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만 보고 가게 해서야”… 관광보국 이은 123층 랜드마크

이민아 기자 2024. 11. 1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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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한류, K-헤리티지로] 〈7〉 랜드마크 제조기 롯데
신격호 창업주 ‘관광보국’ 선도적 투자
동양 최대 특급호텔 건설로 시작해… 2억명 찾은 롯데월드 관광명소로
2세 신동빈 회장 월드타워 마무리
5일 555m 높이 123층 건물인 롯데월드타워 옥상. 구름 사이로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바로 아래 122층 전망대엔 국내 방문객들은 물론 다양한 나라에서 온 듯한 해외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탁 트인 시야에 연이어 감탄사가 터졌다. 롯데는 1987년 매입한 땅에 2011년에야 주춧돌을 놓았다고 했다. 주춧돌을 놓기까지 24년간 한국 최고층 건물의 청사진은 23번이나 변경됐다.

롯데월드타워는 고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가 남긴 헤리티지 ‘관광보국(觀光報國)’을 상징한다. 신 창업주는 자신의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에서 “나에게 필생의 꿈은 관광한국의 랜드마크를 세우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외람되지만, 나는 남이 만든 과거의 문화재보다는 내가 미래에 남길 문화재를 창조하는 일에 더 몰두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신 창업주의 30년짜리 숙원 사업이었던 롯데월드타워는 2017년 완공됐다. 국내 최초의 독자 브랜드 호텔인 롯데호텔에서 시작해 세계 최대 실내 테마파크 롯데월드 어드벤처 등으로 이어온 신 창업주의 헤리티지를 아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마무리한 것이다. 신 창업주는 롯데월드타워가 문을 연 지 3년 후인 2020년 눈을 감았다.

● “언제까지 고궁만 보여줄 건가”

“외국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세계 최고의 그 무엇이 있어야 외국 사람들이 즐기러 올 것 아닙니까.”

신 창업주 회고록에 실린 문장이다. 롯데월드타워 5층에 자리한 ‘신격호 기념관’ 한쪽 벽면에는 ‘관광보국’이란 글귀가 큼지막하게 씌어 있다. 신 창업주는 “부존자원이 빈약한 우리나라는 기필코 관광입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1950∼1960년대 경공업, 1970년대 이후는 중공업 중심의 산업정책이 이뤄지면서 관광업은 뒤로 밀려 있던 상황이다.

그는 “상품 수출을 통한 외화 획득 못지않게 관광레저 산업도 외화 획득의 중요한 재원이 될 수 있다. 관광업이나 유통업도 농업이나 제조업 못지않게 필요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신 창업주의 이런 생각은 롯데그룹의 다양한 ‘랜드마크’ 건설의 모태가 됐다. 롯데월드 어드벤처는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대 규모 실내 테마파크다. 신 창업주가 ‘롯데월드 사업’을 지시한 1984년 서울 잠실은 허허벌판이었다. 그는 “당시 잠실은 황량한 모래벌판” “석촌호수는 볼품없는 물웅덩이”로 회상했다. 임직원들의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놀이시설을 이런 곳에 짓는 게 사업성이 있겠느냐는 우려였다.
하지만 1989년 문을 연 롯데월드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한국에 왔을 때 꼭 찾아야 하는 관광 명소 중 한 곳이 됐다. 미국 팝스타 고 마이클 잭슨과 홍콩 영화배우 류더화(劉德華) 등 세계적인 톱스타들이 앞다퉈 찾았고, 누적 방문객은 2억 명에 달한다.

● 관광 불모지에 세운 38층 특급 호텔

롯데그룹의 관광보국 헤리티지의 시작점은 1973년 완공된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이다. 단숨에 동양 최대의 특급 호텔에 등극하면서 ‘한국의 마천루’로 불렸다. 지하 3층, 지상 38층의 빌딩에는 1000여 객실을 갖췄다. 6년여 공사 기간 투입된 돈은 경부고속도로 건설비에 버금가는 1억5000만 달러였다. 당시만 해도 천문학적인 투자 규모였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그때 국내는 외국 손님을 불러올 국제 수준의 관광 상품이 개발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며 “호텔 사업 구상은 신 창업주와 롯데그룹 모두에 대단한 모험이었다”고 했다.

호텔을 짓는 동안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자신들의 호텔 체인에 가입하라고 손을 내밀었다. 호텔 경영을 위한 노하우를 갖추지 못했음에도 롯데가 내린 결론은 독자적인 브랜드였다. 롯데는 스위스 등 해외 여러 나라에서 전문 인력들을 영입해 고유한 호텔 문화를 창조해냈다. 롯데호텔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소공동 신관과 잠실 롯데호텔을 개관해 여러 국제 행사를 치러냈다. 롯데호텔은 1992년 업계 최초로 2억 달러 관광진흥탑을 받았다. 신 창업주는 1995년 관광산업 분야 최초의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하기도 했다. 독자 브랜드로 출발한 롯데호텔은 2010년 러시아 모스크바에 한국 호텔로는 처음으로 해외 체인 호텔 문을 열기에 이르렀다.

● 아버지의 헤리티지 확장시킨 신동빈 회장

신동빈 회장은 “롯데월드타워는 ‘대한민국에 랜드마크를 남기겠다’고 말한 아버님의 뜻에 따라 세워졌다”고 말하곤 했다. 최고의 랜드마크를 통해 관광보국의 헤리티지를 더 발전시키겠다는 의지가 세계에서 5번째로 높은 빌딩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신 회장은 2017년 10월 그랜드오픈식을 연 롯데월드타워를 놓고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를 넘어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건축물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자신이 시작한 숙원 사업을 아들이 마침내 이뤄내자 신 창업주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나는 타지에서 번 돈으로 한국에 좋은 건축물, 국제적 명물로 한국이 자랑할 만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롯데월드타워는 이제 21세기 대한민국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롯데의 헤리티지는 비단 한 기업의 성장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관광산업 전체를 선진화시키는 발판이 됐다고 평가한다. 서원석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교수는 “관광산업은 당시엔 무모해 보였겠지만 신 창업주는 미래지향적 사고를 했던 것”이라며 “롯데의 헤리티지가 된 관광산업이 지금은 K컬처, K푸드 등의 글로벌 확산과 어우러져 한국의 새로운 먹거리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민아 기자 om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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