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판사' PD "솜방망이 처벌? 사각지대 피해자들 있어"[EN:터뷰]
'지옥에서 온 판사'는 '사이다 복수극'으로 대표되는 SBS 금토드라마의 계보를 확실히 이었다. 여기에 판타지부터 로맨스까지 다양한 장르적 재미를 잘 버무려 시청자들을 매료시켰다. 그 결과 '지옥에서 온 판사'는 최고 시청률 13.6%(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를 돌파하면서 흥행했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여자 안티히어로 강빛나를 전면에 내세웠다. 말 그대로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 판사' 강빛나는 현실 세계에서 악마도 울고 갈 '판결'을 하면서 뒤로는 범죄자가 저지른 범죄를 똑같이 되갚아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함무라비 법전과도 같은 강빛나의 '악마표 재판'은 통쾌한 판타지 액션과 '즉결 처분'으로 대표된다.
이 같은 강빛나의 처단 장면은 '악마'란 지점에서는 상당히 판타지스럽게 전개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강도가 약한 것은 아니다. 이를 관전 포인트로 꼽는 시청자들도 있는 반면에 지나치게 잔혹한 연출이라는 지적도 나와 '호불호'가 갈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지옥에서 온 판사'는 또 한 번 답답한 현실의 새로운 탈출구가 됐다. '사이다 복수극'이 더는 새롭지 않은 시대, '지옥에서 온 판사'는 어떻게 시청자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었을까. 다음은 박진표 PD와의 일문일답.
Q '지옥에서 온 판사'('지옥 판사')가 시청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A 시청자들의 많은 응원과 깊은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막바지 후반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방송을 시작해서 마지막까지 정말 큰 힘이 됐죠. 많이 든든했습니다. 사실 일부러 흥행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지옥 판사'의 주요 배경과 설정인 지옥과 악마의 죄인 처단이라는 세계관, 판타지가 시청자들이 보시기에 약간은 생경하실 수 있고 한편으론 약간의 항마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판사'에 보내주신 시청자들의 열혈 응원과 사랑에 전 스태프와 배우들이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무사히 종영할 수 있었어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Q '지옥에서 온 판사' 연출에 있어 주안점을 둔 부분은
A 제가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아무래도 작가님의 훌륭한 기획의도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였어요. 사실 제가 '지판사'의 연출을 맡게 된 결정적 계기가 기획의도의 몇 줄이었거든요.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에게 교화될 기회를 주기 전에 자신에게 남아있었던 삶의 기회를 빼앗긴 피해자와 유족들에 대한 위로가 먼저이길 바란다' 그리고 또 한 줄 '당신이 불편하길 바란다' 였죠. 이 기획의도를 끝까지 잊지 않고 지켜내야 '지판사'가 완성될 수 있다 믿었어요. 모든 답은 대본 안에 있으니 대본을 보고 또 보면서 기본에 충실했고요.
Q 그렇지만 판타지, 범죄, 로맨스 등 여러 장르가 혼합되면서 연출에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A 드라마 내적으로는 뉴스에 등장했거나 등장할 법한 사건들. 살인을 저지른 자와 목숨을 빼앗긴 피해자, 처절하게 살아남은 유족들의 아픔, 그리고 재판이 끝나고 시작되는 또 다른 재판과 강력한 처단, 그리고 지옥의 세계관. 인간의 몸에 들어간 악마. 사건을 뒤쫓는 형사. 그들의 금지된 사랑. 점점 인간화되는 악마와 흑화되어 가는 형사. 그들의 관계성과 여러 가지 상황에서 나오는 인물들의 코미디. 거기에 악마와 악마의 대결까지.
이 각각 장르의 특성을 살리면서 그들의 톤을 마치 백화점의 멋지게 포장된 종합 선물세트처럼 어느 하나 튀지 않고 물 흐르듯 한 톤으로 만들어 내보자는 게 처음 기획단계부터 마지막 방송이 나갈 때까지 제 숙제였고 고민이었고 끝까지 노력했죠. 외적으로는 고정 주요 등장인물들, 에피소드 인물(특별출연) 포함 40여 명이 넘는 배우들과의 소통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발전시켜 나가는 작업이 가장 중요했고요.
Q 지옥이나 악마의 모습을 표현한 CG도 인상적이었다. 자연스러운 표현을 위해 노력한 점이 있다면
A 아무도 가보지 않은 지옥의 비주얼과 세계관을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VFX(시각특수효과)와 특수분장, 미술, 소품, 의상, 분장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지옥의 비주얼은 이미 기존의 작품들에서 소비된 느낌은 답습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주 조금이라도요. 그래서 입구에서부터 로댕의 '지옥의 문'을 참조해 문을 만들어서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문구를 넣었죠.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여기에 바엘(신성록 분)의 목소리를 입혔고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신비롭게 맑은 하늘에 치명적으로 아름다운 빨간 꽃밭이 펼쳐져요. 언제나 꽃길을 걷고 싶은, 인간들 마음속에 품고 있던 욕망을 표현했죠. 그 꽃을 만지는 순간 꽃들이 눈을 뜨고 모든 게 잿더미로 변하면서 땅 밑으로 떨어져요. 지옥의 메인빌딩은 법원인데 현실과 똑같이 존재한다는 느낌으로 구상했어요. 지옥의 사자들이 지키고 있고 현실의 법정과 똑같은 크기의 법정이 존재해요. 지옥의 악마들은 현실세계와 비슷하게 계급이 존재하죠. 그곳에서 지옥 법으로 살인자들을 판결하는 거죠.
