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혐오 여전한 사회…“여성 목소리 지지하는 공간 절실”
대학 ‘경쟁력 확보’ 고민…동덕여대는 일방 추진 문제
“공학 전환 땐 페미니즘·성평등 논의 위축될 것” 지적도
‘동덕여자대학교 남녀공학 전환 반대운동’의 파장이 전국 소재 여대로 번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학생들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하는 학교 측에 대한 항의로 보이지만, 이면에는 그간 학내 문제를 둘러싼 학교와 학생 사이의 대립이 이번 일로 터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동덕여대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는 1990년대부터 시작된 여대의 생존 고민 문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7년 졸업 정원제 폐지, 1995년 대학 설립기준 완화로 4년제 대학이 늘면서 신입생 모집 경쟁이 치열해지자 대학들이 ‘여대 간판’을 떼기 시작했다. 상명여대·부산여대 등이 대표적이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1990년대 들어 공학 전환이 대학 경쟁력 확보 수단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2000년대 이후 가팔라진 학령인구 감소는 경쟁을 심화시켰다. 지원자 범위가 제한적인 여대는 위기를 맞았다. 2015년 덕성여대, 2018년 성신여대에서 공학 전환이 추진됐다. 각 학교 재학생·졸업생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지만 대학 경영난은 계속됐다.
문제는 학교 측이 제대로 된 소통 없이 공학 전환을 논의하면서 일이 커졌다. 동덕여대 학생들이 이례적으로 강하게 반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학생들은 지난 10일부터 일주일째 학교점거 농성을 하고 있다. 기물파손에 수업거부 운동까지 벌이자 김명애 동덕여대 총장은 피해액이 54억원에 달한다고 공개하면서 학생들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남녀공학 전환 때문에 학교를 부수고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상황을 모르는 일반 시민들은 의아해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이번 사태를 단순히 공학 전환 문제로 보지 않았다. 동덕여대에서 만난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학교 안밖의 성범죄와 여성혐오를 언급했다. 학교 밖에선 교제살인으로 한 해 최소 100여명의 여성이 남성에게 살해된다는 통계가 있다. 학교 내에선 ‘알몸남’이 교실에 난입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위협과 혐오를 막아내온 여대라는 공간적 특수성이 공학으로 전환되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가 강했다는 것이다.
2022년 독일어과·프랑스어과 통폐합 일방 추진과 지난해 학내 쓰레기 수거차량에 학생이 숨지는 사고 등에서 보인 학교 측의 미온적 대처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이번 공학 전환 문제만큼은 가만히 있어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컸다고 한다.
실제 학생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동덕여대에서 칼부림을 벌이겠다’는 글이 올라와 경찰이 추적에 나섰고, 지난 14일에는 20대 남성이 한밤중에 동덕여대에 무단 침입해 경비원과 실랑이를 벌이다 체포됐다. 반여성주의 단체 신남성연대는 다음달 14일까지 4주간 동덕여대 앞에서 반대 학생들을 비판하는 집회를 신고했다.
학생들은 차별과 혐오가 여전한 사회에서 여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더 명확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12일 덕성여대 총학생회는 “여학생들은 편견과 성차별이 만연한 환경 속에서 교육받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여대는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지하는 공간으로 기능한다”는 입장을 냈다.
일각에서는 ‘여대 무용론’과 ‘여대 자체가 역차별’이라고 주장한다. 여성의 대학 진학률이 높아진 만큼 여대가 없어도 충분히 교육 기회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성 진학률만으로 여대 존립 이유를 판단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여대가 남녀공학이 됐을 때 페미니즘과 성평등 논의는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대가 ‘여성만의 안전한 공간’ 이상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온다. 권김 소장은 “동덕·성신·숙명여대 모두 2015년 이후 여성학 강좌가 사라지거나 축소되면서 여성 고등교육의 가치가 무엇인지 얘기할 수 있는 계기가 사라진 것도 이번 사태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며 “안전한 공간으로서의 역할뿐 아니라 성평등과 관련한 리더십을 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예슬·배시은·강한들 기자 brightpear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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