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산 배분과 증시 안전판[금융시장 돋보기]

최은영 2024. 11. 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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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글로벌 주식시장은 미국이 독주하는 가운데 디스인플레이션, 통화정책 피벗, 경기회복 기대 등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견조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 S&P 500이 24%, 일본 닛케이 225가 15%, 독일 DAX가 14%, 영국 FTSE 100이 4% 올랐다. 우리 코스피만 9% 하락했다.

상대수익률을 좇아 글로벌 투자자금이 미국으로 몰리면서 수요기반이 강화되는 시장의 선순환이 진행되는 양상이다. 트럼트 당선 이후 미국행 머니무브는 강화되고 있다. 감세정책, 이민정책, 관세정책은 미국시장과 미국 이외 시장으로 글로벌 주식시장을 양분하며 글로벌 투자자금의 중기자산배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보호무역주의와 탈세계화라는 트럼프의 실물경제 노선이 금융시장에서의 금융세계화를 오히려 강화하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다. 금융디지털화로 거래편의성이 극대화하면서 투자자금의 순간이동과 개인 투자자까지 글로벌 자산배분이 가능한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거꾸로 수익률 경쟁에서 뒤처진 주식시장은 자국의 수요기반 약화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있음을 의미한다. 오죽하면 금융선진국 영국에서 수요기반 확충을 위해 국내주식 투자를 강력히 추진하는 연금민족주의(Pension Nationalism) 흐름이 나타나겠는가.

우리나라는 코로나 19 이후 개인과 기관투자가의 국내 증시 참여가 약화하며 수요기반의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외국인에게는 일상화된 글로벌 자산배분을 국내 개인과 기관투자자들이 적극 수용하면서 개인의 해외 주식 보유액이 최근 14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개인의 국내 상장주식 보유액(2021년 661조원)을 고려하면 개인이 보유한 주식의 20% 정도를 해외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다. 한국은행 자금순환표로도 개인의 해외 주식 매수규모는 코로나 19 전후로 4년 평균이 9000억원에서 13조원으로 크게 늘었다. 국내 기관투자자의 글로벌 자산 배분은 보다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고객자금을 관리하는 수탁자로서 책임을 고려하면 당연하다.

그런데 글로벌 자산배분과 국내 주식 참여 약화는 기관투자가의 국내 증시 안전판 역할의 역화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위기관리 관점에서 새로운 문제를 제기한다. 실제 국민연금은 이미 2017년부터 해외 주식이 국내주식 규모를 능가했고, 국내주식 규모는 2020년 176조원을 정점으로 줄어들고 있다. 암묵적인 안전판 역할이 비중과 규모가 늘어나는 국면에서 최대화된다고 볼 때 미국의 401(k)에 비견되는 국민연금의 증시안전판 역할은 점점 약화할 것이다.

지난 8월 엔캐리 청산 충격이나 최근의 트럼프 트레이드는 수요기반의 구조변화로 생긴 증시 안전판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증시체질 개선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그간의 증시체질 개선정책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맞춰졌다. 성과도 있었다. 일반주주보호 장치가 크게 강화됐고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대기업의 주주 중시 경영에 상당한 시동을 걸고 있다. 저평가된 주식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 그런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가 증시 안전판의 직접적인 대책은 될 수 없는 만큼 분리해서 대응하는 것이 맞다.

미국은 401(k)같은 자본시장의 안정적인 수요기반이 있다. 401(k)를 포함한 미국 퇴직연금은 연간 보험료 유입액만 6500억달러(900조 원)에 이르고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뮤추얼펀드를 통해 주식시장에 유입되는 만큼 가장 강력한 주식시장 수요기반이 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401(k)는 안정적으로 주식시장에 유입되며 안전판 역할을 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를 보면 불과 2~3년 만에 연금 손실을 회복하는 회복탄력성을 보였다.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을 제외하면 기관투자가는 사실상 미미하다. 공모펀드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고 보험과 직역연금도 역할이 제한적이다. 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관투자자 비중은 시가총액의 15%에 불과하다. 미국(70%), 영국(60%), 일본(30%), 유럽(36%)에 비해 턱없이 낮다. 여러 연구들은 기관투자자 비중이 낮은 나라에서 주식시장의 장기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고 장기투자 문화의 형성과 안정적인 안전판의 작동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다른 나라와 가장 큰 차이는 국내 사적연금이 주식시장에서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이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은 분류상으로는 기관투자가이지만 기능상으로는 사실상 예금자 또는 보험계약자에 가깝게 운영된다. 적립금이 400조원, 연간 보험료 수입이 50조원이 넘는 퇴직연금이 글로벌 자산배분을 하는 기금형 운용체계를 갖춘다면 주식시장에서는 과거 공적연금이 수행하던 암묵적 안전판 기능이 자동복원되는 동시에 국민연금을 보완하는 노후소득보장수단으로서 역할이 강화되는 일거양득이 가능할 것이다.

요즘 영국도 퇴직연금 개혁안을 준비하고 있다. 호주처럼 퇴직연금을 8개의 거대기금으로 재편하고 규모의 경제로 높아진 자산배분 여력을 활용해 FTSE 상장주식과 벤처투자의 약화한 수요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연금 선진국이라는 영국조차 수요기반 강화를 위해 연기금을 재편하는 상황을 보면 글로벌 금융경쟁의 강도가 얼마나 치열한지 짐작게 한다.

최은영 (eun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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