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사건’을 보는 시선
날씨가 추워지고 입시 관련 보도로 온 세상이 떠들썩할 즈음이면 영화 ‘다음 소희’가 떠오른다. 영화는 졸업을 앞두고 자살한 현장실습생 소희와 해당 사건을 맡아 그의 자취를 추적하는 형사 유진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설명만 듣는다면 우리는 흔히 ‘사건’이 먼저 일어나고, 그로부터 역으로 과거의 진실에 다가가는 형식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다음 소희’의 첫 장면은 경찰차와 구급차로 분주한 사건현장이 아니다. 영화의 시작에서 관객은 연습실에서 혼자 춤을 추고 있는 학생을 본다. 그는 어려운 동작을 반복해서 연습하지만, 같은 구간에서 자꾸 넘어진다.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는 그가 바로 소희다.
이후로 영화는 소희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그는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졸업 전 대기업 하청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나가기로 한다. 인터넷 방송을 준비하는 친구도 있고, 이미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남자친구도 있다. 소희는 자신도 빨리 돈을 벌어 그럴 듯한 직장인이 되고 싶어 한다.
씩씩하게 첫 출근에 나서지만 소희는 콜센터 근무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업무는 학교에서 배운 전공과 관련이 없고, 첫 전화 상담에서 고객에게서 폭언까지 듣는다. 학교 선생님에게 불만을 토로해보지만 “사회생활이 원래 그렇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그래도 소희는 열심히 산다. 메뉴얼을 외우고 대응방법도 잘 숙지한다. 몇 건의 해지를 방어하고 추가 상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하지만 첫 월급이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 명시된 금액보다 턱없이 적게 들어온다. 팀장은 소희가 협약서와 함께 쓴 근로계약서를 들이밀며 ‘변동이 있을 수 있다’는 항목을 강조한다.
그래도 소희는 열심히 산다. 실적 압박과 죄책감에 함께 일하던 팀장이 극단적 선택을 해도, 새로 부임한 팀장의 “잊고 다시 시작하자”는 다독임을 믿으며 성과에 매달린다. 실적이 나면 회사의 인정도, 인센티브도 받을 수 있을 거라 자신을 달랜다. 하지만 다음 월급도 예상보다 턱없이 모자란다. ‘실습생들이 빨리 그만두니 인센티브는 몇 개월 뒤에 지급한다’는 새 팀장과 갈등을 겪던 소희는 결국 무급휴직 징계를 받는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던 그는 혼자 저수지를 걷다, 다시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한다. ‘경찰차와 구급차로 분주한 사건현장’은 그제야 등장한다. 마치 사건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뒤처리를 하기 위해서라는 듯. 그곳에서부터 관객은 형사 유진의 시선을 따라간다. 처음 예상했던 ‘역으로 진실에 다가가는 형식’이 뒤늦게 시작된다.
하지만 관객에게는 어떠한 의문도 남아 있지 않다. 우리는 소희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함께 봤다. 그렇기에 유진의 시선으로 옮겨 간 후반부에서 관객은 오히려 진실이 아닌 균열을 본다. 소희가 “불성실했다”는 회사 관계자의 말이, “애 성질이 별났다”는 교감의 말이, “문제가 많았던 애”라는 장학사의 말이 우리가 ‘봤던’ 그의 삶과 어긋난다.
유진은 그 틈으로 계속 나아간다. 그는 소희를 단순히 가정환경이나 학력, 성과지표나 취업률로 보기를 거부한다. 끈질기게 소희의 시선을 추적하고 복원하며, 영화의 끝에는 저수지 깊숙이 가라앉았던 소희의 휴대전화까지 건져 올린다. 다른 자료가 모두 지워진 휴대전화에는 동영상 하나만이 남아 있다.
유진은 영상을 본다. 영화의 시작에 나왔던, 연습실에서 혼자 춤을 추는 학생을 본다. 어려운 동작을 반복하는 그가 결국 무너질 거라는 걸 안다. 그런데 그곳에서, 관객은 처음으로 ‘몰랐던’ 소희를 본다. 소희는 넘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동작을 끝낸다. 아무도 모르는 그 성공에 상기된 얼굴로 뛸 듯이 기뻐하는 소희를 관객은 처음으로 본다.
연이은 실패 뒤에야 건져진 성공은 환하기보다는 애처로운 빛을 띤다. 그 실패가 소희 개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교육과 노동 전반의 실패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다음 소희’는 2017년 실제로 있었던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 자살사건을 재구성했다. 뒤늦은 성공과 실패 사이,‘사건’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가깝나. 영화가 던지는 차가운 질문이, 입시 관련 보도로 떠들썩한 거리에 나부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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