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와 세상]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20집 앨범 제작발표회가 끝난 뒤 대기실에서 조용필과 마주 앉았다. “앨범은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얘기한 그가 “다음엔 로큰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음악이 없는 삶’은 죽음이기에 ‘마지막 앨범’은 공언이 될 수도 있다. 1988년 내놓은 10집 앨범은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친 것이었다. 원래 두 장짜리 앨범으로 기획했으나 한꺼번에 유통하는 게 여의치 않아 1년을 사이에 두고 ‘파트 1’과 ‘파트 2’로 나눠서 냈다.
‘파트 2’(사진)에 실린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은 파격 그 자체였다. 재생시간이 19분56초로 소설로 치면 대하 장편이다. 양인자가 작사한 이 노래에는 ‘실험적인 앨범’을 갈망한 조용필의 의지가 반영됐다. 그 당시 조용필은 울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세상이 떠들썩했던 박지숙과의 이혼, 9집 수록곡인 ‘마도요’의 표절과 왜색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말하라…’는 세상을 향해 울부짖고 싶었던 조용필의 심정이 담긴 노래였다.
3분대를 넘기는 노래가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주된 홍보수단이던 라디오에서 이렇게 긴 노래를 틀어줄 리 없었다. 김희갑이 작곡한 이 노래는 현악기와 브라스사운드, 신시사이저 등 다양한 악기로 변화무쌍하게 전개된다. 마치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The Wall)’과 같이 프로그래시브록을 지향한다.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계승하는 듯한 이 노래는 같은 앨범에 수록된 ‘큐(Q)’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오늘 아침 내가 행복한 이유는 이런 거지/ 오늘 아침 내가 서러운 이유도 그런 거야/ 청춘이 아름답다 하는 것은 환상이지. 환상이라야 해/ 지금부터 시작되는 시간들이 최상이 되어야지…/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 변명 없이 살아가고 싶었네/ 후회 없이 떠나가고 싶었네’
보들레르의 시구를 인용해 청춘과 방황, 사랑과 미움, 고독과 절망을 노래한 ‘말하라…’를 다시 듣고 싶은 아침이다.
오광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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