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생들의 집단행동이 남성을 혐오해서 벌인 짓이라고요?"

박상혁 기자 2024. 11. 1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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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동덕여대 총대위 "여대 여전히 필요해…학교 소통 응할 때까지 싸우겠다"

'폭력행위가 도를 지나쳤다', '남성혐오자들이 권력을 유지하려고 시대에 뒤떨어진 여대를 지키려 한다', '시위의 최대 피해자는 미화노동자들', '이제 여대 출신은 입사지원서 거를 것'.

학교 본부의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반발한 동덕여대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폭력시위 또는 남성혐오에 기반한 행위로 바라보는 여론이 일부 형성되고 있다. 모 국회의원은 학생의 집단행동을 "비문명"이라 폄훼하며 혐오 여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러한 여론은 온·오프라인을 통한 괴롭힘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성혐오 콘텐츠로 수익을 벌어온 일부 남성 유튜버들이 생방송을 켠 채 학교 침입을 시도했으며, 반여성주의 단체는 한 달에 걸쳐 동덕여대에 찾아가 학생들을 비난하는 집회를 열기로 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 작용을 일컫는 이른바 '백래시'가 가시화된 것이다. (☞관련기사: [단독] 신남성연대, "신상 털겠다" 동덕여대에 4주 집회 신고했다)

동덕여대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이끄는 총력대응위원회(총대위)는 지난 14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교에서 <프레시안>과 만나 이같은 백래시 상황과 관련해 "집단행동을 폭력행위로 보거나 '남성을 혐오해서 벌인 짓'이라는 등의 외부 공격으로 많은 학우들이 크게 힘들어하고 있다. 신변에 위협을 겪을까 걱정한다"고 밝혔다.

학생들은 이같은 백래시에 시위 도중 황급히 건물 안으로 피신하거나 운동 방식을 스스로 검열하는 등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도, "여대는 여성들에게 여전히 필요한 공간"이라며 여대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겠다고 했다.

총대위는 집단행동의 배경에 대해 "학생들은 여대에서 스스로 한계를 깨부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경험을 한다. 이처럼 물리적·정서적으로 소중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을 일방적으로 없애려는 시도에는 여성들을 성차별적 구조 안에 가두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받아들여 크게 반발하는 것"이라며 "학교가 학생들의 소통에 나설 때까지 싸움을 계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총대위와의 일문일답이다. 요청에 따라 개별 위원들의 이름은 총대위로 통일했다.

▲14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본관 앞에 학생들이 항의의 의미로 학과 점퍼(과잠)을 던져뒀다. ⓒ프레시안(박상혁)

"폭력사태? 학교의 불통 행정이야말로 폭력"

프레시안 : 집단행동을 시작한 배경과 총대위 출범 이유를 설명해 달라.

총대위 : 이달 초 학생 커뮤니티를 통해 학교 본부가 남녀공학 전환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접한 학우들이 지난 8일부터 학교 곳곳에 현재 상황을 알리는 대자보를 부착하고 래커를 칠하는 등 자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주말이 지난 11일엔 총학생회 요청으로 마련된 회의 테이블에 처장단이 일방적으로 불참했다. 처장단을 만나기 위해 학우들이 찾아간 본관은 모든 문이 잠겨 있었다. 이 와중에 총장실에 교직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학생들이 모여 "복도로 나와 대화에 임해달라"고 요구했으며, 총장 소유의 차량이 학교 밖을 나갔다는 이야기가 돌자 뒷문 개방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사복 경찰을 포함한 다수의 경찰들이 찾아와 "여러분들 선생님 되시고 나중에 아기도 낳고 육아도 하실 분들이…"라며 폭력행위 중단 및 해산을 요구했고, 뒷문을 열려는 시도를 멈춘 뒤에는 "감금한 직원들을 내보내지 않으면 우리가 유리창을 깨부수고 들어가겠다"고 압박했다. 대화를 요구한 학우들에게 직원들을 감금했다고 말하니 황당했으나, 최근 부경대 등에서 학생들을 연행한 사건 등에 두려움을 느꼈으며 학교와의 싸움을 계속하기 위해 경찰의 지시를 따랐다.

이후로도 학우들은 누구의 지시 없이 자발적으로 본관을 점거했으며, 학과 점퍼(과잠)을 바닥에 던져두거나 1000명가량의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이는 등 집단행동을 이어갔다. 모두가 분노한 상태에서 여러 사건이 동시에 발생하다 보니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나 특정 단체에 대한 억측이 돌기도 했는데, 이대로는 학우들의 의견이 흩어져 화력이 분산될 수 있다는 판단에 학생회 임원들을 중심으로 총력대응위원회를 결성하고 현재까지 집단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프레시안 : 학교본부는 대학이 처한 위협을 극복할 방안 중 하나로 남녀공학 전환 안건을 검토했으며, 정식 안건으로 상정되지 않았음에도 폭력사태가 발생했다는 입장이다.

총대위 : 학생들이 집단행동을 벌이기 전까지 너무 많은 문제들이 쌓여왔다. 수년간 거듭돼온 학교의 불통 행정이야말로 폭력이다. 우리학교의 교비 적립금은 지난해 기준 전국 9위로 재정이 위기인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도 학교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전임교원 확충은커녕 학과 신설만 해왔으며, 낙후된 시설도 개선하지 않는 등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지 않았다.

