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명이 새끼손가락 한마디를 잘렸다면, 이것은 중대한 재해가 아닌가

박창규 노회찬재단 노회찬비전포럼 운영위원장 2024. 11. 17.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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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맞는 비 포럼]

사람들이 삼성전자를 '5만 전자'라고 부른다. 필자에게 이 '오만'은 "태도나 행동이 거만하고 남을 업신여긴다."는 뜻의 '오만'(傲慢)으로 들린다. 다른 말은 할 것도 없이 지난 5월 27일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에서 발생한 방사선 피폭 사고에 대해서 삼성전자 측은 질병에 해당해 중대재해 사건이 아니라는 취지로 법적 검토를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면 '중대산업재해'라는 '중대재해처벌법' 정의에 따라 이 사고는 '중대산업재해'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부사장은 지난 10월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질병이냐 부상이냐'라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그 부분은 관련된 법령의 해석을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삼성전자 부사장은 10월 22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서 "최종 책임자는 본인"이라고 발언했다. 중대산업재해가 아니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재용 회장이 '중대재해처벌법'에 의해 처벌될 일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자신들은 법적 다툼을 통해서 방사선 피폭 사고도 질병으로 둔갑시킬 수 있고, 총수의 처벌도 피해갈 수 있다는 오만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 이 사건으로 방사선 피폭을 당한 노동자와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화상 부상을 화상 질병이라고 하지 않는다."며 고용노동부에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촉구하고 있다. 삼성은 '중대재해처벌법'의 심판대 위에서 또 한 번 정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한국형 기업살인법'은 경제민주화 입법 과제 중 하나

현행 '중대재해처벌법'은 노회찬의원이 민주노총,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준비해서 2017년 4월 14일 발의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원천으로 해서 고(故)김용균씨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님(제1회 노회찬상 수상자), 민주노총, 정의당 등의 노력으로 정치적 우여곡절 끝에 2021년 1월 26일 제정되었다. 노회찬의원은 경제민주화 국회로 불렸던 19대 국회(2012년 5월 말 개원)에서 노동자 등 국민들의 피부에 와 닿는 경제민주화 의제 발굴의 일환으로 산업재해 문제에 주목했다. 노 의원은 2012년 11월부터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2013년 입법계획으로 '한국형 기업살인법' 발의를 계획했다. 그러나 '삼성X파일 떡값검사 명단 공개' 사건 대법원 판결로 2013년 2월 14일에 의원직을 상실해 법안을 발의하지 못했다. 이후 2016년 다시 20대 국회의원이 되어 노동계, 시민사회와 함께 논의해 2017년 4월 14일 '한국형 기업살인법'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발의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진작 제정되었더라면 ..."

노회찬의원은 이 법을 대표발의 하면서 "현대 사회에서 재해 사고는 성과를 위해 사람의 안전을 소홀히 하는 기업의 조직 문화와 제도가 낳은 결과"라고 강조했고 "재해가 일어나도 경영자와 기업이 별다른 불이익을 입지 않는다면, 어떻게 기업이 철저한 안전 관리를 하도록 유도할 수 있겠는가?"라며 이 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했다. 이후 2017년 8월 경남 창원시 STX조선해양에서 폭발사고로 사내하청 노동자 4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노 의원은 사고현장 조사를 나가서 "원청회사가 안전에 직접적인 책임을 절실히 느끼도록 하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다음해인 2018년 12월, 참으로 안타깝게도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사고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진작 제정되었더라면 ..." 하는 국민들의 지탄과 언론의 산업재해 관련 기획보도들이 이어지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필요성은 재차 확인되었다.

재해자수와 재해율은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에도 계속 증가 중

결국 '중대재해처벌법'은 "개인사업자 또는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 또는 사업장(건설업의 경우에는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공사)에 대해서는 공포 후 3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고 2021년 1월 26일 제정되어 2022년 1월 27일 시행되었다. 그리고 올해 이 단서 조항은 해제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시행된 지 2년 9개월이 지난 '중대재해처벌법'은 과연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있는가? 아래의 그래프를 보면 이런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2022년 1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산업재해자 수와 재해율(재해자 수÷노동자 수×100)은 계속 증가했으며, 매년 2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사망하고 있다. 산업재해 상황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과연 이런 사회를 정상 사회라고 할 수 있는가?

