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 흉내도 척척…삼성 직원들은 사용 제한 당한 ‘이것’ 득일까 실일까 [방영덕의 디테일]
삼성 계열사 5개 노동조합을 아우르는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은 지난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현호 사업지원TF장(부회장)에게 공문을 하나 보냈습니다.
지금의 삼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혁신적 시도를 제안하는 내용의 공문이었는데요. 인사, 성과보장 제도 혁신 주문과 더불어 노조에서 요구한 사항 중 하나는 챗GPT 사용 제한을 풀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챗GPT를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도록 사용 제한을 해제해달라는 노조 측 주장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한편으론 빗장을 내건 사측 입장도 이해가 안 가는 바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챗GPT에 입력한 내용은 외부 서버에 전송 저장된 뒤 AI(인공지능) 학습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기업의 중요 정보가 타인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활용되는 등 심각한 보안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요.
삼성전자 뿐 아니라 많은 기업들에서 고민을 하는 지점입니다. 직원들이 회사 업무를 하며 챗GPT를 사용하면 득일까요, 실일까요.
저 역시 크리스 밀러가 쓴 책 ‘칩워 (Chip War)’의 내용을 요약해달라고 해봤습니다. 655페이지나 되는 책 내용을 챗GPT는 5초 이내에 4개 번호를 달아 요약을 해줬습니다.
하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진 않았습니다. 그냥 각종 포털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책 서평을 쓴 블로거들의 글과 비슷하거나 너무 짧게 정리하려고 한 듯한 느낌만 받았을 뿐입니다.
그래서 ‘칩워’ 중 삼성그룹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내용이 담긴 책 챕터 ‘적의 적은 친구다’를 사진으로 찍었구요. 이미지로 저장해 챗GPT에 보내어 요약해 달라고 했습니다. 훨씬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잘 했더라고요(칭찬해, 칭찬해).
챗GPT에게는 질문도, 입력하는 데이터도 구체적이어야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특히 그 책 페이지를 영어로 번역해줄 것을 부탁하니 이 역시 5초 이내로 척척! 이어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PPT 파일로 번역한 것을 전환해달라고 하니 기본 페이지에 텍스트를 얹혀놓은 수준이지만 보기 좋게 얼개를 잡아주었습니다.
수십페이지가 넘는 PDF 파일로 된 내용을 읽고 회의용 보고서나 PPT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는 직장인들에겐, 또 영어 번역이나 거꾸로 영작이 필요할 때 챗GPT는 속도 측면에서 꽤 유용해 보입니다.
물론 챗GPT가 요약이나 번역에 실수가 없었는지 살펴보고, 최종적으로 잘 다듬는 일은 어디까지나 이용자의 몫이지요.
쓰고자 하는 비즈니스 글쓰기 형식을 정의해주고요. 보고서에 들어갈 내용(제목, 요약, 본문, 의견 및 제안 등)을 요약 정리하는 식으로 프롬프트를 구성해 주면 간단한 사내 보고서 쯤은 ‘뚝딱’ 입니다.
직장인들 사이 비즈니스 글쓰기를 하는 업무 중 빈도가 높은 것 중 하나로 메일 작성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챗GPT의 도움을 받으면 그만큼 빠르고 효과적으로 메일을 쓸 수가 있지요.
기자의 경우 인터뷰이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는 메일을 자주 보내게 되는데, 앞서 언급한 칩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에게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2기 행정부 출범으로 세계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해 묻는 인터뷰 요청 메일을 챗GPT를 통해 작성해보았습니다.
와,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라구요. 제 프롬프트를 보고 인터뷰이가 미국인인 것을 알아챘는지 곧장 영어로 메일을 작성해주었습니다. 이메일 형식 측면에선 손볼 데가 거의 없었습니다. 인터뷰이에게 보낼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도록 피드백을 준 다음 다시 작성한다면 합격!
꼭 정형화된 글쓰기에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각종 트렌드 변화를 반영해 맛깔스러운 글을 써야하는 카피라이팅이나 소셜미디어 콘텐츠 작성 등을 위한 비즈니스 글쓰기에도 챗GPT는 잘 활용될 수 있습니다.
재미삼아 한번 맛집 평가를 위한 멘트 작성을 위해 챗GPT에 요청해보았습니다. ‘서울 여의도 한 일식집에 대한 음식 평가를 백종원씨가 하듯 해줄 수 있어?’라고요. 먹어보지도 않은 음식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점에서, 백종원씨만의 어투도 곧장 흉내낸다는 점에서 놀라우면서도 굉장히 섬뜩했습니다.
실제로 오픈AI는 챗GPT 이용 안내를 통해 ‘민감한 내용은 입력하지 말라’고 고지하고 있습니다. 기업 기밀을 챗GPT의 질문란에 입력할 경우 불특정다수에게 해당 내용이 유출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직원 A씨는 스마트폰으로 녹음한 회의 내용을 네이버 클로바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문서 파일로 변환한 뒤 챗GPT에 입력했습니다. 회의록 작성 요청이 목적이었는데요.
하지만 챗GPT에 회의 내용이 입력된 순간 해당 내용은 외부 서버에 전송되고, 회사가 이를 회수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신제품 관련 아이디어라도 회의록에 포함돼있다면, 혹은 회사 차원이나 CEO의 리스크 측면이 언급돼 있다면 그야말로 아찔하죠.
IT 기업 직원인 B씨도 불량 설비 파악을 위해 작성한 프로그램 코드를 챗GPT에 입력하는 사고를 내기도 했습니다. 관련 소스 전체를 챗GPT에 입력하고 코드 최적화를 요청한 것인데요. 기밀 사항이 이렇게 순식간에 전세계적으로 유출되고 말았죠.
챗GPT의 이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보입니다. 동시에 누가 어떻게 내 생각을, 지식을 빼가고 또 어느 정도의 거짓 정보가 섞여 있는지 알 길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이렇게까지 정보 유출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써야하나, 또 실무 단계마다 피드백을 주고 받으며 몇번씩 수정과정을 거쳐야 하는 챗GPT와의 대화를 보노라면 ‘차라리 내가 다 하고 말지’란 생각이 들때가 있습니다.
고민의 연속인데요. 그래도 필요한 고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무작정 막아서도, 무작정 사용해서도 안될 것 같은 챗GP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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