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체불 10건중 9건 아무런 처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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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고용노동부가 처리한 임금체불 사건 10건 가운데 1건만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9월까지 임금체불액이 1조5224억원을 기록하는 등 임금체불이 고질적인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형사처벌 절차로 나아가는 경우는 극히 드문 셈이다. 이는 임금체불죄가 사업주가 일부라도 임금을 지급하는 등의 사유로 피해 노동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처벌하지 않는 ‘반의사 불벌’이기 때문이다. 반의사 불벌이 임금체불이 범죄라는 인식을 떨어뜨리고 상습 체불을 야기하는 만큼,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된다.

체불은 느는데 사법처리는 줄어든다?
17일 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2019~2023년 임금체불 신고사건 처리 현황을 보면, 지난해 임금체불 신고사건 18만2487건 가운데 사법처리(기소의견 송치, 기소중지 등)된 사건은 4만1212건으로 전체의 22.6%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법처리된 사건 가운데 ‘기소중지’ 등을 제외하고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비율은 12.7%에 불과했다. 체불 사건 10건 가운데 1건만 사업주 처벌을 위해 검찰에 넘겨졌다는 뜻이다. 사법처리율과 기소의견 송치율은 꾸준히 낮아지는 추세다. 사법처리율은 2019년 32.3%에서 지난해 22.6%로 떨어졌고, 같은 기간 기소의견 송치율도 21.2%에서 12.7%로 감소했다.
근로기준법은 임금을 제때,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사업주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한다. 그런데도 처벌되는 사업주가 적은 것은 ‘반의사 불벌’ 때문이다. 특별사법경찰관인 노동부 근로감독관은 임금체불 진정이 접수되면 체불 사실을 확인해 사업주에게 임금을 지급하라고 시정지시한 뒤, 이에 응하지 않은 경우 형사입건, 즉 ‘사법처리’ 절차로 나아간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사업주들은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테니 처벌불원서를 내달라’고 요구한다. 당장 돈이 급한 노동자들은 체불임금을 일부라도 받기 위해 처벌불원서를 내고, 근로감독관은 사업주가 임금 전액을 청산했는지와 관계없이 사건을 ‘행정종결’ 처리한다. 물론 임금을 지급받은 노동자가 처벌불원서를 내지 않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수도권의 한 근로감독관은 “어떤 사업주는 ‘체불임금도 지급하고 사법처리돼 벌금도 내야 하면 내가 손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처벌불원서를 안 받고 임금을 지급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했다.

늦게 지급할수록 유리한 체불임금
임금체불죄 반의사 불벌 적용은 ‘임금체불 예방과 신속한 체불임금 청산’을 목적으로 2005년 도입됐다. ‘체불임금을 주느니 사법처리돼 벌금을 내겠다’는 사업주에게 체불임금을 신속하게 지급할 유인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처벌불원서만 받으면 체불 사실 자체가 ‘없던 일’이 되고 사업주는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기 때문에, 반의사 불벌이 오히려 상습 체불을 야기하고 사업주가 임금을 늦게 줘도 되는 상황을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임금을 100만원을 체불했든 1억원을 체불했든, 한달 늦게 지급하든 1년 늦게 지급하든, 심지어 수사 단계에서 구속된다 하더라도 처벌불원서만 받으면 사업주로서는 아무런 타격이 없다. 노동부가 추산하는 2회 이상 반복 체불 사업주는 전체 체불 사업주의 30%로, 이들이 체불한 임금은 전체의 80%에 이른다. 박성우 직장갑질119 온라인노동조합 위원장(노무사)은 “임금을 늦게, 적게 지급할수록 더 많이 지급할 수 있도록 제도가 설계돼야 하는데, 반의사 불벌은 노동자들의 궁박한 처지를 악용해 늦게, 적게 지급해도 되는 결과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반의사 불벌로 인한 임금체불 악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9월 국회는 명단공개 대상 체불 사업주에 대해선 반의사 불벌을 적용하지 않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른바 ‘임금체불방지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명단공개 대상 체불 사업주는 올해 기준 194명, 지난해 172명, 2022년 265명에 그쳐, 지난해 기준 9만여명에 달하는 체불 사업주 가운데 해당 조항을 적용받을 이들은 극히 드물 것으로 보인다. 3년 이내에 임금을 체불해 2번 이상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1년 동안 체불액이 3천만원 이상이어야 명단공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반의사 불벌 완전 폐지해야”
이 때문에 임금체불에 대한 반의사 불벌을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임금체불을 ‘범죄’로 인식하게 하고 엄벌해야만, 처벌을 두려워하는 사업주들이 임금체불을 하지 않아 ‘범죄 예방’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권오성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노동법)는 “(체불 사업주에 대한) 형사사법 절차가 임금채권에 대한 추심 절차가 아닌데도, 원래 줘야 할 임금을 (늦게라도) 줬다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은 난센스”라며 “반의사 불벌은 임금체불이라는 범죄를 범죄로 인식하지 않도록 기능해, 임금체불 예방에 효과가 없는 만큼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성우 위원장도 “임금은 사용자와의 근로계약에서 핵심에 해당하는데,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사업주에게 아무런 처벌도 하지 않는 것은 근로기준법 질서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노동부는 이미 국회에서 ‘임금체불방지법’이 통과된 만큼, 새로운 법률이 잘 시행될 수 있도록 집중하고 체불 사업주에 대한 강제수사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법률에는 퇴직자뿐만 아니라 재직자에게도 체불임금에 대한 20% 지연이자를 적용하고, 고의적인 체불 사업주에게 최대 3배까지 가산해 배상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이는 법원에 낸 민사소송에만 적용될 뿐 노동청 진정에는 적용되지 않아 체불 예방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오는 상황이다.
다만 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체불 사업주가 엄벌을 받을 수 있게 대법원 양형기준을 상향할 수 있도록 협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임금체불에 관한 대법원 양형기준은 액수에 따라 형량의 범위를 설정하고 있는데, ‘기본’ 양형기준은 체불액이 1억원 이상인 경우 징역 8개월~1년6개월, 5천만~1억원 6개월~1년, 5천만원 미만 4~8개월로 규정돼 있다. 2022년 기준 검찰이 임금체불 등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사건의 88.8%(1만832건 가운데 9615건)가 벌금형 약식기소되고 나머지만 정식 기소된 가운데, 지난해 법원에서 정식 재판을 받고 선고된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 2849건 중 실형은 514건으로 전체의 18%에 그쳤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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