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신고’ 당한 이충상 인권위원, 사표 내고도 신고 직원 형사고발?
임기를 11개월 넘게 앞두고 돌연 사직 의사를 밝힌 이충상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상임위원을 두고 인권위 안팎에서 ‘사직 의사가 정말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이어지고 있다. 6일 사직서를 제출한 뒤에도 이 위원 스스로 후임자 국회 선출에 따라 4~6개월 재직할 수도 있다고 밝힌데다, 자신과 관계된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들을 여전히 강하게 비난하는 탓이다.
지난 3일~14일 한겨레가 이충상 상임위원과 나눈 문자메시지를 보면, 이충상 상임위원은 “전의를 상실해 인권위를 나간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6일 사직서를 제출한 배경을 밝힌 것이다. 이 말은 본인과 관련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언론 보도와 국회의 질타 등에 부담을 느껴 사의를 표명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인권위는 1년 간 이충상 위원과 관계된 4건의 직장 내 괴롭힘 사례를 조사해 지난 7월 감사결과 보고서를 완성했다. 다만 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징계를 포기하고 감사보고서를 비공개해 논란이 됐다.
하지만 이충상 상임위원은 사직서 제출 뒤에도 인권위 감사보고서에 담긴 사건들에 대해 ‘해당 직원들의 잘못’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나아가 직원에 대한 징계 건의와 형사고발의 여지를 두는 발언까지 이어갔다.
가령 지난 6일 이 상임위원은 “더 화나게 하지 말라. 직원 ㄱ씨를 형사고발할지 생각하고 있다”며 “그 형사고발은 틀림없이 징역형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문자메시지를 한겨레에 보냈다. ㄱ씨는 노란봉투법 관련 보고서 등을 작성하면서 이 위원으로부터 모욕적인 발언을 들었다고 한 당사자다. 심지어 “(감사보고서에 나오는)ㄱ씨 이외의 직원 관련해 제 반박을 듣지 않고 (기사를) 송고할 경우에도 ㄱ씨를 형사고발하겠다”고 했다. 보도와 관련해 언론사도 아닌, 특정 직원을 고발할 수 있다는 발언이다. ㄱ씨에 대해 이 위원은 지난달 31일 국정감사에서 공개적으로 “허위공문서를 작성했다”, “범죄자”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지난 11일 문자메시지에서 이 위원은 “ㄴ조사관과 관련해서 제가 직장 내 괴롭힘을 했다고 하는 턱도 없는 보도가 오늘 이후 더 이상만 없으면 ㄴ조사관에 대한 징계를 요청하지 않겠다”고 협상 조건을 제시하듯 직원 징계를 언급했다. ㄴ조사관은 인권위 감사에서 지난해 ‘윤석열차 진정사건’을 맡았다가, 이 위원에게 “강성 좌파”, “징계”등의 발언을 듣고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으로 적힌 직원이다. ㄴ조사관에 대한 보도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한 갑작스런 얘기라, 최근 인권위 감사 결과에 관한 한겨레 연속보도를 앞서 경계한 의미로 풀이된다.
이 위원은 이어 지난 14일 문자메시지에서도 공직자 재산등록을 하는 과정에서 담당 직원에게 신분상 불이익을 줄 듯한 문자를 보내 직원이 사직서를 낸 사건에 대한 반박을 이어갔다. 이 위원은 “존댓말을 쓰면서 맡은 일을 다음 날에 해달라고 문자 딱 한 번 보낸 것 때문에 그 직원이 사표를 냈다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고 다른 이유 때문에 사표를 냈다가 철회한 것일 것”이라고 했다. 해당 직원은 인권위에 갓 입사한 신입 직원으로 연수 기간 도중 이 위원에게 밤 9시47분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이충상 위원은 인권위 감사보고서를 부인하며 자신이 외려 ‘괴롭힘의 피해자’라는 주장도 이어갔다. 그는 14일 “잘못한 사람들과 송두환 위원장님이 적반하장으로 저에게 집단 괴롭힘을 했다”면서 “이렇게 저렇게 여러 가지로 제가 괴롭힘을 당하기 때문에 정말로 사직하고 싶다”고 했다. 반면 당장 또는 곧 사직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13일에는 “제 후임 후보자가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되더라도 한 번 부결되지, 두 번 부결될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아무리 오래 잡아도 제가 6개월 이상 인권위원으로 재직할 가능성은 아주 낮다”고 했다. 내년 5월까지 근무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위원이 임기 만료를 단 5개월 앞둔 시점이다.
이 위원은 감사보고서 보도와 관련해 한겨레에 본인의 무고함과 직원들의 잘못 또는 업무 실수를 증명하는 자료라며 여러 종류의 파일을 보낸 바 있다. 인권위에 낸 서면 진술서나 관련 논문 등이었다. 이런 자료들에 기초해 살펴보면, 이 위원의 주장 중 타당한 부분도 없지 않다. 문제는 본인의 언행 중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게 없었는지 돌아보려는 태도와 이를 고민하는 최소한의 인권 감수성이다. 이충상 위원은 ‘인권위원다움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그동안 인권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그 기준에 부합했다고 생각하는지’를 묻는 한겨레의 문자메시지에는 답하지 않았다. 이 위원은 차관급 고위공무원이 밤에 불이익을 암시하며 보낸 문자에 경력이 짧은 하급 직원이 어떤 불안한 감정을 느낄지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듯했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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