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은 고려아연 이끌 적임자 누군지 알아…주주 끝까지 설득할 것"
적대적 M&A 상상도 못한 일
지난 두 달간 지옥에서 살았다
MBK 투자실적 보면 능력 의문
영풍은 70년간 기본시설 못갖춰
MBK에 사외이사 더 줄 수 있어
경영권 가져가는 건 못받아들여
고려아연이 지난달 발표한 2조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 계획은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벌이는 경영권 분쟁의 변곡점이 됐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MBK·영풍 연합과의 지분율 격차(4.5%포인트)를 뒤집을 반격 카드로 생각했지만 여론의 반발은 예상보다 거셌다. 고려아연은 지난 13일 유상증자를 철회했다. 17일 서울 청진동 고려아연 사옥에서 만난 최 회장은 “유상증자 전에도 이길 확률이 60% 정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쐐기를 박아야 한다는 생각에 무리하게 유상증자를 시도한 측면이 있다”며 “주주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을 진심으로 후회한다”고 말했다.
고려아연이 유상증자를 놓고 2주가량 우왕좌왕하는 사이 MBK·영풍 연합은 고려아연 지분 1.36%를 장내에서 매수해 지분율을 39.83%로 늘렸다. 그러자 시장에선 “MBK·영풍 연합이 확실한 승기를 잡았다”는 관전평이 나왔다. 하지만 최 회장은 “아직 반격 카드가 있다”며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반박했다. 최종 승부는 이르면 연말께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다음은 최 회장과의 일문일답.
▷MBK 연합이 승기를 잡은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우리 측도, MBK 연합 측도 아닌 ‘중간 지대’에 있는 기관과 외국인, 소액주주 지분율이 20%에 달한다. 주총 전까지 이들을 설득할 자신이 있다.”
▷MBK연합이 3%를 더 사면 끝 아닌가.
“MBK연합이 3% 더 매수하면 42.83%다. 주총에 참석하지 않는 주주가 많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슈가 있으면 참석률이 확 높아진다. 지난 3월 주총 때도 특정 안건 참여율은 90%를 넘었다. 다음 주총 참석률은 100%에 육박할 것이다.”
▷주주를 설득할 방안이 있나.
“최윤범이 MBK 연합보다 고려아연을 더 잘 이끌 것이라는 데는 모두가 동의한다고 생각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고려아연의 기업가치를 끌어올릴 경영자를 선택해달라고 설득하겠다.”
▷구체적인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
“우선 주주 이익을 높일 것이다. ‘소수주주 다수결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사람을 이사회에 넣고, 특정 안건에 대해 대주주나 특수관계인을 제외하고 이들이 결정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면 소외받는 소액주주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소수주주 다수결 제도는 특정 사안에 한해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배제하고 소수주주 동의를 받아 의결하는 방식을 말한다)
▷정관을 바꿔야 하는데.
“주총 의결 사안이다. MBK 연합이 취지에 공감해 이 사안에 동의한다면 곧바로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배당 확대 계획은.
“얼마 전 수익의 30%를 배당으로 돌려주겠다고 발표했다. 이 수치를 높일 것이다. 구체적인 수치는 곧 발표하겠다.”
▷유상증자가 부메랑이 됐는데.
“대단히 죄송하다. 유상증자 철회 기자회견을 연 것도 직접 사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주는 방향으로 회사를 이끌 것이다.”
▷유상증자를 어떻게 결정했나.
“모든 일에는 ‘똑똑한’ 방법이 있고 ‘현명한’ 방법이 있다. 이번에 ‘똑똑한’ 방법을 택했더니 주주를 설득할 수 없었다. 앞으로는 주주가 동의하는 ‘현명한’ 방법으로 의사결정을 하겠다.”
▷현대자동차는 우호 지분인가.
“세계적인 기업을 이끄는 분들이 ‘최윤범’에 투자했을 리 있겠는가. 고려아연의 미래를 밝게 보고 투자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이들이 한쪽 편에 서면 너무 주목받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의사 표현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우호지분이 아니란 의미인가.