Q 주인공 악마 빛나의 재판과 처단 그리고 통쾌한 액션 장면에도 많은 공을 들인 게 보였다
A 현실에서 재판이 끝나고 열리는 악마(빛나)의 재판은 "이제부터 진짜 재판을 시작할게"로 시작해서 "바이알 인페르노"(지옥으로!) 주문을 외우면 빛나의 눈이 보라색으로 변화하면서 단도가 생성되고 처단이 끝나고 죄인(살인자)의 숨이 끊어지면 이마에 게헨나 인장을 찍고 비로소 지옥의 문이 주변에서 생성됩니다. 그리고 영혼이 빨려 들어갑니다. 바로 지옥으로 떨어지는 거죠. 문 정면에는 죄인(살인자)의 얼굴이 차례로 박힙니다. 문이 닫히면 재판 끝!
이처럼 처단의 모든 과정이 VFX와 조명효과, 특수효과, 특수분장, 특수소품, 무술, 드론 등이 어우러져 밤에 이루어집니다. 드라마의 짝수 회차에서 보이는 7번의 처단 시퀀스는 모든 스태프, 배우들이 초 긴장 상태에서 집중해 촬영됐죠. 액션은 윤성민·권태호 감독의 책임하에 소품팀이 전력으로 만들어낸 각종 칼, 창, 활, 총, 망치, 도끼 등을 활용하여 표정과 숨소리, 호흡이 살아있는 액션이라는 콘셉트 하에 리얼하게 연출됐어요. 스태프들이 정말 고생이 많았어요. 특히 빛나의 액션은 살아있는 표정에서 시작해서 힘 있는 타격감 위주로 표현했어요.
Q 그렇다면 총 연출자의 입장에서 본 '지옥에서 온 판사'의 성공 요인은
A 다섯 가지로 꼽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의도를 가진 좋은 대본, 최고의 제작사와 스태프들, 배우 박신혜, 모든 배우들의 열연, 음악(전창엽 감독의 '게헨나'와 선미 OST). 그중, 박신혜는 앞서 말씀드린 모든 것을 어깨에 지고 돌격한 뒤 맨 앞에서 시청자들과 만나는 우리의 히어로였어요. 맑고 투명한 큰 눈에서 안광이 발하는 중력 같은 배우예요. 정말 흔치 않죠. 시청자들을 포함해 우리 모두가 그에게 빨려 들어가서 그의 세계에서 아주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되죠. 메인 카피로 쓰인 "나의 세계로 온 걸 환영해"는 박신혜 배우가 손수 만든 대사예요. 이 외에도 많지만요. 다들 이번에 경험하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연출인 저조차도 최후방 모니터에서 디렉팅을 잊은 채 그의 연기를 종종 구경하게 되더군요. 부끄럽지만 사실입니다. 박신혜는 강빛나였고 유스티티아였지만 저에게는 잔 다르크였습니다. 출연 배우들 중 단 한 분이라도 빠졌으면 삐걱거렸을 거라는 확신이 들 만큼 다들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열연해 주셨고, 시청자들에 앞서 최전선에서 그들의 연기를 본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특권이자 선물이었고 행운이었습니다.
Q 이런 장르가 식상하다는 반응이 생길 정도로 사적 복수 소재의 '사이다 권선징악물'이 주류가 된 요즘이다. '지옥에서 온 판사'가 이 같은 류의 작품들과 어떤 차별점이 있었을까
A 다른 작품들과의 가장 큰 차별점은 지옥과 지옥 세계관, 매력적인 악마들이라는 판타지 설정과 박신혜 배우가 연기한 강빛나라는 캐릭터의 매력에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강빛나라는 캐릭터는 기존 사이다물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안티히어로입니다. 극의 구성 방식은 피카레스크(주인공이 악인으로 설정되는 장르)로 구분되죠. 극 중 판사의 몸에 들어간 유스티티아가 죄인에게 가벼운 형벌을 주어 죄인을 풀어주는 것부터가 어떤 비판점을 시사하고 있는데요. 그러한 안티히어로의 거침없는 언행에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아주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더해 박신혜 배우의 열연이 사랑스럽지만 사악한 강빛나 캐릭터의 면모를 더욱 돋보이게 해 준 것 같습니다.
