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뜨거워지는 지구, 누구 돈으로 지킬까...수만 명의 사람들이 한 도시에 모였다는데 [뉴스 쉽게보기]

임형준 기자(brojun@mk.co.kr) 2024. 11. 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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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개최된 제29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9)에서 묵타르 바바예프 의장이 개막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기후 위기에 대응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수만 명의 사람이 한곳으로 모여요. 각국 정상들과 약 200개 국가에서 파견된 대표단이 열띤 토론을 벌이죠. 이 행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UNFCCC Conference of the Parties)예요.

약자를 따서 보통 ‘COP’로 불리는 이 회의는 세계 각국이 모여 탄소 배출을 줄이기로 한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는지 점검하고, 앞으로 더 어떤 대응을 해야 할지 논의하는 자리예요. COP에서 도출한 합의 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건 COP21(제21차 총회)에서 채택된 파리협정이고요.

예전에는 주로 파리협정처럼 큰 흐름이나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많이 했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구체적인 합의들이 이뤄지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누가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얼마나 돈을 내놓을 것인지를 많이 논의하는 분위기예요. 코 앞에 다가온 기후 위기가 정말 심각한 건 알겠는데, 그걸 대체 누구 돈을 써서 막을 건지를 따져보고 있는 거예요.

‘피해 보상’ 다뤘던 COP27‧28
지금으로부터 2022년 COP27과 지난해 COP28에서도 중요한 주제는 기후 변화와 관련된 ‘돈’이었어요. 정확히는 피해 보상이었죠. 세계 각국 대표들은 기후 위기를 초래한 책임은 작은데도,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저개발 국가(개발도상국)들에 선진국들이 보상해야 한다는 내용의 합의를 COP27에서 해냈어요.

선진국은 더 빠른 산업화로 오염물질을 대량 배출해 가며 경제적 부를 누렸지만, 이에 따른 기후변화는 저개발 국가 또한 함께 겪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건데요. 기존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역사적 합의로 평가받았어요.

그리고 이 합의는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린 COP28을 거치며 구체화 됐어요. 저개발 국가에 대한 금전적 보상에 사용될 ‘기후 손실과 피해 기금’이 공식 출범했죠. 30여 년 전부터 논의됐지만, 국가 간 이해관계가 달라 합의가 정말 어려워 보였던 ‘기후 피해 보상’은 이렇게 첫발을 뗐어요. 영국 유력 언론인 BBC는 “가난한 나라들이 기후 피해 보상을 받기 위한 30년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평가했어요.

물론 지원 금액이 기후변화의 피해를 보상하기엔 턱없이 적고, 국가별로 구체적인 분담금을 정하지 않은 채 자율적인 기부 형식을 취한 건 한계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긴 했지만 말이죠.

이번에도 주요 주제는 ‘돈’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가 열리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시민들이 총회를 알리는 표지판 앞을 걸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올해 COP29는 지난 11일부터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열리고 있어요. 198개 당사국에서 4만여 명이 참석하는 이번 COP29에서도 제일 중요한 주제는 ‘돈’이에요. 지난 두 번의 회의에서 선진국들이 저개발 국가에 기후변화 피해 보상을 하기로 합의했다면, 이번엔 선진국이 저개발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 적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신규 기후 재원 조성 목표’를 세우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예요.

선진국의 재원 조달 방안과 규모 등을 결정한다는 뜻인데, 이건 굳이 따지자면 앞서 언급한 피해 보상보다는 훨씬 규모가 큰돈이에요. 피해 보상에 국한하지 않고, 전체적인 세계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해 쓸 예산을 다시 정하는 거니까요. 앞선 회의들에서 저개발 국가를 위해 선진국들이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으니, 선진국이 돈을 얼마나 많이 낼 지도 따져봐야 해요. COP에 참여하는 198개 국가의 눈치싸움이 치열할 수밖에 없겠죠.