경쟁력을 높인다는 명분으로 공학 전환을 추진하기 전에 교수진과 시설을 정비하고 공과대학을 만들어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등의 노력을 다하라는 게 학우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학교는 항상 핑계를 대며 학우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으면서 수개월 전부터는 공학 전환을 논의하기까지 했다.

학교는 공학 전환 추진이 정식 안건이 아니라면서도 앞으로 이를 논의하지 말라는 학생들의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고 있다. 학생들을 얼마나 우습게 생각하길래 이런 행보를 보이는지 모르겠다. 여대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과 학교의 비민주적 태도로 인한 분노가 더해진 결과가 지금이다.

▲14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 입구에 남녀공학 전환 추진에 반대하는 대자보가 붙어있다. ⓒ프레시안(박상혁)

"여대 왜 필요하냐고? 집게손 논란, 딥페이크 사태 보라"

프레시안 : 학생들이 남녀공학 전환 논의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총대위 : 성차별이 심각한 한국 사회에서 여대는 여성들에게 여전히 필요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위직 대부분은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이며 국민을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만 해도 80%가 남성이다. 여성을 향한 공격도 심각하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여성들을 공격하는 '집게손 억지 논란', 머리가 짧다는 이유만으로 일면식도 없는 여성을 폭행한 '진주 편의점 폭행', 초·중·고·대 구분 없이 전국으로 퍼진 '딥페이크 성범죄 사태'가 대표적 사례다.

유년 시절 이런 모습을 보고 자란 여성들은 성차별에 익숙해지기 쉽다. 같은 업무도 남성 종사자를 더 신뢰하거나, 여성인 나는 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며 한계를 정하는 식이다. 하지만 여대에서는 성별에 기반한 사회적 권력의 차이 없이 사람 대 사람으로 상호작용면서 여성을 온전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학생들은 여대에서 스스로 한계를 깨부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경험을 한다. 이처럼 물리적·정서적으로 소중한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을 일방적으로 없애려는 시도에는 여성들을 성차별적 구조 안에 가두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받아들여 크게 반발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남성 유튜버들이 학교에 침입을 시도하거나 집단행동을 비난하는 등 학생들을 향한 공격이 쏟아지고 있다.

총대위 : 12일 밤까지 수백 명의 학우들이 운동장에 모여 시위를 진행하던 중 남성 유튜버가 생방송을 켠 채 학교에 온다는 소식을 접했다. 우리는 진지한 태도로 학교에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를 콘텐츠 거리로 삼는 모습에 화가 났고, 방송을 통해 학우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전부 노출돼 신변에 위협을 겪을까 걱정됐다. 결국 학우들의 안전을 위해 건물 안으로 피신하면서 이날 심야시위를 긴급히 종료했는데, 다음날에도 다른 남성 유튜버가 생방송을 켠 채 학내를 돌아다니는 등 외부인의 침입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또한 많은 학우들이 집단행동을 폭력행위로 보거나 남성을 혐오해서 벌인 짓이라는 등의 외부 공격으로 크게 힘들어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맞아 소음이 생기지 않도록 책을 읽고 공부하는 침묵시위를 기획했으나, 책 내용 하나하나에 또다시 악의적 여론이 형성될까 두렵다는 의견에 시위 방법을 바꾸기도 했다. 여대라는 공간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하며 비난보다 지지 여론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거센 비난으로 우리의 행동이 움츠러들까 걱정이다.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캠퍼스 운동장 바닥에 졸업생들이 항의의 의미로 붙인 졸업장.ⓒ프레시안(박상혁)

"우리가 경비·청소노동자분들을 괴롭힌다고? 그분들이 우리 응원해주셔"

프레시안 : 학생들의 집단행동을 지지하는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총대위 : 공학 전환 반대 서명운동에 개인 자격으로 서명한 사람만 14일 기준 36만여 명이다. 이는 여느 여성 의제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수치다. 전국의 여대학생회, 여성주의 단체에서도 연서명을 통해 연대해주고 있다. 우리학교 졸업생 모임은 따로 모금운동을 진행해 트럭 시위에 나섰으며 재학생들에게 현수막, 방석 등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금전적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는 연락을 줬다. 많은 여성들이 남녀공학 전환 문제를 모두의 일이라고 생각해 우리를 돕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외부의 비난을 이겨내고 더욱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집단행동의 최대 피해자는 경비·청소노동자들이며 학생들이 그들을 괴롭힌 셈이라는 비난도 있었는데, 실제 노동자들은 어떤 의견을 보내고 있나.

총대위 : 경비·청소노동자분들이 우릴 굉장히 응원해주고 계신다. 시위하며 마주할 때마다 정말 친절하게 응대해주시고 "파이팅해라",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하라" 등 응원의 말을 건네주셔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프레시안 : 총대위의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총대위 : 학교 본부에 △남녀공학 전환 논의 철폐, △남자 외국인 유학생·학부생에 대한 협의, △총장 직선제 등에 대한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다. 남녀공학 전환 논의가 아직 정식 안건이 아니라면, 앞으로 전환 논의를 하지 않겠다는 확답만 주면 된다. 이미 현재 남자 외국인 유학생 6명이 입학했는데, 앞으로는 유학생·대학생 등에서도 남학생을 받기 전 학생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건과 같이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학사구조 개편을 추진하는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총장을 우리 손으로 뽑고 싶다.

▲14일 서울 성북구 동덕여대 건물에 학생들이 남녀공학 전환 추진을 반대하는 메시지를 담은 종이가 부착돼있다. ⓒ프레시안(박상혁)

[박상혁 기자(mijeong@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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