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판 '쇼미더머니' 이날치전, 창극이 이렇게 재밌다고?

서지혜 기자 2024. 11. 17.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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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조선 후기 호적을 돈 주고 살 만큼 신분제가 흔들리던 시기.

당대 최고의 줄타기 고수 이날치가 3cm 정도의 얇은 줄 위에 올라선다.

국립창극단의 신작 '이날치전'이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14일 개막했다.

'이날치전'은 이경숙의 삶에 허구를 가미해 전통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국립창극단의 창작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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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창극단 '이날치전' 개막
줄타기 남창동과 소리꾼들이 펼치는 한국판 뮤지컬
실화에 현대적 요소 가미한 팩션으로 전통 재해석
[서울경제]

때는 조선 후기 호적을 돈 주고 살 만큼 신분제가 흔들리던 시기. 당대 최고의 줄타기 고수 이날치가 3cm 정도의 얇은 줄 위에 올라선다. 이날치는 기세등등하다. 줄에 올라섰을 때 만큼은 양반이든 평민이든 모두 그의 발 아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누가 정했나 염병할 신분, 누가 없앨까 염병할 신분”을 외치며 줄 위에서 묘기를 펼친다.

사진제공=국립창극단

국립창극단의 신작 ‘이날치전’이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14일 개막했다. 이날치는 조선후기 8명창인 이경숙(1820~1892)의 별명이다. 날쌔게 줄을 잘 타서 이날치라고 불린 이경숙은 노비로 태어나 줄광대로 살았지만 귀동냥으로 소리를 익혀 명창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이날치전’은 이경숙의 삶에 허구를 가미해 전통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국립창극단의 창작극이다.

공연은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이날치 역은 이광복·김수인이 연기하지만, 줄타기는 국가무형유산 줄타기 이수자 남창동이 맡는다. 극이 시작되지마자 등장하는 남창동은 20여 분간 줄 위에서 달리기, 점프, 백덤블링 등 각종 묘기를 선보인다. 지난 14일 열린 공연에서 관객들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그의 줄타기 실력에 함성과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소리꾼이 되기로 한 이날치(김수인). 사진제공=국립창극단

1부 중반부터 이날치는 소리를 잘 하면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소리광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가 소리를 하려는 이유는 벼슬을 얻어 주인댁 딸 ‘유연’과 다시 만나기 위해서다. 이날치와 유연의 사랑 이야기는 윤석미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설정이다. 작가는 작품 속에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날치의 연애사를 흥미롭게 풀어가기 위해 카카오톡을 변형한 ‘달톡 메신저’라는 캐릭터를 선보인다. 두 사람이 달을 보며 서로를 향한 마음을 이야기할 때 달이 메신저가 되어 이를 전달하는 것. 전통 계승에 함몰될 수 있는 창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가의 기발함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사진제공=국립창극단

이야기 중심의 1부가 끝나면 2부에서는 소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날치전에는 32곡의 노래가 나오는데, 이 중 절반은 전통소리, 절반은 창작 소리다. 특히 춘향가,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중 대중이 익숙한 유명하고 핵심적인 대목을 고루 녹여냈다. 아는 노래가 나올 때마다 관객들이 ‘얼쑤’를 외치는 것도 창극 공연에서만 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다.

이날치와 소리 대결을 펼치는 박만순. 사진제공=국립창극단
소리대결에 나선 이날치의 모습. 사진제공=국립창극단

이날치전에서 가장 놓치면 안 되는 장면은 ‘소리 배틀’이다. 극중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주도해 펼쳐지는 소리 대결은 한 사람이 일정한 대목까지 부르면 다른 사람이 이를 이어받아 부르는 방식으로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 미 더 머니’를 연상케 한다. 윤선미 작가는 “19세기 한양의 광통교에선 중인들이 소리광대 1명씩을 천거하고 구경꾼의 추임새와 박수로 승자를 가리는 소리판이 성행했다”며 “그 시절에도 이렇게 놀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연은 21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서지혜 기자 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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