▲ 산업재해예방 안전보건공단 연도별 산업재해 현황자료를 토대로 필자가 그래프 작업을 함.

한편, 올해 1월 29일 <매일노동뉴스> 보도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받은 '죗값'은 미미했다. 대부분 '징역형의 집행유예'에 그치고 있다." 노회찬의원의 말대로 기업과 제도의 잘못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죽고 다치는데도 중대재해처벌법은 그 입법 효과를 아직 충분하게 발휘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노회찬재단 노회찬비전포럼은 정의당 정의정책연구소와 공동으로 지난 10월 31일 제7회 <함께맞는비 포럼>을 전태일기념관에서 개최했다.

▲ 지난 10월 31일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제7회 <함께맞는비 포럼>. ⓒ노회찬재단

이날 ''중대재해처벌법'(이하 '현행법'이라 함) 개혁과제'를 주제로 발표를 맡은 손익찬 일과사람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산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엄벌보다 검거율을 높여야 한다. △산재사고는 범죄가 아니다라는 인식과의 싸움이 필요하며 시민의 목소리를 양형절차에 담아야 한다. △형벌의 종류를 늘려야 한다. 이 세 가지가 핵심과제이다."라며 발표를 시작했다.

'중대산업재해'와 '종사자' 정의 등을 개정해 법 적용 확대해야

손 변호사는 현행법의 개혁에 관해 우선 재해의 정의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현행법에서 산업재해와 시민재해를 구분 짓는 조문을 개정해 경영책임자의 의무위반으로 인해서 사상의 결과가 발생한다면 피해자의 신분은 구분 짓지 말아야" 하며, 현행법이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할 경우로 '중대산업재해'를 정의하는 것에 대해서도 "2명이 새끼손가락 한 마디 정도가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면 중대산업재해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향후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행법이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을 '중대산업재해'로 정의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총 등 재계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급성'과 '중독' 모두 의학적으로 명확하게 규정짓기 어려운 개념이다. '급성중독 등' 문구를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손 변호사는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자'로 종사자를 정의함으로써 "현장실습생 등 '대가'와 무관한 사람들이 보호대상에서 빠지게 되었다. '대가 목적' 문구를 삭제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양형위원 지정 등 양형위원회의 구성과 절차를 더욱 상세하게 규정해야

끝으로, 손 변호사는 "애초 10만인 동의안에서는 유무죄 선고를 먼저 하고, 형량(양형) 선고를 위한 기일을 별도로 잡으라는 취지로 양형절차 특례 조항을 제안했으나 현행법은 이를 전혀 담고 있지 않다"며 정의당 강은미 의원안이 제안한 것처럼 "유무죄 선고와 양형 선고를 분리하는 내용을 부활시키고, 국민양형위원 지정 등 양형위원회의 구성과 절차를 더욱 상세하게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서 손 변호사는 "'영국 양형위원회'는 불법성이 인정되는 조직에 대해 '피해를 입힌 정도', '매출규모 등'에 따라 벌금을 부과할 때 벌금액은 '경영진과 주주가 법 준수를 할 필요성을 느낄 정도로 실질적으로 경제적인 영향을 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벌금이 조직 내·외부의 무고한 제3자에게 영향을 주는지 고려하되 '주주나 이사진에 대한 악영향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회운동' 성과인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 양형기준 개혁 견인

