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서도 잘나가는 ‘하이브리드’
HD현대중공업, HD현대삼호, HD현대미포,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5사가 올해 국내외에서 수주한 배 10척 중 6척은 ‘하이브리드 선박’이다. 올해 187척을 수주했는데 이 중 전통적인 선박용 연료인 중유 외에도 LNG, 암모니아, 메탄올 등 친환경 연료를 함께 쓸 수 있는 이중 연료 선박이 116척(62%)에 달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자동차 산업은 이미 순수 전기차로 전환하는 징검다리로, 기름과 전기를 함께 써서 달리는 하이브리드 자동차가 대세가 되었다. 이제 바다도 마찬가지다.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되고 있지만 100% 친환경 연료만으로는 장거리 운항이 어렵고 대형 선박을 이끌 힘을 내기도 역부족이라, 하이브리드 선박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이브리드 선박은 하나의 엔진에서 서로 다른 연료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등 높은 기술력이 필요해 일반 선박보다 15% 정도 비싸게 받아 그만큼 부가가치도 높은 게 강점이다. 이 분야는 아직 한국 조선소들이 주도하고 있지만, 중저가 선박 시장에 집중해 온 중국 조선소의 추격도 거세 앞으로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바다도 하이브리드가 대세
하이브리드 선박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친환경 규제가 강화되는 추세 때문이다. 지난해 세계해사기구(IMO)는 오는 2030년 선박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8년 배출량의 80%로 줄이기로 했다. 2040년에는 30%로 낮추고, 2050년에는 제로(0)로 만드는 게 목표다. 이를 어기면 막대한 벌금을 매길 계획이다. 보통 선박 수명이 20~30년에 이르기 때문에 지금부터 친환경 선박 확보에 나서는 선사들이 생기면서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다.
시황 분석 기관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글로벌 시장에서 발주된 벌크·원유 운반·컨테이너·석유 제품 운반선 중 35%만이 이중 연료 선박이었다. 하지만 올해 1~10월 이 비율은 59%까지 올랐다. 컨테이너선의 경우 올해 발주된 물량 중 91%가 LNG·암모니아 등을 함께 쓰는 이중 연료 선박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하이브리드 선박 비율이 높아지면서 전체 선박 가격도 올라가고 있다.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2021~2024년 글로벌 선박 발주량은 약 2억1200만CGT(선박 건조 난이도를 고려해 환산한 톤수)로 2004~2007년의 81%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새로 건조하는 선박 가격을 지수화한 신조선가 지수는 지난 9월 기준 190포인트로, 역대 최고인 2008년 9월 수준(192)에 근접했다. 일반 선박보다 비싼 친환경 선박 비율이 커진 때문으로 보인다.
◇차세대 친환경 선박 경쟁
하이브리드 선박은 만들기가 상대적으로 더 까다롭다. 예컨대 LNG를 중유와 함께 쓰려면, 초저온에서 LNG를 액화된 상태로 보관하는 관리 기술이 필수다. 또 다른 친환경 연료로 꼽히는 암모니아는 독성이 있고 금속을 부식시켜 안전하게 처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또 하나의 엔진에서 여러 연료를 쓰려면 제어 시스템을 만드는 것도 까다롭다. 여태까지는 한국 조선소들이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가졌지만, 최근엔 중국의 추격이 거세다.
특히 지난 9월 세계 5위 선사 하파크로이트가 발주한 5조원 규모 이중 연료 엔진을 탑재한 컨테이너선 24척 수주전에서 한국 조선사는 탈락한 반면, 중국 양쯔장조선, 뉴타임스조선이 사업을 따낸 것이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주요 기업들은 차세대 친환경 선박 기술에 속도를 내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10월 세계 최초로 고압 직분사 방식의 암모니아 이중 연료 엔진을 개발했다. 출력이 낮다는 기존 암모니아 이중 연료 엔진의 약점을 더 보완한 것으로,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한화오션은 100% 암모니아로만 가동할 수 있는 가스 터빈을 개발 중이다. 삼성중공업도 암모니아를 수소와 질소로 분리한 후 화학반응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선박용 암모니아 연료 전지를 연구하고 있다.
☞이중연료(Dual fuel) 선박
전통적인 선박용 연료인 중유와 LNG, 암모니아, 메탄올 등 친환경 연료를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엔진을 장착한 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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