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억원 썼는데 3년 만에 철거 결정, '세운상가군' 공중 보행로에 무슨 일이…

최아름 기자 2024. 11. 17.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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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세운상가군 공원화 작업의 그림자❶
세운상가군 잇는 공중 보행로
2021년 예산 들여 완성해
2023년 부분 철거 계획 세워져
예상치 1만명 못 채웠던 통행량
안전 논란 덧입혀져 철거 결정
세운상가군 공원화 작업의 일환
너무 쉽게 정책 바꿨다는 지적
1000억원 넘는 돈 사실상 매몰

서울시가 1100억원을 들여 만든 공중 보행로가 3년 만에 철거될 운명에 처했다. 삼풍상가와 PJ호텔을 잇는 250m의 보행로다. 9월 열린 주민 공청회에서는 "반드시 지금 철거해야 하느냐"는 의견이 나왔지만, 서울시는 강행할 공산이 크다. 이미 2023년에 이곳을 '공원화하겠다'는 밑그림을 세워놨기 때문이다. 결국 시민 혈세만 날린 셈인데, 만약 주체가 민간이었다면 가능했을까. 세운상가군 공원화 계획의 이면, 첫번째 편이다.

세운상가군은 2021년 공중 보행교가 완공됐다. 하지만 2025년에는 이중 일부가 철거될 수 있다.[사진 | 뉴시스]

2021년. 서울에 새로운 길이 생겼다. 종로 세운상가에서 충무로 진양상가까지 약 1㎞에 이르는 길이다. 지상 3층 높이의 공중 보행로가 완전히 이어진 결과였다. 하지만 이 길은 당장 내년에 허리가 끊길지 모른다. 무슨 말일까.

일단 이 길의 시작과 끝부터 꼼꼼하게 살펴보자(그림➊ 참조). 북쪽 세운상가에서 시작해 청계상가~대림상가를 지나 삼풍상가~PJ호텔~인현상가~진양상가(세운상가군)로 이어지는 이 공중 보행로에선 유달리 눈에 띄는 곳이 있다.

삼풍상가와 PJ호텔에만 있는 철골 구조의 보행로다. 다른 상가의 공중 보행로는 콘크리트로 만들어져 있다. 위에서 보면 마치 양날개처럼 건물에 달려 있다. 넓은 테라스 형식으로 만들어진 공간(데크)이어서 보수공사를 끝낸 2017년 이후 공중 보행로로 이용해왔다.

하지만 삼풍상가와 PJ호텔은 달랐다(그림➊ 참조). 두곳은 '양날개' 모양의 데크 자체가 없었다. 그래서 서울시는 2021년 1100억원을 투입해 삼풍상가~PJ호텔에 250m의 길(공중보행로)을 별도로 만들었다. 종묘부터 청계천을 지나 남산까지 갈 수 있는 보행자만을 위한 1㎞의 길은 이렇게 생겼다.

그런데 서울시가 내년 상반기에 '쳐내려는 구간'이 바로 삼풍상가와 PJ호텔 사이에 있는 길 250m 구간이다. 100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입해 연결한 이 길을 서울시는 왜 3년 만에 다시 없애려는 걸까.

서울시가 내세운 첫번째 이유는 보행량이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거다. 애초 서울시가 이 보행로를 만들 때 예상했던 보행 인원은 하루 평균 1만명이었다. 하지만 2023년 10월 기준 일평균 보행량은 예상치의 20% 수준인 2122명에 불과하다.

두번째 이유는 공중 보행로의 부정적인 경제 효과다. 서울시는 공중 보행로가 생긴 후 지상에 있는 상가의 운영이 어려워졌다고 판단했다.

안전성 논란도 있었다. 삼풍상가와 PJ호텔을 잇는 공중 보행로는 9개 철골 기둥이 세워진 구간이 4곳, 기둥이 1개씩 있는 구간이 4곳 있다. 2021년 개장 당시에 보행자들이 기둥에 부딪힐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지금은 철골 기둥에는 완충 스펀지를 붙여놨다. 그런데도 서울시는 "철골이어서 녹스는 등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렇다면 서울시의 주장에 반론은 없는 걸까. 아니다. 다른 의견을 내놓은 자영업자도 있다. 대림상가에 있는 한 카페 주인은 이렇게 말했다. "공중 보행로를 두고 말이 많은데 예전보다 행사나 이벤트가 줄어들어 유동인구가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럼 공중 보행로를 없앨 게 아니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서울시가 이런 의견을 수용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지난해 서울시는 이미 '세운상가군의 개발 밑그림'을 확정했다. 뼈대는 공원화다. 2035년까지 세운상가~진양상가 사이에 있는 건물을 철거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고 지상을 공원화한다. 이른바 2009년 있었던 초록띠공원 프로젝트다. 그 첫 시작이 내년에 공중 보행로를 철거하는 삼풍상가와 PJ호텔이다.

다만, 이 지점에선 의문이 생긴다. 지난 9월 서울시가 주최한 공청회에서 공중 보행로의 철거를 반대하는 주민은 다음과 같이 물었다. "어차피 상가를 부수고 공원화할 건데, 왜 공중 보행로를 먼저 해체하는가."

서울시는 "시의회 의견을 듣고 설계 작업을 마친 후 진행할 것"이라며 내년은 아니더라도 철거는 수순이란 입장을 밝혔다. 불과 3년 전에 1100억원을 들여 설치한 공중보행로는 이유를 막론하고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공중 보행로를 만든 시장(박원순)과 공중 보행로를 해체하려는 시장(오세훈)이 다르니, 세운상가군의 밑그림은 결국 '정치 성향'으로 바뀐 셈이다. 하지만 이게 민간의 일이었다면 단 3년 만에 '1000억원의 비용'을 매몰시킬 수 있었을까.

"세운상가군을 공원화하겠다"는 계획에 숨은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그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작은 공장들이 터전을 잃을 수밖에 없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이 이야기는 視리즈 세운상가군 공원화 계획의 이면 두번째 편에서 이어 나가보자.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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