이걸 올해 정하게 된 건 지난 2010년 COP16에서 정한 기후 재원 조달 합의가 만료됐기 때문이에요. 당시에는 ‘2020년까지 연간 1000억 달러(약 140조원)를 마련해서 쓴다’는 합의를 했어요. 이 합의는 2015년에 기한이 2025년까지로 연장됐고, 2025년이 되기 전에 기존 재원인 1000억 달러보다는 많은 금액을 다시 목표로 설정하기로 정했어요.

그리고 이제 이 금액을 정해야 할 시기가 된 거예요. ‘1000억 달러 이상으로 정하자’는 내용 빼고는 미리 정해둔 게 없어서 올해 COP29에서는 치열한 논의가 벌어질 전망이에요.

1000억 달러? 6조 달러?
우선 얼마나 많은 돈을 재원으로 조달해야 하는지를 정하는 신규 재원 조성 목표(NCQG·New Collective Quantified Goal)가 가장 큰 쟁점이에요. 1000억 달러 이상으로 정하자고 했으니 최소치는 1000억 달러인 건데, 대부분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어서 이 숫자는 큰 의미가 없어졌어요.

국가마다 재원 규모에 관한 입장은 정말 크게 갈려요. 이번 COP를 개최하는 의장국이면서 저개발 국가에 해당하는 아제르바이잔은 재원을 1조 달러(약 1400조원) 이상으로 정하고, 선진국들이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요구해요. 저개발 국가 사이에서는 많게는 6조 달러(약 8400조원)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까지 나온다고 해요. 국가들이 1조 달러를 모으고, 민간에서 5조 달러를 추가로 조달하자는 주장이죠.

11일(현지시각)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에서 의장을 맡은 무흐타르 바바예프 아제르바이잔 생태자연자원부 장관이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반면 유럽연합(EU) 중심의 선진국들은 이런 요구가 과도하다는 입장이에요. 이런 국가들은 돈을 의무적으로 내는 공여국을 늘려서 중국을 포함한 더 많은 나라들이 돈을 내도록 하자고 주장해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탄소를 배출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은 공여국이 아니거든요. 저개발 국가들도 자체적인 재원을 조달하고, 중국처럼 아직 의무적으로 돈을 내지 않는 국가들도 돈을 내게 해서 재원을 마련하자는 게 선진국들의 입장인 셈이죠. 민간 재원 또한 끌어와서 재원에 상당 부분 포함시키고 싶어 하고요.
트럼프 당선에 뒤숭숭한 COP29
사실 올해는 까다로운 핵심 쟁점뿐 아니라, 회의 분위기 자체를 뒤숭숭하게 만드는 일도 있어요. 바로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에요. 트럼프는 기후변화를 ‘미국의 경쟁력을 약화하기 위한 중국의 사기극’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기후 대응에 관심이 없어요. 대통령 첫 임기 때인 2019년엔 파리협정에서 탈퇴해 버리기도 했죠.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은 파리협정에서 다시 탈퇴할 것으로 예상돼요. 미국 유력 언론인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직후 시행하려고 준비 중인 ‘기후‧에너지 행정명령’에 파리협정 재탈퇴가 포함돼 있다고 보도했어요.

이번 COP29는 조 바이든 정부에서 참여하지만, 이번에 미국이 무엇을 합의하든 조만간 아예 빠져버릴 가능성이 커요. 기후 대응 재원의 상당 부분을 내는 미국이 갑자기 약속을 지키지 않고 탈퇴해 버리면, COP29에서 합의하고 추진하던 사안들은 혼란을 겪게 되겠죠. 이런 사실을 회원국들도 알고 있다 보니 논의에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거예요.

물론 미국 대통령 한 명이 오래 이어온 흐름을 바꾸진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존재하지만,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세계의 공동 대응이 곧 어려운 시기를 맞게 되지 않을지 걱정되는 건 사실이에요. 과연 우리는 기후 위기 앞에 한데 뭉칠 수 있을까요? 너무나 명확해진 위기를 두고 시간을 더 낭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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