이날 첫 번째 토론자인 류현철 (재)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은 "사회운동으로 전개된 입법과정을 통해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기업책임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고, 안전에 대한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된 것은 분명한 사회적 성과"라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제정 '운동'의 취지는 2021년 1월 11일에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개선한 '과실치사상·산업안전보건범죄 양형기준 수정안' 의결로 발휘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안전에 대한 경영자의 관심을 높이고 기업들이 안전 관련 예산을 늘리도록 만든 것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운동'이 일구어낸 성과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류 이사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정부의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견인해야 한다."며 "정부도 경영책임자가 처벌받지 않을 방도나 규제 완화만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업과 산업계에 산재 예방 활동의 구체적 방향과 사례를 제시하고 합리적 제도를 구성할 수 있도록 '제안'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 조사보고서' 공개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

끝으로 류 이사장은 "사회운동 차원에서 중대재해와 관련한 입법 뿐 아니라 행정, 사법의 전 과정을 면밀하게 살피고 문제를 드러낼 수 있는 사회적 감시와 역량이 필요하다."며 "이것을 위해서 '중대재해 조사보고서' 공개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산업안전보건법'이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는 근간이 되도록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등을 운동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업주와 고용주의 포괄적 안전보건조치 위반을 처벌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법리를 '산업안전보건법'에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노동현장은 이 법안을 무기로 삼고자 무엇을 했는가?

두 번째 토론자인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공동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이것이 기업에 사회적, 정치적 경고로 작용해서 형식적이나마 기업의 체질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며 "애초 경영책임자의 책임을 문서로 확인하도록 해놓았고, 그렇다보니 기업들이 행정적 준비로 처벌을 피해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는 문제제기도 정당하며, 이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왜 노동부 등 행정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 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있다."고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의 소회를 설명했다. 이어서 전 대표는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노동현장은 이 법안을 본인들의 무기로 삼고자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라며 "정부 사업 아이템 제안, 위험성 평가 등 별도의 노동운동 차원의 컨텐츠가 없는 것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고 주장했다.

반드시 공무원 처벌 조항을 살려내야 한다

끝으로 전 대표는 "시민재해에 대한 처벌 가능성이 사라지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과정에서 이태원참사, 오송참사와 같은 시민재해에 대한 공무원 책임자 처벌 조항이 삭제된 것이 유감이고, 이것은 지금도 사회적, 정치적 쟁점이다. 반드시 공무원 처벌 조항을 살려내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또한, 쿠팡의 사례에서 보듯이 노동자가 아니라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경영책임자가 법망을 피해가고 있다. 하층 노동자들과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산업재해와 죽음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이후 실천적 입법운동을 어떻게 할지 우리가 논의해보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삼성전자 사측의 시간끌기와 이재용 회장 구하기 전략

이날 세 번째 토론자는 손우목 전국삼성전자노조 위원장이 맡았다. 손 위원장은 "방사선 피폭 사건에 대해 사측은 지금 중대재해처벌법 회피전략으로 수사 착수 전 이의절차 등으로 또 기소 시 소송으로 이 사건이 세간에서 잠잠해질 때까지 시간끌기를 하려고 한다."며 "회사 전체에 360명이나 되는 부사장중 한 명이 책임을 다 지고 이재용 회장 구하기를 하고 있는 모양새이다."고 삼성전자 사측을 비판했다. 이어서 손 위원장은 "전국삼성전자노조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활용한 안전 강화 활동, 재해자와의 꾸준한 소통을 통해 사측의 적절한 지원 관철, 사측의 중대재해 회피 지속 시 언론기획사업 지속 진행 등 향후 활동 계획을 밝혔다.

아침에 출근했는데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아버지, 어머니, 아들, 딸, 형, 누나, 동생의 재해사고를 가슴 절이게 보고 들은 우리들이 만들어낸 법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함께맞는비 포럼>을 통해 확인된 이 법의 개혁과제들에 대해 제발 정치가 행동으로 답해주길 바란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정치가 외면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 노회찬재단이 주최하는 <함께맞는비 포럼>은 분야별 사회경제 이슈 및 시민들 삶의 실태에 대해 진보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그것을 공론화함으로써 회원 및 시민들과 사회현안에 대한 이해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사회운동 주체들과 노회찬재단이 교류 및 소통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합니다. 시민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박창규 노회찬재단 노회찬비전포럼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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