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나이트’가 된 ‘중국몽’

한겨레21 2024. 11. 17.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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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만보]‘잃어버린 사람들’의 참극…21세기판 ‘의화단’ 될까 우려
2024년 11월12일 중국 남부 광둥성 주하이의 한 스포츠센터 앞에서 한 남성이 촛불을 켜고 있다. 이날 이곳에선 한 남성이 운동하던 사람들을 차로 들이받아 35명이 목숨을 잃고, 43명이 다쳤다. AP 연합뉴스

※기사에 등장하는 ‘리핑’과 관련한 내용은 익명 취재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지명 등만 바꿔 작성했습니다.

2024년 11월11일 월요일 오후. 중국 광저우에 사는 57살 남성 리핑은 할 일 없이 시내 중심가 쇼핑센터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밀크티 한 잔을 마시며 오고 가는 행인들을 구경했다. 거의 1년 내내 습하고 축축한 솜이불 같은 광저우 날씨는 11월이 되자 공기에서 조금씩 바람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여름 내내 거리에 진동했던 끈적이는 땀 냄새도 덜해졌다. 하지만 리핑의 마음은 여전히 축축하고 무거웠다. 그는 얼마 전 반평생을 같이했던 아내와 힘든 이혼 소송을 마치고 ‘혼자 사는 몸’이 됐다. 다 큰 아들은 우한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부부 사이는 손쓸 방법이 없을 정도로 금이 가 있었다. 사이가 망가지기 전까지만 해도 부부는 그럭저럭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둘 다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하며 성실하게 산 덕분에 또래 부부들보다 더 빨리 광저우 시내 목 좋은 학군지 부근에 제법 큰 아파트 한 채를 장만할 수 있었다. 모두 다 이재와 투자에 밝은 아내 덕분이기도 했다. 기업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했던 아내는 1990년대 후반부터 이미 주식시장과 부동산 투자에 눈을 떴고, 새천년 이후에는 중국에 불기 시작한 각종 사모펀드와 고금리 이재 상품에 투자했다.

리핑 가족의 화려했던 ‘한때’

어느 순간부터 부부의 월급보다 아내가 투자한 각종 투자 및 이재 상품에서 나오는 이자소득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부동산 경기와 고배당 사모펀드 투자 시장이 꺼지지 않는 이상 부부의 투자소득은 무한정 늘어나 친인척과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 가장 ‘떵떵거리는’ 부자가 되는 건 시간문제인 듯했다.◀ 아내는 이미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투자의 달인’으로 소문났다. 그러자 주변 지인들이 하나둘 부부를 찾아와 적당한 투자처를 자문하거나 아예 돈을 맡겨 대리 투자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에는 가까운 친인척들에게 배당률이 높은 투자처를 소개해주다가 차츰 회사 내 동료들과 주변 지인들이 맡긴 투자금을 위탁받아 대리 투자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에는 고배당 고이자를 보장하는 각종 사모펀드와 피투피(P2P·개인간) 금융(온라인투자연계금융) 플랫폼 회사가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은행 및 금융시장 다변화와 금융 시스템 개혁 방안으로 사모펀드와 P2P 시장을 장려하는 정책을 내놨다. 때마침 중국 내 핀테크 산업이 폭풍 성장하면서 모바일 기반 금융 플랫폼 시장도 전성기를 맞았다. 60대 이상 고령층도 스마트폰만 있으면 손쉽게 각종 사모펀드와 P2P 플랫폼에 접속해 목돈과 쌈짓돈을 투자할 수 있었다. 리핑의 아내는 정년 기간이 조금 더 남아 있었지만 미리 조기 내부퇴직을 신청하고 온종일 집에서 각종 투자 일에만 전념했다. 양가 친인척과 수많은 지인도 아내에게 목돈을 맡기고 투자를 부탁했다.

2017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투자는 순조롭게 굴러갔다. 그러다 2017년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전국 각지의 크고 작은 사모펀드 및 P2P 금융 플랫폼 업체들의 연쇄도산이 쓰나미처럼 불어닥쳤다. 시진핑 정부의 경직된 정치체제와 민영기업에 대한 비우호적 정책 그리고 중-미 관계 악화 등으로 중국 사회와 경제는 차츰 길을 잃었다. 자금을 조달하기 힘들었던 수많은 민영기업이 접근이 비교적 쉬운 사모펀드나 P2P 플랫폼으로 몰려들어 자금을 빌렸지만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제때 자금을 갚지 못하면서 투자자들에게 원금과 이자를 지급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란포안 중국 재정부장(장관)이 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회의 폐막에서 발언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뉴스

