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하며 이렇게 힘든게 얼마만이었는지..” 6점차 뒤집은 전율의 역전승, 뒤엔 ‘주장’의 책임감 있었다
[타이베이(대만)=뉴스엔 안형준 기자]
6점차를 뒤집은 전율의 역전승. 그 뒤에는 주장의 책임감이 있었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은 11월 17일 대만 타이베이의 티엔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4 WBSC 프리미어12' B조 조별라운드 4차전 도미니카 공화국과 경기에서 승리했다.
대표팀은 이날 5회까지 마운드가 6실점했고 타선이 1안타로 묶이며 0-6까지 끌려갔다. 하지만 6회 4점, 8회 5점을 뽑아내는 두 차례 빅이닝을 만들어 9-6 대역전승을 거뒀다. 8회 역전 결승타를 터뜨린 박성한은 "전율이 일었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엄청난 역전승. 그 뒤에는 주장의 책임감이 있었다. 이날 6번 1루수로 선발출전한 주장 송성문은 두 차례 결정적인 안타를 터뜨리며 팀 타선에 힘을 보탰다.
대표팀은 도미니카 선발 프랭클린 킬로메에게 꽁꽁 묶였다. 5회 2사까지 단 한 명의 타자도 1루를 밟지 못했다. '퍼펙트 피칭'이 이어졌다. 그사이 마운드는 6실점이나 했다. 이대로 안타 하나 쳐보지 못하고 완패를 하나 싶은 흐름이었다.
어떻게든 도미니카의 기세에 틈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 여기에서 주장이 나섰다. 5회말 2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송성문은 킬로메를 상대로 이날 경기 팀의 첫 출루를 만드는 안타를 터뜨렸다. 비록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도미니카의 '완벽 흐름'에 균열을 만든 귀중한 안타였다. 퍼펙트 게임이 깨진 킬로메는 6회 마운드에 다시 오르지 않았다. 대역전승의 발판은 그렇게 마련됐다.
타선이 6회말 4점을 추격했지만 여전히 리드는 도미니카에게 있었다. 도미니카는 8회 자신들이 가진 최고의 카드를 투입했다. 메이저리그 7년 경력의 '현역 빅리거' 우완 디에고 카스티요였다. 카스티요는 빅리그에서 주전 마무리 투수로도 활약한 경험이 있는 필승 불펜투수다. 대표팀은 8회 선두타자 나승엽이 안타로 출루했지만 문보경이 땅볼에 그쳤다. 박동원의 안타로 1,3루가 됐지만 득점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했다.
여기에서 다시 주장이 나섰다. 송성문은 1사 1,3루 찬스에서 카스티요를 상대로 깔끔한 적시타를 만들어냈다. 5득점 빅이닝의 발판이 되는 결정적인 적시타였다. 타격감이 좋지 않아 4번 자리에서 물러난 7번타자 윤동희가 삼진으로 물러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송성문의 적시타가 없었다면 5득점 빅이닝도 역전도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사실 이날 경기 전까지 좀처럼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 송성문이다. 올해 KBO리그에서 괄목할 성장을 보이며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단 송성문은 류중일 감독으로부터 주장의 역할까지 부여받았다. 첫 경기 대만전에는 2번타자로 선발출전했다. 하지만 대만전에서 부진하며 2차전 쿠바전부터는 신민재에게 자리를 내주고 벤치로 물러났다. 도미니카전에서도 자신의 자리가 아닌 1루수로 문보경의 휴식을 위해 선발출전한 것이었다.
송성문은 "한국에서는 사실 주장으로서의 뭔가를 느끼지 못했다. 한국에서 훈련할 때, 여기서도 대회 시작 전까지만 해도 형들이 너무 잘 도와주고 후배들도 잘 다가오고 해서 그런 것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며 "하지만 대만에 와서 좋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도 무겁고 책임감도 많이 느끼고 있었다"고 말했다. 주장으로서 그라운드에서 앞장서 선수들을 이끌기는 커녕 그라운드에 서는 시간도 짧아진 상황에 힘이 들 수 밖에 없었다.
