해 뉴욕과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도시 매장 9개를 폐쇄했다. "조직적인 도난범죄로 인해 안정적인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는 게 매장 폐쇄 이유였다. 회사 측이 밝힌 절도 손실액만 지난해 5억 달러 이상일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판 다이소'로 불리는 '99센트 온리 스토어'도 지난 4월 전국 매장 371개를 폐쇄했다. 절도로 인한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대형마트들도 그동안 절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생계형이든, 상습적이든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 경찰에 입건되거나 구속되는 내용의 언론보도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해마다 절도 피해로 잃어버린 물품만 수백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마트에서 쇼핑을 하다가 억울하게 피해를 본 정씨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보고 있다. 보안업체가 다소 무리하게 대응했을 수 있는데, 경찰에서 무혐의 판정을 받게 되면 대응 강화를 위한 명분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경찰이 정씨의 주장을 받아들이게 되면 이마트는 물론이고 대형마트 업계는 적지 않은 이미지 손실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씨처럼 대형마트에서 쇼핑하다 절도범으로 몰린 사례가 그동안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논란이 될 때마다 해당 마트 측은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잊을 만하면 비슷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는 점에서 보안 시스템 개선 등 대책 마련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고객 절도 시비, 왜?
절도 증거도 없이 정황만으로 고객을 경찰에 신고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 홈플러스가 대표적이다. 홈플러스 면목점은 지난 5월 고객 A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만두와 치즈케이크 등 7만7000원어치의 물품을 훔친 혐의였다. 정씨와 마찬가지로 마트 측이 제시한 CCTV 영상이 유일한 증거였다. 홈플러스 측은 "A씨가 개인 가방에 도난 물품을 담아 마트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찍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서 이 같은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A씨 부부는 "형사 3명이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쳐, 절도 신고가 들어온 만큼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안내했다"면서 "경찰에 출석해 2시간가량 조사를 받았지만 CCTV 영상자료나 목격자 등 직접 증거가 없어 무혐의로 풀려났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A씨는 이미 절도범으로 낙인찍혀 살고 있는 빌라는 물론이고 동네에도 소문이 난 상태였다. A씨 부부는 "경찰의 잦은 방문과 이웃 주민을 상대로 한 탐문조사로 소문이 좋지 않았다"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은 아내는 응급실에 실려 갔다가 대학병원에 입원까지 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보다 못한 A씨의 남편 B씨가 홈플러스에 들러를 찾아가 항의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문제가 된 CCTV 화면을 확인하자는 요청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B씨가 지난 9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인 보배드림에 사연을 올리면서 문제가 공론화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홈플러스 측은 뒤늦게 재발 방지와 함께 사과문을 게재했다. 홈플러스 측은 "매년 분실이나 도난 등으로 인한 손실액이 190억원에 이른다"면서 "향후 고객들이 동일한 피해를 겪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싸늘한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진정성 없는 사과문에 대한 지적도 잇달았다. B씨 역시 홈플러스 면목점에서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는 "홈플러스 입장문을 보고 아내는 다시 한번 응급실에 실려 갔다"면서 "사과가 먼저인데 홈플러스는 도의적인 합의금 30만원을 먼저 제시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롯데마트 역시 고객을 도둑으로 몰았다가 소비자들의 원성을 샀던 사례가 그동안 적지 않았다. 2019년에는 초등학교 5학년 여학생 두 명을 절도범 취급하며 보안실에 감금했다가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직원에게 계산한 영수증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CCTV를 통해 이 학생이 계산한 것을 확인하고 20분 후 보내줬지만, 피해 당사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으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아야 했다. 이에 따른 대형마트 업계의 시스템 보완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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