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안전한 사회’ 우기는 중국
사회적 불만, 묻지마 범죄 표출
中 당국은 권위 세우기만 급급
개인적 이유 치부… 대책 모르쇠
지난 15일 오후 중국 베이징의 한 초등학교 앞. 하교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데리러 온 부모·조부모들로 붐비는 가운데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 눈에 띄었다. ‘폭력 방지’(防暴) 문구를 등에 단 보안요원 5∼6명이 흉기난동 제압에 효과적인 것으로 보이는 긴 막대기를 들고 정문 앞을 지키고 있었고, 별도로 서넛씩 조를 지어 학교 외곽을 순찰하는 이들도 보였다.
중국 온라인상에서는 이런 사건을 ‘헌충(獻忠)사건’이라 부른다. 유래가 된 장헌충(張獻忠)은 중국 명나라 말기 민란 지도자인데, 청군이 근거지인 쓰촨 지방으로 진입하려 하자 해당 지역에서 ‘도촉’(屠蜀)이라고도 불리는 대학살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중국 포털에 헌충사건을 검색해 보면 연관검색어에만 최근의 묻지마 범죄에 대한 흔적이 남아 있고, 정작 검색결과는 역사 속의 장헌충에 관련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지난달 중국 인터넷 규제당국인 인터넷정보판공실은 홈페이지에 올린 공지문을 통해 교육부와 함께 “인터넷 속어와 부적절한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애매모호한 표현을 남용하는 등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단속한다”고 밝혔다. 이런 단속 캠페인은 중국 청년들이 자포자기해 드러누워 버린다는 ‘탕핑’(躺平), 건설이 중단된 아파트 ‘란웨이러우’(爛尾樓)에서 파생된 고학력 실직자 ‘란웨이와’(爛尾娃) 등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데, 헌충사건 역시 이런 키워드와 함께 묶인 듯하다.
중국 당국은 잇따르는 묻지마 범죄의 동기를 개인적인 이유와 연결시키고 있다. 경찰은 주하이 체육관 차량돌진 사건 직후 이례적으로 빨리 “판씨가 이혼 후 재산 분할 결과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발표했고, 우시 직업훈련기관 흉기난동 사건의 범인은 졸업시험에 낙제한 데다 기관 내 인턴직으로 받은 보수에도 불만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 침체와 부동산 위기가 사그라들지 않는 상황에서 사건이 이어지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봐도 사회적인 불만이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지린성에서 미국인들을 흉기로 공격한 사람과 쑤저우에서 일본인을 공격한 가해자 역시 모두 실업자로 알려졌다. 실업률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경제 불황 탓에 실업자들이 재취업에 실패하고, 결국 전체 사회에 대한 적대와 분노가 폭발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건들은 공산당의 통치 능력에 대한 일반 대중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 당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문제일 수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신속하게 자동차 돌진 사건 가해자에 대한 엄중 처벌과 유사 사건 발생을 엄격하게 방지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도 이런 우려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중국에 부임했을 때 자주 듣던 이야기가 “그래도 중국은 (개인이 총기를 소유한) 미국보다 안전하다”는 것이었다. 이는 중국인들로 하여금 다소 침해될 수 있는 자유까지도 감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중국 외교부 역시 사건 발생 후 브리핑에서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범죄율이 낮은 국가 중 하나”라며 사망자 가운데 외국인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은 더 이상 중국이 일반 시민들에게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대중에 일깨워주고 있다. 보다 근본적인 조치가 나와야 할 때다.
이우중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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