‘투자 달인’과 ‘거품 경제’의 몰락

아내가 투자를 대행하던 수많은 친인척과 지인들의 투자금도 대부분 연기처럼 증발해버렸다. 하필 가장 많은 투자를 했던 P2P 플랫폼에서 가장 큰 문제가 터졌다. 약속했던 이자는커녕 원금도 돌려받지 못하게 생기자 그의 집과 회사로 온종일 친척들과 지인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시작되면서 “돈을 돌려달라”고 난리 치는 독촉 사태는 당분간 피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곳곳에서 연달아 터져나왔다. 아내가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아 여기저기 무리한 투자를 했음을 알게 됐다. 이미 직장까지 그만둔 아내는 더는 수입이 없었고 오로지 리핑의 ‘평범한’ 월급만이 가정 수입의 전부였다. 집을 제외하고 처분할 수 있는 가용 재산을 모두 처분해 가장 가까운 친척과 지인들의 투자금을 최대한 갚았다.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리핑은 직장에서도 권고사직을 종용받았다. 정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장이었지만 그와 아내가 관련된 이러저러한 투자사건에 대한 투서가 접수됐기 때문이다. 팬데믹이 끝났지만 리핑이 처한 수렁은 더 깊어져만 갔다.

직장에서 조기퇴직을 한 뒤 그는 하루 종일 근처 공원이나 쇼핑몰 주변을 배회한다. 가끔 혼자서 밤에 달리기도 하지만 앞으로 남은 인생은 어떻게 ‘달리며’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집에서 잘 나오지 않는 아내는 합의 이혼을 요구했다. “각자 자유롭게 살자”고 했다. 자신 때문에 남편까지 경제적·도덕적 책임을 함께 나누는 것이 미안한 듯했다. 리핑은 이혼 요구에 기꺼이 동의했다. 이대로는 도무지 함께 살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리핑 가정을 둘러싼 소문이 나돌고 이혼 소식까지 퍼지자 동네 주민위원회에서는 리핑과 그의 가족을 ‘오실인원’(五失人员)으로 분류하고 특별관찰대상으로 지정했다. 오실인원은 한자 그대로 ‘다섯 가지를 상실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주로 팬데믹을 전후해 나온 사회적 용어로, 최근 들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크고 작은 사회경제적 범죄와 관련해서도 자주 회자하는 용어다.

첫째, 투자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부동산과 각종 금융투자 실패로 인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채무를 지게 되고 보이스피싱 등으로 금전적 손해를 당한 사람들이 해당한다. 둘째, 각종 관계 맺기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부부관계 등의 문제로 이혼했거나 직면한 사람들, 가정 내 관계에 문제가 발생했거나 직장 내 여러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 그 외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들이 이 유형에 속한다. 셋째, 생활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각종 경제적·감정적·병리적 문제 등으로 삶의 의미를 상실한 사람들을 말한다. 넷째, 심리가 붕괴된 사람들이다. 실업이나 해고 등으로 당장의 삶과 미래가 암담해져 삶의 동력을 상실한 이들이 해당한다. 다섯째, 정신이 무너진 사람들이다.

위험한 ‘오실인원’의 증가

위에서 예를 든 각종 원인으로 우울증 등을 앓으면서 사회적 고립감을 경험하고 기댈 곳이 없게 되면서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 증가하고 자살 충동을 보이는 사람이 해당한다. 오실인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팬데믹을 전후해 나타난 경제적 불황과 사회적 불안정 등으로 인해 삶의 기반을 잃어버리고 사회경제적으로 고립돼 정서와 정신이 위험해진 사람들을 말한다. 리핑은 이 모든 요소에 해당하는 아주 전형적인 오실인원인 셈이다.

대략 2015년 이후 P2P 금융 플랫폼과 사모펀드 업체, 민영 중소기업들의 줄도산 등으로 인해 사회경제적 파장이 크게 일자 중앙정부와 각 지방정부 차원에서 오실인원에 대한 조사와 관찰을 하고 있다. 특히 2020년 팬데믹을 거치면서 국내외 경제상황이 더 악화돼 대규모 정리해고 인원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청년 실업도 급증하자 중국 사회에는 각종 ‘불안한 사람들’이 넘쳐나게 되었다. 사회경제적으로 불안하거나 불안해진 사람들은 이미 오실인원이거나 잠재적 오실인원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회적 폭탄으로 간주돼 정부 차원에서 상시 조사와 관찰을 통해 집중 관리 대상으로 지정되고 있다. 리핑도 이혼을 전후해 동네 주민위원회에서 몇 차례 방문해 대략적인 상황을 조사해 갔다. 이웃 주민들도 상시로 그들 가족을 ‘예의주시’하는 것 같았다.