“현대차와 LG화학, 한화는 고려아연이 그리는 2차전지 등 미래 사업의 청사진을 보고 투자한 것이다. 당연히 이들 사업을 최윤범과 MBK 연합 중 누가 더 잘할지 고민할 것이다. 답이 나오면 주총에서 그쪽에 표를 주지 않겠는가.”
▷영풍의 조업정지가 논란인데.
“영풍과 고려아연의 가장 큰 차이는 경영 능력이다. 영풍은 지난 70년간 오염 방지시설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해 2개월 조업정지 처분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영풍보다 훨씬 큰 고려아연을 이런 사람들이 경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MBK가 전문경영인을 뽑으면 되지 않나.
“MBK는 ‘경영의 신’이 아니다. 홈플러스, 네파 등 MBK가 인수한 뒤 실적이 나빠진 기업만 봐도 알 수 있다. 제련 기술과 영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고려아연을 MBK가 어떻게 이끌려는 건지 모르겠다.”
▷MBK를 이길 자신이 있나.
“다윗(고려아연)과 골리앗(MBK)의 싸움이다. 지난 두 달간 지옥에서 살았다. 그래도 한 달도 안 돼 2조원이 넘는 자금을 조달한 걸 보면 고려아연은 저력이 있는 회사다. 그때그때 최선의 방법을 찾아 대응할 거다.”
▷적대적 M&A를 예상하지 못했나.
“전혀 몰랐다. 사실 고려아연은 장씨 가문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장형진 영풍 고문의 지분을 높은 가격에 매수하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장씨 가문이 손해 보지 않고 고려아연에서 손을 떼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장 고문이나 MBK를 만날 계획은.
“최근에 만난 적은 없지만, 언제든 만나고 싶다. 서로 합의할 대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경영철학이나 회사 운영 방식도 너무 다르다. 이런 틈이 좁혀질 수 있을까.”
▷받아들일 만한 ‘휴전 조건’이 있나.
“MBK 연합에 사외이사 1~2명 추가 선임권을 주는 식으로 경영 참여 기회를 주고 싶다. 하지만 경영권을 송두리째 가져가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
▷최 회장의 경영능력은 입증된 게 있나.
“2014년 자회사이자 만년 적자 회사이던 호주 SMC 사장으로 파견돼 2018년 사상 최대 영업이익(7000만달러)을 냈다. 이 과정에서 태양광 시설을 적극 도입해 ㎾h당 10~30원의 전기료만 내고 사업을 운영하는 등 신사업도 키워냈다.”
▷2차전지 분야 전반이 어렵지 않나.
“5000억원을 투자한 ‘올인원 니켈 제련소’는 중국 이외 지역에 세운 최대 규모 니켈 공장이다. 연 4만2600t 생산할 계획인데, 현대차가 주요 공급처 중 하나다. MBK 연합이 반대하는 걸로 아는데, 이렇게 하면 성장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된다.”
▷자사주는 어떻게 활용할 건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최근 사내복지기금을 설립한 이유는.
“일각에선 사내복지기금에 회삿돈을 넣은 뒤 고려아연 주식을 사도록 할 것이라고 하는데, 그런 생각으로 만든 건 아니다. 직원 복지 증진을 위해 2년 넘게 기금 설립을 검토했다. 돈이 얼마 없기 때문에 우호 지분으로 활용해도 대세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지분을 더 살 계획이 있나.
“명확하게 얘기할 수는 없다. 다만 경영진 또는 특수관계인이 지분을 매입하면 5거래일 안에 공시해야 한다. 실시간으로 중계될 것으로 본다.”
▷신사업에 투자할 돈은 있나.
“자사주 매입 물량이 예상보다 적어서 금융회사 차입 여력이 남아 있다. 기존 자산을 매각하지 않아도 신사업에 투입할 돈은 충분하다.”
김우섭/오현우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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