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정율성 공원’… 민주화 聖地가 왜 6·25 전범 추앙하나”

김윤덕 기자 2024. 11. 18.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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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이 만난 사람]
보훈심사위원장 된 전사자 母
故 서정우 하사 어머니 김오복
48억원을 들여 복원한 ‘정율성 생가’ 앞에서 만난 김오복 위원장은 “6·25 전범을 기념하는 건 나라 위해 목숨 바친 호국 영령과 민주 영령들을 모독하는 일”이라고 했다. /김영근 기자

지난 8월, 대전현충원에 미역국과 케이크를 들고 갔다 설움에 잠긴김오복씨는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에게 문자를 보냈다. “아들의 생일을 아들의 묘역에서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아십니까?”

1년 넘게 이어온 싸움이었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데도 광주광역시가 정율성 역사 공원 설립을 밀어붙이는 건 두고 볼 수 없었다. “보훈부 사주를 받았냐” “극우냐” 시비 거는 이들에게 “당신 아들이 북한군 포격에 사지가 찢겨 죽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나요?” “민주화 성지인 광주가 6·25 전범을 기념해도 됩니까?”라며 맞섰다.

48억원을 들여 복원했다는 광주시 불로동 ‘정율성 생가’ 앞에서 김오복씨를 만났다. 2010년 11월 23일 북의 연평도 포격으로 전사한 서정우 하사 어머니인 그는, 17일 전사자 가족으로는 처음 보훈심사위원회 위원장에 임명됐다.

◇ 총선 압승하자 버티는 광주시

-정율성 논란은 일단락된 줄 알았는데.

“정율성이 2년 다녔다는 화순군 능주초등학교는 흉상, 벽화, 기념관을 철거했지만, 광주시의 정율성 공원 사업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가보훈부가 시정 명령을 내리지 않았나?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정율성 역사 공원이란 명칭은 바꿔보겠다’고 물러서더니,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으로 이념 몰이 비판이 일자 다시 분위기가 바뀌었다.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는 버티기에 들어간 것 같다.”

-강기정 시장은 국정감사에서 ‘광주에 맡겨달라’고 읍소를 하던데.

“우리가 정율성 공원을 독립·호국·민주화 운동을 아우르는 ‘광주 근현대 역사 공원’으로 바꾸자고 제안한 게 올 1월이다. 그런데 11월이 되도록 아무 답변이 없다. 면담 요청을 해도 만나주지 않는다.”

-이미 예산이 집행된 사업이라 중단할 수 없다는 게 광주시 입장이더라.

“그래서 공원의 성격을 바꾸자는 것이다. 5·18 묘역 앞에 전두환 공원을 세운다고 하면 유족들이 가만히 있겠나. 정율성은 대한민국에 총부리를 겨눈 전범이다. 그가 작곡했다는 조선인민군 행진곡 가사를 봤나. ‘불의의 원수들을 다 물리치고 조국의 완전 독립을 쟁취하겠다’고 돼있다. 쓸어버리겠다는 반동의 무리가 누구인가.”

-48억원을 들인 것치고는 생가나 공원 규모가 매우 작다.

“땅과 폐가를 사들이는 데 37억원, 리모델링에 11억원이 들었단다. 말이 ‘생가’지 정율성이 태어난 곳도 아니다. ‘이 언저리에 살았다’는 정율성 집안 사람의 말 한마디에 근처 적당한 집을 매입한 것이다.”

-양림동에도 ‘정율성 생가’가 있던데.

“광주시 남구(양림동)와 동구(불로동)가 서로 여기가 정율성 생가라고 우기며 법정 다툼까지 하다가 불로동이 생가, 양림동은 성장한 곳으로 타협했다. 얼마나 주먹구구 행정인가.”

지난 8월, 대전현충원에 잠들어 있는 아들 故서정우 하사 묘에 생일 케이크와 미역국을 들고 찾아간 김오복씨. 그는 '아들의 생일을 아들의 묘역에서 보내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아십니까?'라는 문자를 보내며 정율성 공원 철폐를 호소했다. /김오복 보훈심사위원회 위원장 제공

◇누가 광주를 고립시키나

-강기정 시장은 ‘정율성 공원’은 한중 우호를 위해 30년 넘게 해온 지자체 사업이라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정율성이 중국 3대 음악가로 인정받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한중 우호를 위해 한 일이 무엇인가. 정율성은 해방 후 북한으로 가서 김일성 정권 수립을 도와 표창까지 받았고, 수많은 북한 군가를 작곡했으며, 6·25 때 참전해 궁정 악보까지 훔쳐 간 인물이다. 김원봉, 윤이상 핑계를 대던데 적어도 그들은 대한민국에 총부리를 겨눈 전범은 아니었다.”