2024년 들어 전국 각지에서 무차별 살상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언론에서는 이들 사건을 일으킨 범죄자들이 대부분 오실인원에 해당한다고 분석했다. 2024년 9월3일, 산둥성 타이안시의 한 중학교 부근에서 학교 차가 돌진하면서 등교하던 학생들과 주변 학부모들을 무차별 살상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11명이 사망하고 24명이 상해를 입었다. 며칠 뒤인 9월30일, 상하이시에 있는 월마트에서는 무차별 칼부림 사건이 발생해 총 3명이 사망하고 15명이 상해를 입었다. 이보다 앞서 5월에는 장시성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역시 무차별 칼부림 사건이 발생했고 어린 학생 2명이 사망했다. 6월과 9월에는 쑤저우와 선전의 일본인 학교 앞에서 무차별 칼부림 사건이 일어나 모두 2명이 사망했다. 10월에는 광저우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역시 칼부림 사건이 일어나 3명이 다쳤다. 그리고 10월28일에는 베이징 중관춘의 한 초등학교에서 무차별 칼부림 사건이 일어나 총 5명이 상해를 입었다. 다른 도시와 달리 수도 베이징에서 올해 처음 발생한 무차별 살상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줬다.

이들 사건의 범인들은 대부분 무직이거나 실직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이 무차별 살상 사건을 일으킨 특별한 동기나 이유는 구체적으로 밝혀지거나 알려진 것이 없다.(중국 정부가 철저하게 정보와 보도통제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과 소셜미디어에서는 사회적 시한폭탄인 ‘오실인원’을 제대로 관리하거나 대처하지 못해서 일어난 비극이라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포용력 상실한 중국판 ‘격차사회’

어떤 이는 1990년대 이후 경제버블의 붕괴로 ‘잃어버린 30년’을 경험하면서 유사한 사건들을 경험한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2008년 6월8일 일본 도쿄의 핫플레이스인 아키하바라에서 25살의 한 비정규직 청년이 “아무나 죽이고 싶었다”며 차로 돌진한 뒤 무차별 칼부림 사건을 일으켜서 일본 사회에 큰 공포와 충격을 던진 바 있다. 그 후 일본 사회에서는 이 사건의 사회적 배경으로 ‘격차사회’(빈부와 계급 격차의 확대)를 들면서 대규모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중국에서도 팬데믹을 전후해 유사한 사건이 빈발하자 일각에서는 중국판 ‘격차사회’가 몰고 올 파급력은 일본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 들어 일본인과 다른 외국인을 겨냥한 사건도 급증하면서 인터넷에서는 “오실인원이 ‘의화단’화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사회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진 이들이 중국 정부의 애국주의 교육과 정책에 과몰입돼 청조 말기 극단적인 배외주의 테러리스트로 변질했던 의화단처럼 오실인원 중 일부도 21세기판 ‘의화단’으로 진화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정치·경제적 포용력을 상실하고 대신 민족주의, 애국주의 선전과 정책을 강화한 중국 정부의 행보는 ‘오실인원의 의화단화’를 부추기는 영양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11월11일 오후 7시40분께, 리핑이 사는 곳에서 그리 멀지 많은 주하이시에서 대형 참극이 발행했다. 에어쇼가 열리기로 예정돼 있던 주하이 스포츠센터에서 62살 남성이 차를 몰고 돌진해 주변에서 운동하던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했다. 사건 발생 하루가 지난 뒤 공식적으로 발표된 이 사건은 총 35명이 사망하고 43명이 부상한 초대형 사건이었다. 시진핑 국가주석도 사건의 신속 해결과 유가족 및 부상자 위로에 대한 ‘특별지시’를 발표했다. 현장에서 붙잡힌 범인은 자해해 혼수 상태이며, 범행 동기는 “이혼과 그로 인한 재산분할 결과에 불만을 품은 것으로 보인다”고 주하이 공안당국이 밝혔다. 당국 발표대로라면 그 남자 역시 오실인원 중 한 명인 셈이다. 리핑은 집에서 국수를 먹다가 그 뉴스를 보던 중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마치 자신이 차를 몰고 돌진해 무차별 살상을 일으킨 범죄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잠시 착시현상이 왔다. 영화 ‘조커’가 사는 고담시에 온 것 같았다. “세상이 미쳐가는 것 같아요. 미친 건 나인가요? 아니면 세상인가요.” 리핑은 자신도 모르게 영화 속 아서처럼 중얼거리고 있었다.

영화 <조커> 한 장면.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안전한 중국’이라는 고담준론

텔레비전 속에서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외신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국가입니다. 전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한밤중에 범죄 걱정 없이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국가는 오직 중국이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안전한 중국에서 평화를 맛보기 바랍니다!” 리핑은 그 말을 들으며 생각했다. 고담시 사람들처럼 다들 미쳐가고 있다고. 그저 ‘웃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아서가 살인마 조커로 변해갔듯이 말이다.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 베이징에 거주하는 박현숙씨가 중국의 숨은 또는 드러나지 않은 기억과 사고를 읽는 연재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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