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무대 위에선 하나도 허투루 놓치거나 보내면 안 된다"
"연극은 꾸며진 얘기고 또 우리가 현실에서 맨날 거짓말하고 사는데, 배우가 무대 위에 올라가서 자기가 말하고 행동하는 거엔 거짓이 없다.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 현실에서는 거짓말하면서 여러분이 무대에서 하는 언어나 몸짓에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 그러니까 진실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에 버릴 게 하나도 없이 소중한 것이다. 무대 위에서 하는 짓은 그래서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놓치거나 보내면 안 된다. 오늘 여러분이 수없이 많이 움직이긴 했지만 발걸음 하나도, 말 한마디 숨쉬는 호흡 하나도 무대 위에서는 굉장히 소중한 거다. 소중하게 해야 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6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국립극단 청년 교육단원들의 연극 '죠죠'를 관람한 뒤 이같은 지적을 하며 후배 연극인들에게 조언했다.
이날 오후 3시에 시작한 연극을 두 시간 가량 관람한 유 장관은 취임 이후 관람했던 다른 공연과는 달리 칭찬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유 장관은 음악, 무용, 클래식, 뮤지컬 등 다양한 공연장에서 무대를 마친 이들을 향해 대부분 박수와 함께 환호를 보내곤 했다. 하지만 이날은 관객 대부분이 청년 단원들의 최종 발표회 무대에 대한 의례적 박수와 환호를 보내고 있어도, 심각한 표정으로 무대 위를 주시했다.
흡족해하지 않는 기색이 역력했다. 평생을 배우로 살면서 특히 직접 극단과 공연장까지 운영했던 연극 전문가인 그가 후배들의 발표회 앞에서 편안하고 너그러운 표정만 보일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극 무대에 관한 유 장관의 경험과 지식이 냉철한 분석으로 이어졌다.
유 장관은 "교육단원 40명이 4팀을 만들어서 주연과 앙상블을 테스트하듯 돌아가면서 하다 보니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면서도 "오페라나 다른 분야는 오랜 시간 트레이닝 된 경우가 많아 프로에 뒤지지 않는단 생각이 들게 되는데 연극은 어렸을 때부터 하는 것도 아니고 무대 자체는 역시 나이가 들고 연륜이 쌓여야 어떤 내공이나 깊이가 있게 되는 거라 여러분처럼 젊은 사람들을 뽑아서 여러분들끼리만 하는 게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이날 8개월 간의 교육을 마친 청년 교육단원들이 최종 발표회 무대에 올린 '죠죠'는 소설과 희곡의 경계선에 있는 작품 이다.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내용으로 기본적으로 몰입이 쉽지 않고 모든 관객이 쉽게 즐길 수 있는 극은 아니었다. 연출가에 따르면 '죠죠'는 교육단원들의 '졸업'작품 격이어서 관객의 감상보다는 배우들의 기량 향상을 고루 확인해 볼 수 있는 자리로 선택됐다.
유 장관은 "오늘 이런 어려운 작품을 선택해서 이런 것을 소화해내고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조금 더 연습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었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평가했다. 특히 무대 위 발성에 대해 유 장관은 "'국립'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곳에서는 특히 발음을 정확히 했으면 좋겠다. 감정이나 어떤 분위기에 빠져서 소리는 들리는데 말이 안 들리면 참 곤란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그게 가르쳐도 고치기가 되게 힘든데 소리는 지르는데 정확한 전달이 안 되는 건 안 된다. 이런 지적을 해서 미안한데 내가 여러분하고 똑같은 과정을 겪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할 수밖에 없다"며 "여러분이 배우 생활을 앞으로 하더라도 이거는 정말 염두에 둬야 할 일이다. 소리를 지르든 아무리 작은 소리로 하든 빨리 말하든 늦게 말하든 정말 말이 정확하게 전달이 돼야 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일단 감정은 좋은데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게 감정이 앞서가고 있으면 이게 참 어렵다"며 "그게 프로로 가는 길목이다. 어떻게 보면 쉬운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되게 어렵고 그건 아직 여러분이 다 소화해내기엔 조금 연습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조언했다.
또한 "그만큼 자기 몫을 분명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돼야 된다"며 "많은 사람 중에 뽑힌 사람들인데 확실하게 개개인이 빛이 날 수 있도록 작품을 했으면 더 좋았겠다"고 충고했다.
유 장관은 "다음부터는 청년단원 들 중에서 선발을 거쳐 공연에 참가하거나 단막극을 여러 번 하는 식으로 공연하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어 "서울에서만 하지 말고 지역에서도 공연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후배 배우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이어 갔던 유 장관은 따뜻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그는 "어려운 작품을 함께 잘 연습하고 발표회까지 했는데 진정성 있게 무대를 잘 준비했다"고 말했다.
유 장관은 "오늘 조언을 잘 염두에 두시고 여러분과 나중에 혹시 나하고 같은 무대에서 하게 되면 이렇게 좋은 자리에서 만날 수 있으면 더 좋겠다"며 격려하기도 했다.
문체부는 내년 예산안으로는 국립예술단체 청년 교육단원 총 600명을 선발할 수 있는 예산을 배정했다. 올해의 350명에 비해 두배에 가까운 숫자다. 이날 무대를 올린 국립극단에도 80명을 배정해 올해보다 두배로 늘리게 된다. 문체부는 18일 국립합창단, 19일 국립무용단 등 국립예술단체 청년 교육단원들의 발표회를 연이어 개최한다.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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