Q 박신혜 외에 김재영, 김인권, 김아영 등 주요 배우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었다
A 김재영 배우는 다온 역을 맡을 배우를 찾는 과정 중 만났는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머리 위로 아우라가 느껴졌어요. 당시 저의 눈을 똑바로 보지 않고 약간은 수줍어하는 표정이었고 '귀엽다'라고 느끼는 순간 눈이 마주쳤어요. 그러자 외로운 늑대같이 굉장한 남자다움이 느껴졌어요. 아시다시피 다온이라는 캐릭터는 어릴 때 가족을 잃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경찰이 됐지만 악마인 빛나를 의심하고 사랑해야 하는 역할이죠. 나중엔 흑화도 되고요. 얼핏 입체적인 캐릭터로 보이지만 그 누가 했어도 정말 어려운 역할이에요. 김재영 배우는 특유의 긍정과 발랄함을 잃지 않고 묵묵히 현장을 지켰어요. 아주 성실하게요. 역할 소화도 멋지게 해냈고요. 이제 저도 그의 열혈 팬이 되어 높이 날아오르길 응원합니다.
김인권 배우는 전 국민이 좋아하는 만능 연기자니까 저는 희로애락이 담긴 그의 얼굴과 연기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고 고마웠죠. 김아영 배우는 아주 좋은 눈과 명쾌한 발음을 가진 배우죠. '맑눈광' 외에도 선한 눈, 살기 있는 눈, 누군가를 추종하는 눈 등 다양한 표현이 가능한 좋은 배우입니다. 처음부터 아롱이로 점찍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오디션 없이 프러포즈한 배우입니다. 아롱이는 김아영 밖에 없다고. 베나토임을 숨기고 빛나를 추종하는, 그래서 우여곡절이 많은 아롱 역을 아주 신박하게 표현해 냈고요. 좋은 배우가 될 것을 확신합니다.
Q 실제 사례들을 기반으로 에피소드를 구성했을 거 같은데, 에피소드 구성 과정과 가장 기억에 남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그 이유가 궁금하다
A 제작 과정에서 현실과 맞닿아 있는 사실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실제 사건을 조사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현실에서 벌어지는 범죄의 보편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1·2화의 문정준을 처단할 때와 13·14화 정태규를 처단할 때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문정준은 제 기준 아동을 대상으로 한 범죄와 더불어 사회적으로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교제폭력범(정신적 살해)입니다. 이런 범죄는 초강력 범죄이지만 실제 처벌은 여타 범죄처벌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약하다고 생각됩니다. 가해자 성별도 남성인데 물론 악마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체격도 작고 성별이 여성인 주인공 빛나가 똑같이 되갚아주고 강력히 처단하는 걸 보면서 많은 시청자들이 대리만족을 하셨을 거 같아요. 한방에 정체성 확보인 거죠. 그 뒤로 배자영·양승빈·최원중까지 처단을 거듭하면서 시청자 분들이 죄인은 성별·나이·상황 상관없이 똑같은 죄인이고 그 악행을 똑같이 되갚아주고 처단한다는 것에 계속해서 희열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13·14화의 정태규 처단과 그 후 고인들을 한 분 한 분 고이 모셔놓은 장면에서 인간화된 빛나의 마음을 같이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시청자들과 함께, 피해자와 유족들의 아픔에 부족하지만 감히 아주 작은 위로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저도 시청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주인공의 심정과 나의 마음이 같다고 느낄 때가 가장 짜릿한 순간이거든요.
Q '지옥에서 온 판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A 13부 빛나의 재판, 정태규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기 전 "결국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억울하게 생명을 잃은 피해자에 대한 애도와 죽음 같은 삶을 살아온 피해유가족에 대한 위로일 것이다. 피해자와 피해유가족이 용서하지 않은 죄는, 법 또한 용서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죠. 빛나와 제작진, 작가, 연출까지 결국 이 대사를 하기 위해 험난한 길을 걸어왔고 이 대사와 함께 14부에서 정태규를 처단한 뒤 고인들을 한 분 한 분 모신 장면에서 드라마를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 시청자들께 전하고 싶었어요. 시청자들과 제작진, 빛나, 우리 모두가 같은 마음이길 바란 거죠. 그리고 2년 후 우리는 빛나와 함께 그동안의 피해자와 유족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아주 조금씩 한 발자국 내딛으려 힘을 내고 있어요. '지옥에서 온 판사'는 그런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더불어 빛나가 장난스럽게 아이들에게 말하던 말 "착한 사람은 행복하게 살고 나쁜 사람은 벌 받는 거, 그게 정의야". 이 단순하고 정직한 한마디가 우리 마음속 희망이나 이상, 판타지가 아니고 아주 당연한 현실이 되는 날이 오길 제작진은 바라봅니다.
Q 사법부의 일부 솜방망이 처벌이 여전히 많은 공분을 일으키고 있는 현실이다. 이 드라마가 사법부를 향해 주고 싶은 메시지도 있을까
A 먼저 불철주야 노력하고 계시는 사법계 일원들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현실 사법체계의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피해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피해자가 용서하지 않는 죄는, 법 또한 용서하지 않는다"라는 마음으로 충분히 노력해주시고 계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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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ywj201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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