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잘못 가르쳤다" 이창용 한은총재의 고백...왜?

정진우 기자 2024. 11. 1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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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브리핑]서울대 교수시절 '독점'의 폐해만 강조... "학생들이 독점력 길러 수요비탄력적 사람이 되길"


"교수시절에 학생들에게 경제학을 잘 못 가르친 것 같습니다. '독점'을 나쁜 의미로만 가르쳤습니다. 사회적으로 비난이 많은 개념으로 가르쳤는데, 개인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능력이 독점력을 가지면 좋습니다. 나를 대체할 사람이 많으면 성공하기 힘듭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수요를 독점적으로 또 비탄력적으로 만드십시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고백은 신선했다. 진로고민과 취업난에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위한 조언을 경제학 용어에 빗대 설명했는데 학생들에게 울림이 컸다. 지난달 30일 서강대에서 진행한 강연에서다. 이 총재의 강연은 유튜브 동영상(https://youtu.be/YT4KCzS_9SQ?si=Oqw9qXdiX-Q5nHJK)으로도 볼 수 있는데 최근 수능시험을 마친 수험생들에게도 공감의 메시지가 됐다.

이 총재는 이날 오후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주도해 설립한 '서강대 멘토링센터-생각의 창' 프로그램에서 특별강연을 하며 이같이 말했다. '생각의 창'은 청년들에게 축적된 경험을 나누고, 그들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박 전 장관이 하버드대의 멘토링 시스템을 본 떠 만들었다.

이날 행사는 '글로벌시대 세상을 이끄는 사람들' 주제로 열렸는데, 멘토링센터에서 진행한 첫번째 특강이었다. 박 전 장관은 "당초 400명만 신청을 받으려고 했지만 서강대 학생 등 900여명이 몰렸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 전신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 성이냐시오관 소강당에서 특별 강연을 하고 있다. 2024.10.30. photo1006@newsis.com /사진=전신


이 총재는 대학생들에게 "경제상황이 어떻게 바뀌든 지금 여러분처럼 젊을때엔 모두에게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사실은 어렵다거나 쉽다거나 하는 건 주관적이다"며 "본인의 자산은 본인 스스로이기 때문에 본인에 대한 수요를 키워야한다"고 강조했다.

대체 불가한 '독점'적 인간이 돼야한다는 얘기다. 이 총재 말대로 경제 정책에서 독점의 개념은 부정적이다. 독점 기업은 소비자 등은 신경쓰지 않고 이윤 극대화를 위해 가격을 결정한다. 경쟁을 통해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에 따라 가격이 정해지는 것과 다르다.

우리나라에선 이 같은 독점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 지난 1975년 '물가 안정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독점 규제를 하게 된다. 이후 1980년 '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대한 법률(공정거래법)'이 시행되고 1981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경제기획원 내에 신설되면서 본격적인 독점 규제에 대한 체계를 마련했다. 이 총재가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와 함께 쓴 '경제학원론'에도 독점이 가져오는 부정적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 총재는 이날만큼은 젊은 학생들에게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독점'적 능력을 키우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남이 시키는 일보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야한다고 했다.

이 총재는 "젊을때엔 누구나 불확실성이 크고, 무엇을 할 지 모르는 시기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무조건 좋아하는 것을 해야한다"며 "혹시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면 싫어하는 것을 없애기 시작해라. 싫어하는 것을 없애다보면 좋아하는 것을 만나게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은 100세 시대를 살게 될 것인데, 70대까진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다"며 "좋아하는 것을 여러개 만들어 직장을 2-3번 바꿀 준비를 해야한다. 20~30대에 직장을 다닌 후 40세쯤에 직장을 바꾸고, 또 50~60대에 바꾸고 그런 방식으로 70대까지 일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30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서 ‘나의 국제기구 경험’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2024.10.30/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이 총재의 조언에 많은 학생들이 공감했다. 서강대 한 재학생은 "지금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총재의 강연이 현실적인 조언으로 다가왔다"며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아무도 나를 대체할 수 없도록 나만의 능력과 경쟁력을 키우고 싶다"고 말했다.

박영선 전 장관은 "900여명의 대학생들이 참여해 열기가 뜨거웠는데, 학생들의 호응이 이렇게 좋을 지 몰랐다"며 "학생들의 질문속에 그들의 고민이 담겨 있었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준비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올바른 멘토링을 해주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는 26일 오후 5시 서강대 게페르트 남덕우 경제관에서 '서강대 멘토링센터-생각의 창' 제2회 특강이 진행된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장(현 풍산그룹 회장)이 강연자로 나서 '글로벌시대 리더와 그를 만든 멘토들'이란 주제로 대학생들에게 희망과 도전의 메시지를 전할 계획이다.

류진 회장은 한국과 미국의 경제 협력의 가교 역할을 해온 대표적인 '미국통' 기업인으로 공화당 인맥 네트워크가 탄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강연에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등과 있었던 에피소드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진우 기자 econpho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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