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공공건축이 주는 교훈 [서울 말고]

한겨레 2024. 11. 17.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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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기자와 기획자로 일했던 터라 어떻게 도시재생 일을 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다룬 그의 저서들에서 "건축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을 조직하고 사회를 다루는 분야"라고 믿으며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했던 고집불통 낭만주의자의 한계와 성취에 대한 솔직한 기록을 만났다.

무주군 안성면 주민자치센터의 설계를 맡은 정기용 건축가는 주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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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등나무운동장. 무주군 문화관광 누리집 갈무리

김희주 | 양양군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주로 기자와 기획자로 일했던 터라 어떻게 도시재생 일을 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대학원에서 문화연구를 전공하며 도시재생을 공부한 것, 30대에 지방 소멸이 진행되는 현장에서 살게 된 것, 양양에서 취업을 고민할 때 도시재생지원센터 개소 소식을 알게 된 것, 이 모든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여기에 더해 공공건축에 관한 관심도 한몫했다.

2012년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를 보고 나서 주인공인 정기용 건축가에 관해 관심이 커져 그의 저서를 찾아 읽었다. 정기용 건축가는 1996년부터 2006년까지 만 10년 동안 무주에서 크고 작은 공공건축물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무주 공공건축 프로젝트를 다룬 그의 저서들에서 “건축은 궁극적으로 사람의 삶을 조직하고 사회를 다루는 분야”라고 믿으며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했던 고집불통 낭만주의자의 한계와 성취에 대한 솔직한 기록을 만났다.

책을 읽고 나니 그가 무주에서 실험하고 실천한 공공건축물을 직접 보고 싶었다. 반딧불이와 함께한다는 무주산골영화제 소식도 종종 접해서 언젠가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운전을 못 하는 사람에게 서울과 무주의 거리는 큰 부담이었고, 마음을 품은 지 10여년이 흐른 올해 겨우 다녀올 수 있었다. 이번 방문에서 등나무 운동장과 서창향토박물관(현재는 무주군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에 가보았다. 무주군 전역에 있는 더 많은 사례를 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으리으리한 외형으로 기를 죽이거나 어디선가 늘 본 듯한 모습에 마감은 어설픈 공공건축물과 확연히 다른 감흥을 주는 장소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즐거웠다.

무주 등나무운동장. 무주군 문화관광 누리집 갈무리

무주군 안성면 주민자치센터의 설계를 맡은 정기용 건축가는 주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물었다고 한다. 노인 주민들은 “면사무소는 뭐하러 짓는가? 목욕탕이나 지어주지”라고 답했다. 그들은 평생 노동으로 늙고 병든 몸을 편히 녹일 수 있는 공간이 가장 필요했다. 또한 그는 군수만 비와 햇볕을 피해 앉고 주민은 땡볕에 서 있는 게 당연하던 관행을 벗어나 등나무가 머리 위로 자연스레 그늘을 드리우는 공설운동장을 만들었다. 필연적으로 인공적이고 자연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건축의 한계를 늘 염두에 두었기에, 공공건축은 그럴듯한 외형이 아니라 주민이 가장 필요한 욕망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믿은 건축가의 실천이었다.

국가 보조금 기반의 도시재생 사업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건축물로 대표되는 토건 중심의 하드웨어 사업이다. 다양한 주민 역량 강화, 공동체 활성화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지만 전체 사업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소소하다. 도시재생 사업의 결과로 전국에 수많은 공공건축물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단조롭고 획일적인 기존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공공건축가가 의무 지정돼 참여하거나 설계 품질을 높이기 위한 각종 방안이 권고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권위적이거나 폐쇄적이거나 주변 환경과 지역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채 동떨어진 공공건축물이 전국 곳곳에 넘쳐난다.

도시재생 사업은 상향식의 주민 참여를 지향하지만 여전히 하드웨어 사업은 설계부터 시공까지 대부분 행정 주도로 이뤄진다. 실제 사용자인 주민의 의견을 경청해 함께 고민하고, 오랫동안 지역의 특성을 살피고, 건축물의 역할과 목표를 고민하고, 건축가의 철학을 담은 공공건축물이 튼튼하고 안전하게 만들어지는 것은 늘 요원한 이상이다. 모든 도시재생 건축물이 하이라인 파크나 빌바오 뮤지엄이 되길 바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주민과 지역성보다 관행과 편의가 앞서는 방식으로는 효용도 미학도 철학도 부족한 건물들만 계속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무주 프로젝트가 전무후무한 사례로만 남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 아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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