-정율성이 항일운동을 했다고도 한다.

“의열단에 들어갔다는 말이 있지만 독립운동을 했다는 근거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 시절 김원봉과 정율성을 독립운동 유공자로 서훈하려다 실패한 이유다.”

-정율성로, 정율성 음악제 등 정율성 사업의 애초 목적은 중국인 관광객 유치 아니었나?

“정율성 사업을 시작한 황일봉 전 남구청장이 지난해 사죄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당시엔 중국 관광객 붐이 일어서 광주 출신 음악가 정율성을 매개로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다고 확신했는데, 그가 6·25 전범이란 사실은 몰랐다는 것이다.”

-중국 관광객은 많이 왔나?

“초창기에 조금 오다가 뚝 끊겼다. 민주화 성지인 광주에서 중국인들이 영향을 받을까 봐 중국 당국이 규제했다더라. 황 전 청장은 정율성을 통한 중국 관광객 유치는 허상이고 허구였다고 고백했다.”

-정율성 사업은 광주 정신에도 위배된다고 했던데.

“광주 정신은 전두환 독재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낸 항거의 정신이다. 그런데 독재보다 더 나쁜 공산주의에 평생 헌신한 자를 광주 출신이란 이유로 기념하는 건 민주 영령을 모독하는 일이다.”

-일부 시민 단체는 정율성 공원 반대 집회가 광주를 이념적으로 고립시킨다고 비판한다.

“광주가 공산주의자를 기념하는 도시로 전락한다면 스스로 더 고립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5·18 민주항쟁에 북한 개입설을 운운하는 극우 세력에 빌미를 줄 뿐이다.”

광주광역시 양림동에 조성된 '정율성로'에는 정율성의 업적이 가득 소개돼 있다. 그러나 정율성이 김일성 정권 수립에 기여했다는 사실과 6.25전쟁에 북한군으로 참전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김윤덕 기자

◇담배꽁초 널브러진 현충탑

-방치된 광주 현충탑을 두고도 강 시장에게 쓴소리를 했더라.

“현충탑에 담배꽁초가 널브러져 있고 쉴 만한 공간도 없어 정비 좀 해달라 부탁했더니 예산이 없다고 하더라. 그런데 정율성 공원에는 48억원을, 그것도 순수하게 광주시 예산만으로 집행했다.”

-그래서 거리로 나오셨나?

“5·18 정신을 훼손하는 발언을 하면 5·18 단체들이 들고 일어선다. 친일 발언과 행적에는 광복회가 분노한다. 내 아버지와 아들을 죽인 북한군 전범을 기념한다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나.”

-작년 9월부터 매주 광주시청 앞에서 집회를 해왔다.

“6·25 전사자 유자녀인 전몰군경유족회와 미망인회를 중심으로 광주가 올바른 상식이 통하는 지역이 되길 바라는 분들이 함께 하신다. 광주시가 올해 보훈단체 지원 예산을 삭감해 몇몇 단체가 반대를 철회하는 소동도 있었다.”

-관제 데모, 극우 시위라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어렵게 살아가는 회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플래카드 만들고 점심 값을 나눈다. 박민식 장관이 그만둔 뒤로는 보훈부가 소극적이어서 오히려 불만이 많다. 극우? 우리 집회엔 김대중 대통령 연설비서관을 한 분도 나온다. 황일봉 전 청장은 5·18부상자회 회장이었다.”

-지난해 교장으로 퇴직한 당신이 직접 집회를 이끌더라.

“학교 선생이 어떻게 시위를 하냐는 시선이 있을 것이다. 정치할 거냐고 묻는 사람도 있더라(웃음). 나도 아들 떠난 뒤 10년 동안은 교사의 본분을 지키려 노력했다. 그런데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를 보면서 ‘나는 비겁한 엄마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달 23일이 서정우 하사 14주기다.