올시즌 전까지는 돋보이는 선수가 아니었고 코로나19 무관중 시기에는 곤욕을 치른 경험도 있는 송성문이다. 굴곡진 야구인생을 걸어온 송성문이지만 이번 대회는 특히 힘이 들었다. 송성문은 "대회가 시작하고 나서 '야구하면서 이렇게 힘들었던 것이 얼마만이지'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첫 경기도 지고 개인적으로도 실망스러운 모습이 계속 나오니 정말 힘들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래도 동료들이 있었다. 송성문은 "주위에서 팀원들이 즐겁게 잘 다독여주고 '할 수 있다'고 믿음을 보내주고 했다. 내가 잘한 것보다는 옆에서 많이 도와준 덕분이다. 너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반전의 계기는 한일전이었다. 송성문은 전날 열린 한일전에서 대타로 출전했다. 8회초 이주형 대신 대타로 투입돼 뜬공에 그쳤다. 하지만 그 스윙이 반전을 만들었다. 송성문은 "어제(한일전) 대타로 나서 뜬공을 쳤는데 그때 확 느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 나가게 되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다"고 돌아봤다. 그리고 실제로 두 차례나 공격의 '맥'을 짚는 결정적인 안타를 때려냈다. 송성문은 "대표팀 공식 경기에서 처음으로 안타를 쳤다. 기분이 너무 좋다"고 활짝 웃었다.
카스티요는 쉬운 투수가 아니었다. 시속 150km를 가볍게 넘기는 빠르고 강한 공을 던지고 변화구도 좋다. 카스티요를 공략한 송성문은 "미국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다. 하지만 전력분석이 많이 된 선수였다"며 "치기 어려운 투수다 이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를 던지는 투수인 만큼 그저 과감하게 치고 '무조건 쳐야겠다'는 생각만 했다. 어떻게든 점수를 내서 아직 슈퍼라운드까진 힘든 길이지만 기적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간절함이 결국 메이저리그 정상급 불펜투수를 무너뜨린 원동력이 됐다.
5-6 한 점차까지 추격하는 적시타를 날렸지만 후속타자 윤동희가 삼진으로 물러나 끝내 '졌지만 잘 싸웠다'로 경기를 마무리할 수도 있는 위기가 됐다. 하지만 박성한이 경기를 뒤집는 2타점 3루타를 터뜨렸고 이후 최원준과 홍창기까지 적시타를 더해 빅이닝으로 역전을 만들었다. 박성한은 풀카운트 승부 끝에 우중간을 가르는 3루타를 터뜨렸다. 박성한 타석에서 2루를 훔친 뒤 득점까지 올린 송성문은 "(박성한의)타구를 보는데 정말 너무 기쁘고 짜릿했다. 야구하면서 가장 소름돋고 짜릿한 경기가 오늘로 새로 경신이 된 것 같다"고 웃었다.
힘이 된 것은 동료들 뿐만이 아니었다. 이날 수많은 한국 팬들이 티엔무 구장을 찾아 선수들을 응원했다. 응원단 앰프도 없었지만 팬들은 '육성'으로 목이 터져라 선수들에게 응원을 보냈다. 0-6으로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선수들 만큼이나 팬들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8회 역전 득점을 올리며 관중석을 바라본 송성문은 "우리가 1승 2패를 기록 중이었고 개인적으로도 아쉬운 성적이었는데 팬들의 모습을 보니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과 행복함, 안도감이 들었다. 아직은 희망이 조금 남아있다는 느낌이었다. 너무 기뻤다"며 "어제 한일전도 그렇고 이렇게 먼 곳까지 정말 많은 팬들이 찾아오셨다. 너무 감사하면서도 우리도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경기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 초반에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지만 선수들도 팬들을 보면서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은 것이 오늘 승리의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대만전 패배 이후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해야하는 상황이 된 대표팀. 송성문은 "사실 오늘 경기 전에 쿠바가 갑자기 호주를 이기면서 우리한테는 아쉬운 상황이 됐다"면서도 "모든 경우의 수는 일단 우리가 잘해서 남은 경기를 이겨야 성립이 된다. 그래서 경기에 다들 집중했다. 초반에 힘든 경기였지만 마지막에 웃을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하다"고 활짝 웃었다.
전율이 가득했던 승리에도 대표팀은 여전히 벼랑 끝에 있다. 대표팀은 17일 경기가 없는 휴식일이지만 이날 열리는 일본-쿠바전, 대만-호주전 결과에 따라 탈락이 결정될 수 있다. 일본이 쿠바를, 대만이 호주를 각각 꺾으면 대표팀은 탈락이 확정된다. 18일 호주전이 '마지막 희망'이 될지, 탈락 후 치르는 '추가 경기'가 될지는 이날 다른 팀들의 경기 결과에 달려있다.
송성문은 "일단 쿠바와 호주를 열심히 응원하겠다"고 웃었다. 사실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송성문은 "우리는 경기가 없다. 응원을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다"며 "(다른 팀)경기 결과에 따라 탈락이 될 수도 있고 희망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만약 탈락이 되더라도 우리는 태극기를 달고 경기에 임하는 것인 만큼 호주전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팬들이 실망하지 않는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사진=송성문)
뉴스엔 안형준 mark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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