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때린다는 트럼프 당선되자 '신고가' 찍은 중국기업 [차이나는 중국]
[편집자주] 차이 나는 중국을 불편부당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그런데 지난 8일 SMIC 주가가 최고치인 109.5위안을 찍었다. 이날 대만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업체 TSMC가 11일부터 중국 고객사에게 7나노미터(㎚·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 공정 이하의 최첨단 AI칩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재선 영향이라는 평가도 뒤따랐다.
중국 투자자들은 ①트럼프 당선 이후 대중 반도체 제재 강화 → ②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 노력 →③SMIC에 대한 중국 정부의 지원 강화를 예상한 것 같다. SMIC는 중국 최대 파운드리업체로 중국 반도체 자급체제 구축의 핵심 고리다.
중국 반도체 시총 1위인 SMIC 외에도 중국 최대 반도체장비업체 나우라 테크놀러지(반도체 시총 3위), 중국 최대 CPU 설계업체 하이광정보(시총 2위)가 11월 들어 나란히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는 등 중국 반도체 주식이 심상치 않다.
9월 23일 643.04에 불과했던 커촹50지수는 지난 13일에는 65% 넘게 상승한 1061.37로 거래를 마쳤다.(15일 지수 종가는 986.88) 중국 증시 주요 지수 중 최대 상승폭을 기록한 건데, 커촹반의 역사를 살펴보면 왜 많이 올랐는지 이해가 간다.
커촹반은 2018년 미중 무역전쟁 발발 이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지시로 기술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2019년 7월 상하이거래소에 개설된 기술·벤처기업 전용 증시다. 커촹반의 정식 명칭이 '과학혁신판'인 데에서도 기술혁신을 위한 설립 취지를 짐작할 수 있다.
최근 커촹반 상승은 중국 투자자들이 미중 기술경쟁이 장기화되면서 중국 정부의 최우선 순위가 기술기업 육성이라는 점에 베팅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8일 시진핑 주석이 전날 허페이의 과학단지를 시찰하면서 "첨단기술은 구걸하거나 요구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높은 수준의 과학기술에서 자립자강을 이뤄야 한다"고 말한 사실이 보도되자 SMIC가 상한가(+20%)까지 오른 데서도 이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팹리스(반도체설계), 파운드리(반도체제조), OSAT(후공정)으로 나눠지며 파운드리는 중국 반도체 산업의 약한 고리로 중국 입장에서는 반드시 육성해야 하는 분야다. 이번에 TSMC가 중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7나노이하 제품 공급 중단을 선언했기 때문에 중국이 SMIC를 육성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졌다. SMIC 시가총액이 약 7900억위안(약 152조원)으로 중국 반도체 시총 1위인 이유다.
일찍부터 미국 제재 대상이 된 화웨이 역시 2020년 TSMC와의 거래가 끊기면서 스마트폰 사업부문이 휘청거린 바 있다. 화웨이는 지난해 8월에야 SMIC가 제조한 7나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탑재한 '메이트60 프로'를 출시하며 스마트폰 사업에 복귀했다.
중국 최대 반도체장비업체 나우라(Naura) 테크놀러지도 13일 468위안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현재 가격은 422.68위안) 시가총액도 약 2500억위안(약 48조원)으로 중국 반도체 시총 3위다. 식각, 증착, 세정 등 반도체 전공정에 걸쳐서 제품 포트폴리오를 보유한 나우라는 중국의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AMAT)로 불린다. 반도체장비업체인 나우라 주가가 급증한 건 중국 정부의 반도체 투자가 증가할 것이라는 시장의 예측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좀더 낯선 기업이지만, 하이광정보(Hygon)도 중요한 반도체 기업이다. 이 회사는 미국 AMD로부터 x86기반 CPU 핵심 기술을 라이선스해 서버용 CPU를 설계하는데, 역시 11월 들어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가총액은 약 3060억위안(약 59조원)으로 중국 반도체 주식 중 2위다. 하이광정보는 엔비디아의 AI칩을 대체할 수 있는 자체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설계할 것으로 기대되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올해 초 미국 투자자문회사 샌포드 번스타인이 나우라테크놀러지와 하이광정보는 언젠가 경쟁업체인 미국 AMAT나 AMD처럼 유명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을 정도로 두 회사는 잠재력을 갖춘 회사다.
13일 중국의 대만 업무를 관장하는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의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가 "대만 TSMC가 미국의 요구에 호응해 11일부터 중국 고객사에게 반도체 공급을 중단했다. 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대변인은 "궁극적인 피해는 대만 관련 기업이 볼 것이며 약화되는 것도 대만 관련 기업의 강점"이라고 다소 감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주목해야 할 건 중국 네티즌들의 댓글로 이들은 하나같이 "국산반도체 굴기" "국산 대체에 유리할 것" "반드시 국산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중국의 반도체 자립체제 구축은 우리에게는 양면의 칼이다. 특히 최근 중국 D램업체 CXMT(창신메모리)가 중국 내수시장을 위주로 점유율을 높이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받는 압력이 커졌다. 그런데 CXMT도 트럼프 취임 후 제재 대상이 될 확률이 높다.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반도체 기업 4곳을 꼽으라면 이미 언급한 SMIC(파운드리) 외에 비상장기업인 화웨이, YMTC(낸드플래시), CXMT(D램)가 있다. 4곳 중 SMIC, 화웨이, YMTC는 이미 미국의 수출통제 명단(EL·entity list)에 올랐는데, 아직 CXMT는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 기술 굴기의 핵심인 화웨이가 2018년부터, SMIC는 2020년, YMTC는 2022년부터 제재를 받기 시작한 걸 보면, 다음 차례는 CXMT가 될 공산이 상당하다. 이 경우 단기적으로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수혜를 볼 수 있겠지만, 장기적인 추세는 결국 중국 메모리업체의 점유율 상승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미중 패권 경쟁이 반도체를 포함한 미중 기술 경쟁으로 확산되면서 글로벌 반도체 산업의 판도가 들썩이고 있다. 내년 트럼프 취임으로 이런 추세는 더 강화될 수 있다. 한국 반도체 기술의 초격차를 어떻게 해야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다.
김재현 전문위원 zorba00@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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