“공중전화로 ‘드디어 말년 휴가 나가요’ 하며 기뻐하던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차비가 모자랄 것 같으니 돈을 조금 부쳐달라며 ‘미안해요’ 했던 말도….”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게 그해 추석이었다고.

“아들이 해병대 복무할 때 하필 내가 고3 진학부장이었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아이들을 지도해야 해서 면회를 한 번도 못 갔다. 결근하고라도 갔어야 했는데, 그게 제일 미안하다.”

-유족의 슬픔엔 시간표가 없다고 한다.

“낙엽이 떨어지면 포탄에 스러진 우리 아들 같아서 울었다. 봄에 새싹이 솟아나면 꽃 한번 피우지 못하고 떠난 아이가 불쌍해 울었다. 비가 억수로 퍼부을 땐 현충원으로 달려갔다. 그 비를 그대로 내 아들이 맞고 있는 것 같아서.”

-연평해전, 천안함 유족들의 위로가 큰 힘이 됐다던데.

“천안함 윤청자 여사와 연평해전 윤영하 소령 어머니가 잡아준 따뜻한 손을 잊을 수 없다. ‘우리가 이렇게 사는 줄 누가 알겠어요’ 하시더라. 해병대 채 상병 어머님도 꼭 만나 손잡아 드리고 싶다.”

지난 2012년 11월 17일 오전 대전국립현충원에서 故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씨가 눈물을 참으며 묘비를 닦고 있다. /김지호 기자

◇이젠 울지 않는다

-아들은 어떻게 해병대로 갔나.

“늘 강해지고 싶어 했다. 경쟁률이 4대1이라 처음엔 떨어졌는데 병무청에 전화를 걸어 취소하는 사람 있으면 자기를 꼭 보내 달라고 부탁하더라. 그렇게 연평도로 갔다.”

-선착장에 있지 왜 부대로 복귀하다 포탄을 맞았는지 안타까웠을 것 같다.

“책임감이 강한 아이라 어떻게든 부대로 돌아가 싸우려고 했을 것이다.”

-아들의 전사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나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평범한 호남 사람이다. 그런 내가 북한 도발의 피해자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전쟁도 아닌데 내 아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안보만큼은 보수와 진보가 한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왜 갈라지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연평도 포격 1년 뒤인 2011년엔 김정일 조문 논란이 있었다.

“북한 포격으로 전사한 군인들에겐 국화꽃 한 송이 올려주지 않던 정치인들이 김정일 조문은 못 갈까 봐 안달 내는 모습에 피눈물이 나더라.”

-문재인 대통령에겐 ‘일본의 사과는 그토록 요구하면서 북한에는 왜 사과를 요구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 오셨을 때 정중히 여쭸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 나는 대한민국이 친일도 안 되지만 친북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연평도 포격이 잊혀 안타까운가.

“북한이 민간인이 살고 있는 곳에 포격을 가할 만큼 무도한 집단이라는 사실을 잊어가고 있는 게 안타깝다. 아들 장례식 후 모르는 사람들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대북 강경책을 써서 북한이 연평도를 포격하게 만든 이명박 대통령에게 왜 항의하지 않느냐고. 그래서 말했다. 살인자를 두둔하는 당신 같은 사람들이 이 나라 안보를 망치는 거라고.”

-전사자의 가족으로 처음 보훈심사위원장에 임명됐다.

“보훈위원으로 활동해 오면서 보훈 문화와 정책에 대해 느낀 게 많다. 진영 논리에 따라 편파적으로 심사가 이뤄지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올바른 예우를 받도록 온 힘을 다할 것이다.”

-서정우 하사가 제일 기뻐하겠다.

“학교 일로 바빠 챙겨주지 못했는데도 정우는 늘 엄마를 자랑스러워했다. 교장까지 꼭 하시라고 격려해 준 아들이다. 근무 첫날(18일) 현충원에 가는데, 울지 않고 늠름하게 아들을 만날 것이다.”

☞김오복

1960년 전남 곡성 출생. 광주여상, 동국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광주 대성여고에서 37년 동안 교직 생활을 했으며, 작년 2월 교장으로 정년퇴임했다. 장남 서정우 하사가 2010년 연평도 포격전으로 전사한 뒤 유족회 대표를 맡고 있으며, 국가보훈부 정책자문위원, 국가보훈위원회 위원, 정율성 공원 철폐 범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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