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명태균의 기념사진

2024. 11. 1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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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어두운 방의 한쪽 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빛이 들어오도록 하여 외부의 풍경이나 사물이 반대편 벽에 투사되는 '카메라 오브스쿠라'(Camera Obscura)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됐다.

이미지를 영구적으로 기록할 수 없었던 카메라 오브스쿠라는 19세기 프랑스 루이 다게르의 다게레오타이프가 발명되면서 비로소 예술과 기록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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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자 멜로니(왼쪽) 이탈리아 총리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포옹하는 자세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X캡처

16세기 어두운 방의 한쪽 벽에 작은 구멍을 뚫고 빛이 들어오도록 하여 외부의 풍경이나 사물이 반대편 벽에 투사되는 '카메라 오브스쿠라'(Camera Obscura)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됐다. 이미지를 영구적으로 기록할 수 없었던 카메라 오브스쿠라는 19세기 프랑스 루이 다게르의 다게레오타이프가 발명되면서 비로소 예술과 기록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후 미국 코닥의 창립자 조지 이스트먼이 소형카메라와 필름을 개발하면서 누구나 쉽게 소중한 기억이나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필름 카메라의 시대는 생각보다 길지 못했다.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과 휴대폰 카메라 확산이 시장을 완전히 바꿔놓은 탓이다. 24컷·36컷 35mm필름의 촬영 횟수 제한이나 필름 현상, 인화 등의 번거로움이 사라지면서 이전보다 다양한 일상을 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쉽게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일부러 무거운 촬영장비를 챙겨 나갈 필요도 없다. 게다가 내가 애써 기억하지 않아도 휴대폰 카메라에 담긴 일상은 차곡차곡 웹하드에 쌓이고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다. 사진이 기억의 또 다른 저장 수단이 된 것이다.

고급 자동차·음식, 명품 액세서리, 영향력 있는 인물과의 만남, 알리고 싶은 현재의 상황 등 기억의 저장소에서 꺼내져 무심한 듯 포장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전시된 기억의 상패들을 매일 마주하며 나 또한 그 '과시놀음'에 동참하고 있다. 현장성과 시간성의 속성을 지닌 명확한 증거인 사진 자료를 통해 의심스러웠던 과시는 타인에게 좀 더 진실처럼 다가간다. 나 자신을 스스로 포장하며 영향력을 키워나가는 세상이다.

지난 11월 5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자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자신의 X(옛 트위터)에 "몇 시간 전에 머스크와 연락했다"면서 지난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와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 한 장을 올렸다. 머스크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을 도운 일등공신 '킹메이커'로 꼽히는 인물이다. 게시물의 반응은 빨랐고 의도는 성공적으로 대중들에게 전달됐다. 현지 언론들은 멜로니 총리가 트럼프 당선자의 킹메이커이자 자신의 친구인 머스크를 시작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유럽 대표’로서 특권을 누리기를 바라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으며 여러 분야에서 대미 특수를 기대하고 있다.

최근 김건희 여사 공천 개입 의혹이 일파만파다. 의혹의 핵심 인물인 ‘명태균’씨는 지난 9월 김건희 여사의 김영선 전 의원 공천 개입 의혹 과정에서 드러났다. 명씨는 평소 주변에 윤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과시해왔다고 한다. 현재 명씨와 접촉했다는 의혹을 받는 여권 인사도 수십 명에 달한다. "명태는 알아도 명태균은 몰라요" 해당 인사들은 모두 명씨와의 관계를 부인하며 비난했지만 그때마다 명씨는 함께 촬영한 기념사진을 SNS에 게재하며 그들의 주장을 반박했고 추가로 사진을 공개하겠다며 역공을 했다. 그들이 명씨를 실세로 생각해 접근했는지 명씨가 또 다른 과시를 위해 그들과 함께한 사진을 남겼는지는 알 수 없다. 결정적인 기억의 저장 앞에 침묵하고 있는 그들에게 궁금증이 생겼다. 기념사진은 누가 과시하고 싶어서 남긴 것일까.

류효진 멀티미디어부장 jskn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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