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만 주52시간 예외?…"비효율적 규제, 경쟁력↓" vs "다른 의도"
재계 "규제가 발목 잡아"…고용부도 긍정
노동계 "장시간 노동 줄이는 시대에 제동"
"부진은 경영의 문제"…전 산업 확산 우려도
"특별법 붙박이?…현 제도로도 연장 가능"
[서울=뉴시스]권신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노동시장 유연화를 노동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운 가운데, 여당인 국민의힘이 반도체 업계를 주 52시간제의 예외로 두는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첨단산업의 국가 경쟁력을 제고하려는 취지인데, 이에 따라 '주 69시간' 논란에 잠잠해졌던 근로시간 개편 논의에도 다시 불이 붙을 전망이다.
다만 장시간 근로체제로의 회귀를 우려하는 노동계와 야당의 반발은 여전히 거세 향후 추진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근로시간 유연화…경영계 숙원이자 尹 핵심 정책
근로시간 유연화는 반도체 산업계의 숙원이자 윤석열 정권의 핵심 노동개혁안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기대 이하의 실적 성적표를 받기도 했다. 경영계는 근로시간 규제가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본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은 지난 1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노동시장에 누적된 비효율적인 규제들이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투자를 제약하고 있다"며 유연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김문수 고용부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연구 분야에 한정해 유연성을 허용하는 것은 신중하고 올바른 방향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김민석 차관도 11일 윤석열 정부 임기 반환점 브리핑에서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 현재 반도체시장이 어렵기 때문에 논의되는 것이라며 근로기준법을 금과옥조처럼 이야기하면 논의가 안된다고 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일주일에 52시간 넘게 일할 수 없다.
장시간 노동 우려하는 노동계…확산 우려도
양대노총은 모두 반도체특별법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했다. 이지현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대변인은 "장시간 노동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당위성만 가지고 단순히 시간만 늘린다면 다른 산업까지 확대될 수 있다"며 "장시간 노동을 줄여가는 시대 흐름에 제동을 거는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 산업만을 예외로 두는 것이 국내 산업 전반에 '유연화'가 확산되는 기폭제가 될 것이란 우려를 표한 셈이다. 이 대변인은 "코로나19 당시에도 마스크 생산 업계에 예외를 허용해 다른 분야까지 규제가 풀리는 일이 발생했다"고 했다.
전호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대변인도 "반도체 산업의 부진은 노동시간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경영실패의 문제"라며 "이미 세계 최장 노동시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특별연장근로' 등 기존 제도로도 연장 가능
소재, 부품 및 장비의 연구개발 등을 하는 경우 고용부 장관이 국가경쟁력 강화 및 국민경제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연장이 가능하다. 반도체 업종의 연구개발도 포함된다고 명시돼 있다. 또 주문량 또는 매출액이 평상시보다 대폭 증가할 때도 고용부의 연장 허가를 받을 수 있다.
근로기준법에도 선택근로시간제, 탄력근무제, 재량시간제 등을 활용해 근무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은 논평을 내고 "현행 법제 하에서도 연구개발을 위한 노동시간 연장이 가능한데도 정부와 여당이 특별법을 만들겠다는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했다. 근로시간 개편 시도라는 의심을 표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기존의 제도를 활용하면 되는데 특별법으로 '붙박이화'하면 연장근로를 1년 365일 열어두는 셈"이라며 "항구적으로 운영되다 보면 근로자 과로사도 발생하고 방위산업, 해운, 항운 등 주요 산업들에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시간 노동을 줄이고자 하는 노사정 합의나 법률 취지에도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 특별법의 기반이 된 미국의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고소득 근로자 52시간제 제외)'을 두고 "전세계 유일무이하게 미국에만 있는 보편화되지 않은 정책"이라며 "이 제도는 초과근로에 대한 할증을 지급하지 않는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특례 적용과 더불어 주 52시간제 자체가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고용부는 지난해 12월 30인 미만 사업장의 '8시간 추가근로제' 일몰을 앞두고 계도기간을 1년 더 한시적으로 연장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계도기간이 한 달 가량 남은 가운데 내년에도 52시간제가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 차관은 "경사노위(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논의가 돼야 한다"며 "현장 상황을 검토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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