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강태완’ 이주청소년들 “꿈꿀 권리 빼앗지 마세요”

이문영 기자 2024. 11. 1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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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앞 기자회견서 고인 기리는 묵념
“한시적 구제대책 종료 말고 상시화” 요구
‘나 같은 후배들 위해’ 고인의 생전 응원
영상 속 사진은 끝내 영정 돼 엄마 품에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배경아동과 청소년들이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어 내년 3월31일 종료되는 ‘한시적 구제대책’의 상시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문영 기자

“일동 묵념.”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주배경아동과 청소년들이 머리를 숙였다.

“고 강태완님에게 자유롭게 삶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면 우리는 (오늘 죽음 대신) 그의 다채로웠을 삶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학교를 다니는 10대들이 수업 없는 토요일에 모여 마이크와 팻말을 들었다. 기자회견을 시작하기 전 그들은 지난 8일 전북 김제의 특장차 회사 에이치알이앤아이(HR E&I·옛 호룡)에서 중대산업재해로 사망한 강태완(몽골명 타이반·32)씨의 죽음을 기렸다.

이날 기자회견은 이주배경아동·청소년 당사자들이 법무부에 ‘조건부 구제대책’의 상시 제도화를 촉구하기 위해 열렸다. ‘국내 체류 기간 등의 요건을 충족할 경우 임시체류자격(G-1 비자)을 부여’하는 대책이 내년 3월31일 종료를 앞두고 있었다. 기자회견에 모인 20여명은 국적과 피부색은 달랐지만 모두 ‘네이티브 한국어’를 구사하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자랐다. 그들은 직접 사회를 보고 발언하며 ‘구제대책을 끝내지 말라’고 요구했다. ‘꿈꿀 권리’를 호소하는 캠페인 ‘렛 어스 드림!’(Let Us Dream!)도 기자회견과 함께 시작됐다.

사망 전 태완씨의 마지막 공적 활동은 이 캠페인 지지 영상 촬영이었다. 몽골로의 자진출국과 귀국을 거쳐 4년 만에 ‘지역특화형 비자’를 얻기까지 험난한 시간을 통과했던 태완씨가 후배들을 응원하며 영상 인터뷰에 응했다. 그의 체류자격 취득을 지원해온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이 촬영감독과 전국을 돌며 ‘구제대책’으로 비자를 얻은 청년들을 영상에 담았다. 태완씨의 영상은 지난달 19일 김제에서 마지막 순서로 촬영됐다.

영상에서 태완씨는 “막막했던” 예전과 “자유롭게 이동하고 여행 다닐 수 있는” 지금을 비교하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별것도 아닌 일들”이 “저는 너무 진짜 좋았다”고 했다. 산재로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회사에 대해서도 “특장차를 해외에 수출하는 회사고 저도 개발자로서 큰 기여를 하고 싶다”며 자부심과 포부를 밝혔다. 그의 영상은 사망 나흘 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장기체류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권 보장을 위한 토론회’에서도 상영됐다.

“(구제대책을 알고) 처음으로 희망이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의 이 말이 영상 후반 삽입된 스틸 사진 위에서 자막으로 펼쳐졌다. 사망 뒤 사진에서 따온 얼굴은 그의 영정이 됐다. 지난 14일 이 영정을 가슴에 안은 엄마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울부짖었다.

지난 8일 중대산업재해로 사망한 강태완씨가 자신과 같은 미등록 이주아동 후배들을 응원하며 숨지기 20일 전 촬영한 ‘구제대책 상시화 촉구’ 캠페인 영상. 이 장면에서 딴 얼굴 사진이 결국 그의 영정이 됐다. 이주와인권연구소 영상 갈무리

태완씨도 법무부 구제대책을 적용받았지만 과정은 고되기만 했다. ‘대책’은 2019년 12월 당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두 장기체류 미등록 청소년들(연재 2편 ‘유미와 나나의 경우’)이 낸 인권침해 진정에서 시작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0년 5월 법무부에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그즈음 태완씨는 법무부의 ‘불법체류 외국인 관리대책’에 따라 자진출국을 신고(2020년 6월)한 뒤 코로나 팬데믹으로 멈춘 비행기가 다시 뜨길 기다리고 있었다. 법무부는 인권위 권고 답변 시한(90일)을 한참 넘긴 2021년 4월(348일만)에야 ‘국내에서 출생해 15년 이상 살아온 경우에 한해 고등학교 졸업 뒤 G-1 비자를 부여한다’고 발표했다. 몽골에서 태어난 태완씨에겐 ‘구제될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다.

대책의 ‘높은 장벽’에 대한 지적들이 이어지자 법무부는 2022년 1월 외국에서 출생했더라도 6살 미만에 입국해 6년 이상 살아온 아동에게도 체류를 허용했다. 태완씨가 몽골로 떠나고 반년이나 지난 뒤였다. 법무부가 하라(‘자진출국해야 한국으로 돌아올 기회를 준다’)는 대로 했던 태완씨는 결국 겪지 않아도 될 고생을 치러야 했다.

지난 4년간 한겨레 연재(‘호준과 호이준 사이에서’)를 통해 전해진 그의 좌절과 도전은 같은 처지에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 후배들에겐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됐다. 그 후배들이 기자회견에서 “한계가 분명한 구제대책조차 2025년 3월31일 종료된다”며 대책 보완과 상시화를 요구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15년을 살아온 나이지리아 국적의 주시(중학교 2학년)양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그는 “이제 와서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가면 적응 못 한다”며 “한국에서 훌륭한 사람으로 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구제대책으로 체류자격을 받은 그와 달리 4살인 동생은 ‘6년 이상 거주’를 못 채워 미등록 상태로 있다. 대책이 종료되면 동생과 동생을 혼자 보낼 수 없는 가족은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다.

국내에 살고 있는 미등록 이주아동 2만여명(추산) 중 2021년 4월부터 지난 8월까지 법무부 대책으로 체류자격을 받은 아동은 962명에 불과했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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