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 정상들 보란 듯이, 페루에 초대형 항구 개항한 中
중국이 5년 공사 끝에 완공한 남미 페루의 항구 찬카이항이 14일 문을 열었다. 중국이 중남미 국가들에 철도 등 사회 기반 시설을 깔아 준 일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규모 항구를 통째로 만들어 운영에 나서기는 처음이다. 중국이 이 항구를 일대일로(육상-해상 실크로드)의 중남미 핵심 거점으로 삼겠다고 발표하면서 중남미를 ‘뒷마당’으로 간주해온 미국에서는 경계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찬카이항은 수도 리마에서 북쪽으로 60㎞에 있다.
지난 14일 개항식에는 리마에 머물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디나 볼루아르테 페루 대통령이 원격으로 참가했다. 시진핑은 “찬카이항은 새로운 시대 ‘그레이트 잉카 트레일(Great Inca Trail)’의 시작점이고, ‘21세기 해상 실크로드’의 성공적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레이트 잉카 트레일’은 잉카제국 전성기인 14~15세기 주요 영토를 연결해주던 산악 도로를 말한다. 페루 역사의 중요 부분이기도 한 잉카제국까지 언급하면서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이번 개항식은 페루에서 치르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맞춰 열렸다. 미국·일본·호주·캐나다 등 중국을 견제하며 연대해 온 인도·태평양 지역 주요국 정상 앞에서 일대일로의 새로운 거점이 남미 대륙에 만들어졌음을 과시한 셈이다.
찬카이항은 모든 용도의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초대형 항구를 뜻하는 ‘메가포트(megaport)’로 만들어졌다. 접안 시설을 열다섯 곳 갖췄으며 최고 수심은 17.8m에 이른다. 지분의 60%를 가진 중국 항만 운영사 ’코스코 시핑(COSCO Shipping)’이 운영도 맡는다. 중국 관영 매체들은 찬카이항에 대해 “남미 최초의 스마트 항구(주요 기능이 최첨단 기술로 운영되는 항구)로 새로운 허브항이자 태평양 관문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건설 비용은 13억달러(약 1조8148억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 쏟아부은 금액은 36억달러(약 5조256억원)에 이를 것으로 서방 국가들은 보고 있다고 미국의 소리(VOA)는 전했다.
자국과 태평양을 마주 보고 1만7000㎞ 떨어진 남미 지역에 대형 항구를 확보한 중국은 이곳을 거점으로 중남미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 키우기에 주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은 2001년 당시 장쩌민 주석이 중남미 5국 순방에 나선 것을 계기로 중남미 공략을 본격화했다. 후진타오 주석 집권기인 2008년에는 ‘중국의 대(對)중남미 정책 문건’이라는 백서를 작성하며 방향을 구체화했다. 미국과 본격적으로 세계 패권 경쟁을 벌이기 시작한 시진핑 주석 집권기에는 일대일로 타이틀을 앞세워 중남미 공략에 더욱 속도를 냈다.
통신 기업 화웨이와 ZTE가 중남미 24국 통신 네트워크 구축 사업에 뛰어든 것을 비롯해 중남미 각국에서 중국 기업들이 도시 철도와 도로 등 건설 사업을 수주하며 영향력을 키웠다. 여기에 첨단 기술로 운용되는 초대형 항만까지 확보하면서 중남미에 대한 영향력이 더욱 세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찬카이항은 중국이 중남미 국가들에서 리튬 등 전략적 가치가 높은 광물 자원을 채굴해 자국으로 실어 오고 대두 등 자국산 농산물을 현지에 수출하는 거점 무역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원활한 항구 운영을 위해 지난 9월부터 실제 상황을 가정한 대규모 컨테이너 하역 훈련도 해왔다.
미국은 중국의 활발한 중남미 진출 전략을 자국 패권 흔들기로 간주해 왔다. 이 때문에 찬카이항을 특히 경계하고 있다. 이 항구의 기능이 무역항에 머물지 않고 미국의 군사 시설을 정탐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남미를 관할하는 미군 남부 사령부의 로라 리처드슨 사령관은 지난 5월 상원에 출석해 “우리는 이 항구의 군사적 활용 잠재력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이 유라시아 지역에서 잇따라 잡음 이는 상황에서 대양을 두고 떨어진 남미에서 대규모 항구를 운영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앞서 중국은 일대일로의 하나로 과다르(파키스탄), 함반토타(스리랑카), 피레우스(그리스) 같은 항구를 잇따라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해당 국가들의 경제적 주권이 중국에 예속된다는 등의 논란도 적지 않았다. 서방 선진국 중 유일하게 일대일로에 참여했던 이탈리아는 지난해 탈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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